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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하니바람3호] 세상을 말갛게…‘빨래판’같은 신문

등록 2006-08-02 21:17수정 2018-05-23 18:08

[리포터 기고]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아이의 입에 훅 단내가 풍깁니다. 한낮의 뙤약볕에 짓눌리고 왔을 녀석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 있네요.

“어서 씻어, 덥지?”

책가방을 던져놓고 아이는 욕실로 달려갑니다. ‘촤악-’ 쏟아지는 물 소리에 내 몸이 다 시원합니다.

후끈 달아오른 몸을 식히고 나온 녀석이 말하네요.

“엄마, 빨래판 좀 바꿔요, 내가 놀이방 다닐 때부터 있었던 거잖아요.”

‘놀이방 다닐 때부터라고?’ 녀석의 말을 듣고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우리집 나무 빨래판은 사실 아들아이의 나이를 훨씬 넘어, 제 누나보다 더 오래되었으니 19년쯤 됐을 것입니다. 아니, 내가 결혼하면서 바로 시어머니 살림(빨래판은 물론이고 냉장고·텔레비전 따위)을 썼으니 아마 20년도 훨씬 넘지 않았나 싶네요.

“빨래판이 닳아서 바닥에 자꾸 시커먼 찌꺼기가 나와요.”

우리 집은 빨래판을 욕실에 두고 사용합니다. 날마다 나오는 속옷이나 양말을 그냥 빨래판에 비벼 빨기 때문에 빨래판에 물이 마를 새가 없죠. 물때가 올라 미끈거리는 빨래판을 운동화 솔로 박박 문지르고 햇빛에 한번 말려야지 했는데 녀석이 먼저 꼬집어내네요.

저는 어떤 물건이든 쉬 버리지 않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버리는 물건’에 대한 확실한 ‘학습’이 몸에 밴 탓도 있지만, 단출한 살림이다 보니 처음부터 버릴 게 별로 없었거든요. 아이가 바꿔야 한다고 했던 빨래판은 물론이고, 십여년 전에 남편이 허드레 나무로 얼기설기 짜준 길쭉한 책상(사과궤짝 비슷한)도 지금껏 잘 쓰고 있습니다. 오래된 게 이유라면 버릴 게 어디 한둘이겠어요?

신문만 해도 그렇지요. 동네를 오가다 동그라미 네 개가 있는 상품권이나 주유권 석장씩을 펼쳐 보이며 “신문 한번 바꿔 보시죠?”라고 하면, 아이와 나는 더욱 의연한 표정으로 말하곤 합니다.

“우린 <한겨레>예요!”

녀석은 아침마다 한겨레를 모두 훑고서야 밥을 먹습니다. 한미 에프티에이(FTA)가 뭔지, 그걸 왜 반대하는 사람이 많은지, 궁금하고 알고 싶은 것이 많은가 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만화가 일주일에 한번씩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투덜대기도 하지만요.^^

빨래판을 베란다 창에 세워 바람을 쐬었습니다. 위아래로 낡고 닳았지만, 그 부분만 잘라주면 아직도 쓸만합니다. 비누칠해서 비벼주면 때가 쏙쏙 빠지는 빨래판. 바르고 깨끗한, 18년 된 정론지 <한겨레>를 닮았나 봅니다.

한미숙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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