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두고 최근 정부와 한국기자협회 사이에 갈등이 다시 격화하고 있다. 사진은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달 17일 주요 언론단체장들과의 토론회에서 기자실 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밝히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기협, 정보접근권 뒷전 될라
정부, 공연한 시간끌기 의심
정부, 공연한 시간끌기 의심
정부가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 실행에 들어갔다. 국정홍보처는 16일 서울 광화문 정부중앙청사와 과천청사의 통합브리핑센터 공사를 위한 우선협상 대상 업체를 선정했다. 정부는 다음주부터 공사에 들어가 8월 말까지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 11일 전자브리핑 시스템 사업자를 선정하고, 16일부터 외교통상부와 재정경제부를 대상으로 전자브리핑 시스템을 시험 가동하고 있다. 정부는 언론단체장과의 합의안을 공사 진행의 근거로 들고 있다. 정부는 18일 국무회의 브리핑에서 구체적 방안과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한국기자협회는 법적 대응, 기존 기사송고실로의 출근 투쟁 등을 통해 강력하게 저항하겠다는 태세다. 기자협회 ‘취재환경개선 특별위원회’는 정부와 언론단체장 간의 합의안을 거부하고 정부와의 재협상을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가 내세운 기존 합의안과 기자협회 특위의 요구사항은 내용에 있어 크게 다르지 않다. 양쪽 간 갈등의 골은 근본적인 시각차보다는 뿌리깊은 불신과 주도권 싸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까닭이다.
■ 정부-언론단체장 합의안=지난달 17일 노무현 대통령과 언론인 사이의 토론회 이후 정부와 기자협회·전국언론노조·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한국인터넷기자협회·한국인터넷신문협회 등 언론단체 대표들이 네 차례의 협의를 거쳐 마련한 합의안은 14개 조항을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공무원 취재응대 강화’ 총리훈령 제정 △서울경찰청·경찰서, 서울중앙지검 기사송고실 완전 개방을 전제로 현행 유지 △기사송고실 총량 750석 규모 유지 △정보공개청구제도 강화 추진 △내부고발자 보호 방안 마련 △국가보안법 폐지 위해 공동노력 △세부안과 추가논의 필요할 경우 계속 대화 등이 주요 내용이다.
■ 기자협회 요구사항=기자협회 특위는 “합의안에는 기자협회 회원들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며 별도의 대안을 마련해 정부와의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대안은 주로 정보공개법 개정과 공무원 대면접촉권 확보와 관련한 세부조항을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 △공무원이 악의적으로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경우 처벌조항 마련 △취재회피 공무원 책임 추궁 △등록기자 정부청사 출입 자율화 △공공정보 회의록 공개 등이 그 내용이다.
이는 정부와 언론단체 간의 합의안 가운데 ‘공무원 취재응대 강화’ 총리훈령 제정과 정보공개청구제도 강화 추진 부분을 구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박상범 특위 위원장도 “합의안 내용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문제는 합의안에 대략의 항목만 있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는 점”이라며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대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합의안과 기자협회의 대안이 큰 틀에선 맥을 같이 하는 셈이다.
■ 접점 못 찾는 까닭=정부와 기자협회가 가장 크게 대립하는 지점은 통합브리핑센터 공사 시점이다. 정부는 합의안을 실행하면서 동시에 브리핑룸 공사에 들어간다는 계획을 고수하고 있다. 기자협회가 요구하는 세부조항은 공사를 진행하면서 협의해 나가면 된다는 것이다. 합의안에도 세부안과 추가논의에 대한 조항이 있다고 강조한다. 반면, 기자협회는 협의를 통해 세부조항을 확정하기 전까지는 공사를 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선 정보접근권 강화, 후 브리핑룸 통폐합 논의’의 원칙을 고집하고 있다.
이처럼 양쪽이 접점을 찾지 못하는 데는 뿌리깊은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는 ‘기자협회가 재협상을 빌미로 시간을 끌어 현 정권에서 브리핑룸 공사가 사실상 물건너가게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기자협회도 ‘정부가 우선 공사부터 밀어붙이고 나면 취재지원 방안은 뒷전으로 밀려날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의 실행을 두고 주도권을 놓칠 수 없다는 양쪽의 속내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셈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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