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형 브리핑제 해보니 회의적
“‘보도자료’ 읽어주는데 급급했다”
“‘보도자료’ 읽어주는데 급급했다”
참여정부의 언론정책에 대해 그동안 지지 의사를 밝혀온 진보·개혁 성향의 언론단체들이 이번 기자실 통폐합 방안에 대해서는 일제히 반대 방향으로 돌아섰다. 원군에서 적군으로 바뀐 셈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국언론노조 등은 정부의 이번 방안에 대해 일제히 “국민의 알권리를 제한하는 조처”라며 반대 성명을 냈다. 이들은 참여정부가 출범한 뒤 줄곧 기치로 내걸어온 ‘언론개혁’이라는 화두에 찬동을 하면서 지원군 노릇을 해왔다.
참여정부의 기존 언론정책들은, 앞에서 끌고 뒤에서 지원하는 이들 언론단체들이 없었다면 추진하기 힘들었다. 정부와 이들 언론단체가 손발을 맞춰 이뤄낸 대표적인 ‘언론개혁 작품’은 신문법 개정이다. 거대 언론사 몇몇이 독과점하고 있는 국내 신문시장에서 소규모 언론사도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즉 ‘여론 다양성의 확보’라는 명제에 정부와 이들 단체가 뜻을 같이하며 노력한 결과다. 신문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하면서, 현재 신문유통원이 설립되고 신문공동배달제가 시행되고 있다. 또 신문발전기금을 통해 다양한 언론사들이 공생할 수 있는 여건도 마련됐다.
언론단체들은 2003년 정부가 폐쇄적 기자실 제도를 개방형 브리핑 제도로 바꿀 때도 환영의 뜻을 밝혔다. 특정 언론사들끼리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기자실의 각종 폐해를 없애고 모든 언론사들에 문호를 넓힌다는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인터넷 매체 등 신생 매체들의 접근성을 확대한다는 측면에 방점이 찍혔다. ‘여론의 다양성 보장’이라는 공통의 목표가 통했기 때문에 정부와 이들 단체 사이에 갈등은 없었다. 정부의 당시 방침이, 비슷한 논조를 가진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 세 신문사가 전체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며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을 타파하는 하나의 활로가 될 수 있다고 이들 단체는 생각한 것 같다. 다만 이들 언론단체는 기자들의 취재원 접촉 기회를 제한할 수 있는 점은 경계했다.
정부는 이번 기자실 통폐합 방안 또한 모든 언론사에 공정한 취재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주장하고 있다. 취지만 본다면 언론단체들이 두 손을 들어 환영할 만한 방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번엔 이들 단체들이 반대의 선봉에 나서고 있다. 이처럼 반대 목소리를 내는 데는 지난 몇 해 동안 운영해 온 개방형 브리핑제의 부정적 측면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민언련은 21일 낸 성명에서 “참여정부 출범 초기 기자실을 폐지하면서 설치한 브리핑 제도도 아직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기자들 사이에는 정부 부처의 브리핑이 보도자료를 읽어주는 데 급급하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언론단체들은 이번 방안이 되레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을 더 우려하고 있다. 언론노조는 21일 낸 성명에서 “정부는 공정한 취재환경을 조성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과정에서 정부가 보인 것처럼 정보 은폐와 비공개가 더 심해질 게 뻔하다”고 밝혔다. 아무리 여론 다양화를 명분으로 내세우더라도 국민의 알권리 보장이라는 언론의 기본 전제를 침해하려는 방안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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