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창간] 몇 달 걸려 비행기 삯 마련
어려운 형편 선뜻 주식 100주 더
어려운 형편 선뜻 주식 100주 더
“오래된 빚 갚아 마음 가벼워”
“오래된 빚을 갚은 것 같아 마음이 가볍습니다.”
지난 3월18일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18번째 한겨레 정기주주총회장에서 만난 한금호(51)씨. 한씨는 ‘주주와의 대화’ 시간에 자신을 소개하면서 “이번 주주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왔다”고 말해 모인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전날 저녁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그는 척추수술을 2차례 받아 지팡이 없이는 걷기도 힘든 몸이지만, 이번만큼은 꼭 주주총회에 참석하고 싶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하룻밤 묵었던 찜질방에서 총회장까지 걸어오는 데만 2시간이 걸렸다고 했습니다.
한씨는 1990년께부터 3년 동안 서울 성북구 한겨레 길음지국을 아버지 한명희(82)씨와 함께 운영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독재정권의 그늘이 아직 걷히지 않은 시절이었다”고 그 시절을 기억하는 한씨는 “지국 사업을 돈벌이만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손해를 많이 봐서 오래 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한겨레 주주의 역할에 대해 그는 “사원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몫을 다른 누구도 아닌 주주들이 마련해줘야 한다”며 “한겨레 주주가 신문을 보지 않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또한 한겨레가 앞으로 갈 길에 대해선 “갈수록 가볍고 치졸한 신문이 느는 현실에서, 한겨레가 평화·통일로 가는 희망이 돼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했지만, 형편이 어려워 수업료를 못 낸 까닭에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는 한씨는 로스앤젤레스 근교 요양원에 아버지 한씨를 모셔두고 혼자 직장에 다니며 살고 있다고 합니다. 비행기 삯을 마련하는 데만 몇 달이 걸렸다는 한씨는 이날 주총장에서 한겨레 주식 100주를 새로 사기도 했습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선뜻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주식을 산 이유에 대해 한씨는 별것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여러 차례 대답을 부탁하자 그는 소박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한겨레로부터 무엇을 바라기 전에 내가 한겨레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를 먼저 생각하는 게 옳다고 믿으니까요.”
글 전진식/편집국 24시팀 seek16@hani.co.kr
사진 이정아/편집국 뉴스사진팀 leej@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