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12일 전체회의를 열어 윤석년 <한국방송>(KBS) 이사 해임 건의안을 의결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윤석년 <한국방송>(KBS) 이사를 해임한데 이어 남영진 이사장의 ‘법인카드 부정 사용 의혹’에 대한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윤 이사와 남 이사장은 모두 야권 성향 인사라는 점에서 이들이 다수인 한국방송 이사회 구도 재편을 위한 정권 차원의 시나리오가 작동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한국방송 안팎에서 나온다.
한국방송 이사회 구도의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은 김효재 위원장 직무대행 체제의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먼저 쏘아 올렸다. 방통위는 지난 12일 윤 이사가 2020년 3월 <티브이조선> 재승인 심사 당시 심사위원장을 맡아 일부 심사위원에게 평가 점수를 낮추도록 한 혐의(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로 기소됐다는 사실을 문제 삼아 그에 대한 해임 건의안을 의결했다. 야당 추천 김현 상임위원이 “합의제 행정기관인 방통위가 사법적 판단을 자처하면 안 된다”며 반대 입장을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윤 이사 해임안은 윤석열 대통령의 재가로 곧바로 확정됐다.
윤 이사가 해임된 날, 보수 성향 한국방송 노동조합은 성명을 내어 남영진 이사장의 법인카드 부정 사용 의혹을 제기했다. 남 이사장이 2021년부터 올해까지 자신의 고향 근처 영농법인에서 수백만원에 이르는 ‘확인되지 않은 물품’을 법인카드로 구매하고, 회사 근처 중식당에서 한끼에 150만원에서 300만원에 이르는 식대를 법인카드로 결제했다는 것이 이 단체의 주장이다. 이튿날인 13일엔 남 이사장의 법인카드 부정 사용이 청탁금지법 위반에 해당한다며 국민권익위에 신고했다. 권익위는 신고 접수 나흘만인 17일 한국방송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방통위와 여권에서는 윤 이사 해임 등과 관련해 ‘드러난 문제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식의 주장을 펴고 있으나, 언론계와 야당은 이를 ‘한국방송 이사회 장악’ 더 나아가 김의철 사장 해임을 위한 수순으로 보고 있다. 윤 이사 해임에 이어 남 이사장까지 물러나게 되면 그 전까지 여야 4대 7(총 11명) 구도였던 한국방송 이사회는 6대 5구도로 바뀌게 된다. 윤 이사와 남 이사장은 ‘여권 추천’으로 분류되는 만큼, 보궐 이사는 현 여권과 가까운 인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안정상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19일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윤석년 이사 해임과 남영진 이사장에 대한 압박은 한국방송 이사회를 여권 이사 우위의 구도로 바꾸고, 그 뒤 이사회에서 김의철 사장 해임 제청안 의결을 밀어붙이려는 수순”이라며 “과거 이명박 정권이 신태섭 이사 해임을 통해 정연주 사장을 몰아낸 것과 똑같은 시도가 되풀이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첫해인 2008년 김금수 이사장 사퇴와 신태섭 이사 해임을 통해 한국방송 이사회를 빠르게 장악했다. 한국방송 이사회는 이사진 교체가 이뤄지자마자 임시이사회를 열어 정연주 사장 해임 제청안을 의결했다.
남 이사장에 대한 권익위 조사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한국방송 이사는 “현재의 방통위 구도와 윤석년 이사 해임 건의안 의결 과정을 살필 때, 남영진 이사장의 법인카드 사용에 관한 권익위 조사 결과가 나오면 방통위가 이를 근거로 남 이사장 해임을 시도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만약 방통위가 또다시 사법적 판단 없이 권익위의 권고나 요청만으로 해임 건의안 의결을 밀어붙인다면, 개인의 권익이나 사법적 질서에 대한 심각한 침해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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