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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히잡 없으면 비행기 담요라도…“화장 지우시죠”

등록 2007-05-27 17:51수정 2007-05-31 15:57

‘책상 국제부 기자’ 중동으로 날아가다
‘책상 국제부 기자’ 중동으로 날아가다
[하니바람] 취재의 추억
‘국제부 책상기자 박민희’ 중동으로 날아들다
이슬람 복장 빌려입고 나서니 인터뷰 자청까지
이란·쿠웨이트 누비며 진짜 ‘그들’ 목소리 귀기울여

뉴욕을 누비는 스파이더맨은 평소 모범생 사진기자 피터 파커입니다. ‘국제부 기자’라면 세계를 누비며 인터뷰하는 ‘스파이더맨’을 떠올리게 되지만, 한국의 국제부 기자는 자료 더미에 파묻힌 ‘책상 국제부 기자’로 살아갑니다. 실망스러우시겠지만, 국내 독자들이 국제기사에 관심이 크지도 않은데 큰돈 들여 세계 곳곳에 특파원 파견하기가 어렵다는 계산이 깔려 있겠지요. 그리하여, 한국 특파원들은 워싱턴, 도쿄, 베이징 등 ‘필수지역’에만 가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뉴스팀에서도 ‘비인기 지역’인 중동을 3년째 맡고 있다보니 저는 중동에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평소 ‘책상 기자’로 살지만 가끔은 ‘스파이더맨’으로 변신하고픈 충동이 꿈틀거리는 법, 그리하여 지난해 저는 회사를 졸라 마침내 이란과 쿠웨이트 등에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이 이란을 ‘악의 축’이라고 마구 때리고 있었고, 이란에선 보수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막 취임해 취재 여건이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취재비자가 안 나올까 걱정이 많아서인지 쿠웨이트에서 기다리던 취재비자를 받아들었을 때의 기쁨과 흥분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쿠웨이트에서 이란행 비행기를 타기 전, 직원이 묻더군요 “히잡(이슬람 여성들의 머리 스카프)은 있냐?” ‘하하, 그래도 중동 담당 몇년인데….’ 전날 시장에서 산 히잡을 자랑스럽게 보여줬습니다. 히잡을 쓰지 않으면 비행기에 못 타고, 혹시 안 가지고 타면 공항에서 비행기 담요를 둘러서 내보낸다고 합니다.

이란에선 외국기자는 ‘이슬람문화수호성’에 등록하고, 소개받은 가이드와 다녀야만 취재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복장규정도 지켜야 합니다. 나름 준비했건만, 엉덩이를 가리는 긴 윗옷이 없어서 낭패를 당했습니다. ‘이슬람 복장’을 빌려입고 나서야 ‘취재 전선’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관문, 이란의 중요한 종교·정치 행사인 금요기도회를 취재하는데, ‘B사감’ 같은 아주머니가 나오시더니 화장을 지우라고 휴지를 내밀더군요. ‘도대체 취재가 되겠나’ 걱정이 밀려왔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거리에 나서니 완전히 달랐습니다.

테헤란대학에서는 “이란의 핵 권리를 옹호한다”는 학생들부터 “이란 정부가 핵 개발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는 학생까지 다양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길거리 서민들은 ‘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순식간에 수십명이 몰려들어 의견을 얘기하기 바빴습니다. 자기 집으로 저를 데려가며 정부의 경제정책을 우려하는 인터뷰를 자청하는 사람까지 있었습니다. 오랜 역사·문화를 가진 대국의 자존심과 핍박 받는다는 피해 심리가 이란인들의 삶에서 묘하게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이란은 중동에서 민주적 선거로 정권이 교체되는 거의 유일한 국가입니다. 교육이나 여성 인권 면에서도 가장 나은 점수가 나올 것 같습니다. 화려하게 화장하고 머리카락이 거의 다 드러나게 히잡을 내리거나 바지를 살짝 걷고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 여성들의 멋내기는 정부의 ‘통제’에 맞서 개성을 드러내려는 ‘화려한 반항’이겠지요. 물론 빈부격차, 부정부패 등 문제들이 많습니다. 저녁 무렵 다 시든 수선화 꽃다발을 팔겠다며 서성이는 실업자 청년들을 보면서 마음이 짠하기도 했습니다.

박민희/국제뉴스팀 minggu@hani.co.kr
박민희/국제뉴스팀 minggu@hani.co.kr
우리는 중동 사람들을 낯설고 골치 아픈 극단주의자 또는 기껏 석유 벼락부자로만 여기지 않았을까요? 그들의 진짜 목소리에 좀더 귀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뉴욕과 런던에서보다 테헤란의 거리와 카슈미르의 고아원에서 사람과 역사에 대해 훨씬 더 많이 배웠습니다. 한국의 국제부 기자들도 자주 ‘스파이더맨’으로 변신해 세계 곳곳의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박민희/국제뉴스팀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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