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이 사라지고 있다. 소외된 주변인과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도 덩달아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발로 뛰는 기사 대신 이야기와 해설로 이슈를 풀어주는 토크프로그램은 늘어나고 있다.
현장 대신 패널들의 토크가 비대해지는 이런 현상은 최근 지역방송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현황을 파악한 조사에서 확인된 방송저널리즘의 변화 현상 중 하나였다. 아직 진행 중인 프로젝트여서 논의할 이야기가 더 남아있겠지만 밝혀진 내용을 거칠게나마 요약하자면 저널리스트가 금과옥조로 여기던 발로 뛰는 현장취재나 탐사보도가 현저하게 줄어든 대신 정치나 사회 현안에 대해 해설과 평론을 덧붙이는 토크프로그램은 늘어나는 추세였다. 문제가 되는 현장을 직접 찾아가기보다 패널들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썰을 푸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조사는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누어 각 지역대학의 연구자가 참여한 지역방송 연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됐는데, 그동안 막연한 느낌으로 짐작하던 현황을 실증 데이터로 확인하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확인된 사안 중 가장 안타까운 것은 몇 년 사이 지역방송에서 제작하던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상당수가 폐지되거나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는 사례가 생각보다 많았다는 점이다. 시사보도로 분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아예 자체 제작하지 않는 지역방송도 여럿 존재했다.
시사보도 프로그램은 1분30초 안팎의 뉴스보도와 더불어 방송저널리즘을 구성하는 중요 장르 중 하나다. 특히 뉴스보도가 충족하기 어려운 심층성, 탐사성, 현장성을 강화한 장르로 여겨지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시사보도 프로그램을 지역방송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핵심 장르 중 하나로 꼽는다. 거창하게 이야기하자면 건강한 지역 공론장을 유지하고 민주주의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핵심 장치 중 하나가 시사보도 장르라고 본다. 1~2분가량의 짧은 뉴스보도가 포괄할 수 없는 방송 저널리즘의 중요 축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지역방송이 지역성을 구현하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그 중 지방정부를 비롯해 지역사회에 존재하는 권력기관의 비판과 견제기능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시사보도 장르가 필요하다.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문제가 되는 사회고발 현장을 담아내기 위해서도 시사보도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특히 발로 뛰는 현장 취재가 담긴 시사보도가 절실하다. 현장취재가 담긴 시사보도 프로그램을 방송저널리즘의 꽃으로 간주하는 지역방송 종사자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복잡하고 어려운 정치, 경제, 과학, 재난 관련 이슈를 쉽고 편안한 용어로 풀어주는 해설과 평론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 현안을 ‘썰’로만 푸는 것은 뚜렷한 한계를 갖는다. 토크나 토론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출연진만 하더라도 지역사회의 오피니언 리더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지역방송에서는 시사보도 프로그램을 현장취재나 사회고발성 탐사보도 대신 토크나 토론성 포맷으로 대체해가고 있다. 왜냐하면 열악한 지역방송의 제작여건에서 비용과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현장취재보다 토크 포맷이 손쉬운 제작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지역에서는 수신료 분리 징수 문제보다 시사프로그램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방안이 공영방송의 ‘비정상을 정상화’시키는 정공법이라는 생각.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탐사보도의 쓴소리도 기꺼이 들을 줄 아는 권력자의 열린 자세가 필요하겠지만.
한선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