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기자들의 ‘군사정권’ 취재 뒷이야기
외신기자들의 ‘군사정권’ 취재 뒷이야기
“1971년 대통령 선거 당시, 종로 개표장에서 투표함을 여는 순간 입회인석의 노인들이 달려와 그들의 양복 주머니에서 100장 정도의 투표용지 다발을 던져 뒤섞어 버렸다. 나는 방송 카메라 맨에게 부정선거 증거라며 찍을 것을 요구했으나 카메라 맨은 방관만 하고 있었다.” 한국인인 이 카메라 맨은 이렇게 답했다. “중앙정보부가 감시하는 곳에서 카메라를 돌리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아십니까? 일본인인 당신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지만, 이곳에 가족이 있는 나는 어디에도 갈 곳이 없습니다.”(전 일본 <도쿄방송> 서울특파원 후카야 기이치로)
박정희·전두환 정권 때 외신기자로 한국을 취재했던 21명의 해외 언론인이 8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6월 민주항쟁 20년 기념 국제 언론인 세미나’(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주최)에서 군사정권 시절 한국 취재의 뒷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1970년대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였던 미야타 히로토는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 이후 박 정권의 일본 언론인 ‘포섭공작’을 증언했다. 그는 당시 주일 한국대사관에 문화공보담당 공사직이 신설돼 전 한국일보 편집국장 이원홍씨가 임명됐다. 대사관은 일본 기자들에게 한국취재 초청 공세를 펼쳤다. 초청 일정에는 “유명한 기생이 나오는 연회 접대”가 포함됐다.
그는 민간인이 관여한 포섭공작 의혹도 제기했다. 1975년 한국에서 창간된 한 일본어 문예잡지의 여성 발행인은 “요염한 매혹을 띠었는 데, 그를 통하면 한국 취재비자나 취재처 준비가 매우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었던 것으로 들었다”고 그는 전했다. 미야타 기자도 이 여성을 한번 만난 적이 있는 데, <아사히신문> 사정을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어 놀랐다. 그가 “귀부인은 남산(중앙정보부)이지요?”라고 질문하자, “이 여성은 빙그레 웃을 뿐 반응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유신 정권 때 일본 <교도통신> 특파원이었던 오노다 아키히로는 기사에 ‘민주 세력’이란 용어를 썼다는 이유로 자주 문화공보부 호출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당시 유신정권에 비판적인 기사를 썼던 이유는 “(언론에) 압력을 행사하는 방식을 인간적으로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기자 샘 제임슨은 군사정권의 정보조작을 증언했다. 그는 군사정권 시절 서울의 미국 정보요원 말을 따, “50t 북한 선박 한 척이 남한 수역을 침범했다는 미국 쪽 발표를 한국 국방부에서 500t으로 발표했다”고 회고했다. 국방부는 이후 미국 쪽이 문의하자 “우리는 국내용으로 발표한 것뿐입니다”라고 답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후카야 특파원은 박정희 정권 당시 검열을 피하기 위해 뉴스화면용 테이프를 일본으로 가는 여행객을 어렵게 수소문해 보내곤 했다며 10·26 이후 ‘서울의 봄’이 왔을 때 이전에는 밀고가 두려워 말을 꺼렸던 택시 운전사들의 말수가 갑자기 늘어나 놀랐다고 회고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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