미국 오픈에이아이사가 개발한 생성형 인공지능 챗GPT 화면. 한겨레 자료사진
“언론사가 지금까지 이뤄놓은 많은 작업의 결과물을 챗GPT(지피티)가 마음껏 빨아들이도록 방치하는 것은 끔찍한 실수가 될 것이다.”
영국의 미디어 전문매체 <프레스가제트>는 미국 폭스코퍼레이션의 공동 창업자인 배리 딜러 인터액티브코퍼레이션(IAC) 회장이 미디어 업계에 대한 생성형 인공지능(AI)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또 다른 미디어그룹 악셀 스프링거와 손잡았다고 최근 보도했다. 배리 딜러 회장은 최근 미디어 업계에서 생성형 인공지능의 무분별한 뉴스 콘텐츠 이용에 대해 가장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인물 중 한명이다.
배리 딜러 회장은 지난 10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에서 열린 ‘탐사 저널리즘에 관한 해리 에반스 글로벌 서밋 2023’에 참석해 “20년 전 인터넷은 공짜 미디어의 허브 역할을 하기 시작했고, 이는 (언론계에) 엄청난 규모의 피해를 가져왔다. 지금도 마찬가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언론사가 ‘적정 대가를 지불하는 구조가 마련되기 전까지 그렇게 해선 안 된다’고 선언하지 않는다면, (뉴스 콘텐츠 무단 사용으로 인한) 더 큰 피해에 맞닥뜨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규모 언어모델에 기반한 생성형 인공지능은 인터넷에 공개된 다양한 정보를 크롤링(crawling) 등의 방법으로 수집·학습하는 점을 주요 특징으로 한다. 이때 인공지능이 학습 대상으로 삼는 가장 대표적인 데이터 중 하나가 신뢰도가 검증된 뉴스 콘텐츠다. 미국의 오픈에이아이(AI)가 개발한 인공지능 챗봇 서비스 챗지피티만 하더라도 스스로 한국어 뉴스를 수집·학습하는 과정에서 <한겨레> 등 언론사 뉴스를 활용했다고 답변하기도 한다.
이때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가 인터넷에 공개된 인공지능의 ‘학습 데이터’, 곧 언론사 뉴스는 과연 마음껏 이용해도 되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배리 딜러 회장 등은 인공지능의 뉴스 콘텐츠 ‘무단 학습’ 행태에 맞서 미디어 업계가 법적 조치에 나서는 것은 물론, 필요하다면 저작권법 등을 바꿔서라도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지난 2월17일치 <블룸버그> 보도를 통해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과 <시엔엔> 등이 뉴스 콘텐츠 무단 학습 행태와 관련해 오픈에이아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오픈에이아이 등은 이에 대해 저작권법의 ‘공정 이용’(fair use) 개념을 방어 논리로 삼고 있다. 저작권법의 내용이나 공정 이용의 기준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다만 그 핵심 취지는 공익을 위해서라면, 또는 저작물의 특성에 따라 저작물의 복제 사용이나 인용 등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과 이에 따른 제도화는 아직 걸음마 단계인 탓에 인공지능이 뉴스 콘텐츠를 학습 데이터로 삼는 행위가 공정 이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둔 나라는 거의 없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1월 챗지피티를 시작으로 생성형 인공지능이 여럿 등장하자, 지난 2월 비로소 ‘에이아이(AI) 저작권법 제도개선 워킹그룹’을 출범시켰다. 이 기구에서는 ‘인공지능 학습 데이터에 사용되는 저작물의 원활한 이용 방안’, ‘인공지능 기술 활용 시 발생하는 저작권 침해와 이에 대한 책임 규정 방안’ 등을 논의해 올 하반기 인공지능 저작권 가이드라인을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는 지난 3월27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한 ‘챗지피티와 미디어 생태계의 미래’ 세미나에서 “현재 (생성형 인공지능과 관련한) 가장 뜨거운 쟁점 중 하나가 언론사에 허락받지 않은 데이터를 기계 학습에 활용하는 것이 공정 이용에 포함되는가, 특히 유료화 장벽 뒤에 감춰진 뉴스 데이터도 이 범위에 포함될 수 있는가”하는 점이라고 짚었다.
이 대표는 이날 ‘챗지피티 등 인공지능 기술과 저작권’ 제목의 발제에서 인공지능의 학습 데이터를 무조건 ‘저작권의 보호 대상’으로 규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고품질 저널리즘’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는 “오픈에이아이처럼 자료를 수집하는 쪽에서도 고품질의 신뢰성 높은 데이터는 돈을 내고 사겠다는 입장”이라며 “콘텐츠를 통해 수익을 만들 기회가 있다면 언론사들도 이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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