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2일 경기경찰청을 출입하는 24시팀 김기성 기자의 휴대전화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서울구치소에서 여성 재소자가 자살을 시도했다는데, 성폭행에다 교도관 얘기도 나오고 심상치 않네….” 걸쭉하고 허스키한 목소리의 양상우 24시팀장의 전화였습니다.
김 기자는 기자실을 급히 빠져나와 서울구치소로 향했습니다. 병원 쪽 취재는 후배 유신재 기자에게 맡겼습니다.
사건을 감추려는 구치소 교도관들은 이리저리 말을 돌렸습니다. 그 사이 유 기자한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재소자 이름과 나이를 확인했다는 연락이었습니다.
김 기자의 집요한 질문에 지친 한 구치소 교도관이 “정신병자 하나 때문에…”라는 지나가는 말을 했습니다. 교도관의 말실수였지만, 김 기자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재소자가 성추행을 당한 정신적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곧바로 김 기자는 유 기자와 함께 안양과 의왕 시내 정신과 병원을 샅샅이 뒤지며 추적에 나선 결과, 한 병원에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취재에 들어간 지 6시간 만에 영원히 묻힐 뻔했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지난달 27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언론인위원회로부터 ‘국제앰네스티 언론상’을 받은 ‘여성 재소자 성폭력 사건’ 특종 기사의 취재 과정을 재구성해 봤습니다. 이 기사는 지난 2월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이달의 기자상도 받았습니다. 12월에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가 주는 ‘한국 가톨릭 매스컴상’ 신문부문 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 또 한국출판연구소에서 선정하는 ‘2006 한국출판평론·학술상’ 출판평론 부문에서 문화부문 고명섭 기자가 우수상 수상자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한겨레가 기자상을 휩쓸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 다른 특종을 한번 보면서 얘기해 볼까요.
지난 6월9일 아시아나 9842편 항공기가 제주에서 김포로 가다 우박을 맞은 뒤 앞부분이 떨어져나간 채 비상착륙했습니다. 당시 24시팀 이재명 기자는 ‘저런 상황에서 승객들이 무사했다니 참 대단한 조종사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곧 의문으로 바뀌었습니다. ‘사고 항공기 앞뒤로 같은 노선을 운항한 항공기들이 모두 비구름을 피해 운행했는데 유독 그 항공기만 사고를 당했을까’라는 의문이었습니다. 김규원·이재명 기자는 아시아나항공과 건설교통부 사고조사위원회 등 관련 당사자들을 취재했지만 그들은 입을 다물었습니다. 대신 이들은 표준정규항로·항적도·회피비행 등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지식과 정보를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사고 항공기와 관련한 각종 정보를 재구성해 사고 항공기의 항적도를 그려냈습니다. 임인택 기자가 기상청에서 사고 당시 레이더 기상 영상도를 어렵사리 확보했습니다. 사고 당시 항적도와 기상 영상도를 포개놓자, 사고기가 우박이 쏟아지는 비구름대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24시팀장이었던 양상우 사회정책팀장은 “한겨레 특종은 진실을 감추려 하는 세력에 맞서 사건 실체를 파고들어 일궈낸 성과”라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 역시 한겨레 특종의 힘”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전통적인 발굴특종과 함께 치밀한 기획 기사에도 한겨레는 돋보였습니다. 올 1월 이달의 기자상을 받은 ‘건강 불평등’ 기획이 그러했습니다. 외환위기 뒤 빠른 속도로 나빠져 가는 우리 사회 양극화 문제를 ‘건강’에 초점을 맞춘 좋은 기획이었습니다. 소득·교육·성별·직종에 따른 건강 수준 차이를 구체적인 증거로 보여줬습니다. 도시·농촌·강남·강북 등 지역 간 사망률, 학력간 저체중아 비율, 학력간 흡연율, 직종(정규직, 비정규직)간 건강수준, 소득수준간 의료이용 등의 자료를 꼼꼼히 제시했습니다.
취재팀을 이끈 이창곤 기자는 2003년부터 2년에 걸쳐 영국 버밍엄대에서 사회정책을 전공하면서 ‘건강 불평등’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한겨레로 돌아온 뒤 우리 사회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건강 불평등을 파고들었습니다. 이달의 기자상 심사위원들은 이 기사가 “양극화 현상 중에서 그동안 소홀히 취급된 건강분야를 부각시키면서도 갈등 지향이 아닌 통합 지향적 시각에서 다뤄졌고, 밀도 역시 높았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외 한겨레는 올 들어 4월 ‘수협 학교급식 및 군납비리’, 5월 ‘박근혜대표 피습 사건, 정확하고 치밀한 보도’, 6월 ‘미국 요구에 건강보험 희생 우려’, 7월 ‘미군기지 4곳 추가인수 숨겼다.’, 8월에는 ‘아시아나 항공기 사고원인 추적보도’와 ‘도박공화국 집중추적 보도’, 10월 ‘한-일 전문가 수해현장 입체진단’ 등 취재 및 기획부문에서 모두 9차례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습니다. 앞으로도 특종 행진은 쭈욱 계속될 것입니다.
정혁준 june@hani.co.kr/<하니바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