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창간 20돌] 세상을 바꾼 20년
[한겨레 창간 20돌] 세상을 바꾼 20년
<한겨레>는 한국 자유언론의 정통성을 잇는 유일무이한 언론이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세계 언론사상 유례가 없는 국민주 모금 방식으로 신문사를 만들었다. 지면·조직·영업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전에 없던 혁신을 일으켜 언론의 새 지평을 열었다. 1970·80년대 해직 언론인을 중심으로 당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 민족·민주·민중의 편에서 한결같은 정론의 길을 걸었다. 탄압하고 훼방을 놓아 한겨레의 진실보도를 막아보려 했던 역대 권력의 모든 시도는 실패했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이 한겨레를 잉태했고, 한겨레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길렀다. 한겨레의 20년은 정치 민주화를 넘어 사회·경제 민주화로 나아가는 한국 민주주의의 20년이다.
■ 유일무이한 자유언론, <한겨레> 탄생하다
70·80년대는 한국 언론의 암흑기였다. 군사 독재정권은 총칼을 앞세워 뜻있는 언론인의 입을 틀어막았다. 언론 현장에서 이들을 내쫓고, 감옥에 가둬 고문했다. 정권이 언론인 대량 해직을 주도했고, 언론사주가 이를 도왔다. 뜻있는 언론인들은 모두 거리로 내몰렸다.
번역 원고를 쓰면서, 시장에서 장사를 하면서, 고향에 돌아가 농사를 지으면서, 해직 기자들은 오직 참언론의 꿈을 꾸었다. 정치가의 칼 앞에 두려움이 없고, 자본가의 돈 앞에 구차함이 없는, 그래서 오직 사실과 진실을 전하는 진정한 자유언론을 꿈꾸었다.
87년 6월항쟁은 그 꿈을 실현할 바탕이 됐다. 민주항쟁에 굴복한 군사 정부는 신문 창간의 자유를 허용했다. 87년 9월, 전·현직 언론인 196명이 ‘새 신문’ 창간을 발의했다. 10월에는 각계각층의 3000여명이 참가해 창간 발기인대회를 열었다. 본격적인 국민모금을 펼친 지 108일 만에 2만7000여명이 참여해 창간기금 50억원을 모았다.
참언론에 대한 국민적 열망에 힘입어 87년 12월, 세계 언론사상 최초의 국민주 언론, 한겨레신문사를 창립했다. 고물 윤전기를 들여 와 고치고, 공장 건물을 전세 내어 편집국을 차렸다. 민주적 편집위원회 제도를 만들고, 개별 언론사로는 처음으로 윤리강령을 채택했다. 보도의 금기와 성역을 부수고, 오직 사실과 진실에 입각해 기사를 쓰기로 결의했다. 순한글 가로쓰기 전면 편집, 컴퓨터 조판·제작 등을 종합 일간지 사상 처음으로 도입했다. 88년 5월15일, 36면에 걸친 한겨레신문 창간호가 세상에 선보였다. 진정한 자유언론의 시작이었다.
■ 성역없는 보도로 군사정권에 맞서다 창간과 동시에 한겨레는 분단의 금기를 넘고 권력의 비리를 파헤치며 재벌의 치부를 드러냈다. 한국 언론 가운데 처음으로 북한, 김일성 주석 등의 용어를 쓰면서 북한 체제를 정당하고도 냉정하게 다뤘다. 논설과 칼럼, 기획기사 등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알렸다. 권력기관의 전횡도 고발했다. 고문 기술자의 실체를 폭로하고,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하고, 당국의 선거 개입을 폭로했다. 정경유착의 실상도 보도했다.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 실태를 특종 보도했다. 이를 눈감아준 감사원의 뒤에 재벌의 압력이 있었음도 알렸다.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한 기자 사회에도 ‘화살’을 겨눴다. 거액의 촌지를 집단적으로 받은 기자단의 폐해를 폭로했다. 일찍이 이런 고발보도를 보지 못했던 권력자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진 기자에게 촌지나 향응을 베푸는 것으로 충분했다. 취재기자가 뻣뻣하게 굴어도 편집 간부를 대접하면 보도를 막을 수 있었다. 편집 간부가 완강하면 사주를 꼬드겨 문제를 해결했다. 이제 그런 방식으로 무마할 수 없는 기자들이 나타났다. 독자들 역시 권력기관의 만행을 있는 그대로 폭로하는 기사를 난생 처음으로 보았다. 한겨레가 아니면 절대로 보도할 수 없는 한겨레만의 영역이 생겼다. 비교의 대상이 없었다. 짧게는 75년 이후 20여년, 길게는 해방 이후 반세기 동안 힘있는 자들의 부당한 행태를 사실 그대로 보도하는 언론사가 없었다. 한겨레의 탄생과 함께 권언 유착의 시대가 끝났다. 한겨레로 말미암아 민주주의 진전의 길이 열렸다. 마지못해 신문사 설립을 허가했던 군사 정부는 창간 직후부터 안기부를 통해 노골적인 탄압을 시도했다. 방북 취재 계획을 세웠다는 이유만으로 신문사 최고 간부를 구속 또는 연행했다. 북한을 다녀온 정치인을 인터뷰했다는 트집을 잡아 세계 언론사상 초유의 편집국 압수수색을 감행했다. 전국의 정보기관 직원들을 동원해 한겨레 독자들의 성향과 지국 상황에 대한 은밀한 뒷조사까지 펼쳤다. ■ 발굴 특종으로 권력의 치부를 파헤치다 90년대의 한국 사회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이 시기의 한겨레는 민주정부를 매섭게 감시하는 파수꾼을 자처했다. 심층보도로 거대 권력의 비리를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김영삼 정부 시기의 김현철 비리 특종, 김대중 정부 시기의 옷로비 특종이 대표적이다.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는 나란히 민주 정부를 표방했다. 일련의 개혁 조처도 취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됐다. 법치가 아닌 인치의 전횡이 시작됐다. 한겨레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최초의 특종 보도는 물론 이후 지속적인 보도로 권력의 치부를 파고들었다. 관련자를 권좌에서 끌어냈다. 한겨레가 정치권력만 상대한 것은 아니었다. 거대한 이익집단이 된 조계종 총무원의 비리를 보도하고, 정치권력과 유착해 각종 부정비리와 왜곡보도를 일삼은 언론권력을 고발했다. 재벌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정치권과 연계해 불법을 저지른 사실도 낱낱이 파헤쳤다. 한겨레의 진가는 <한겨레 21>, <씨네 21> 등 ’뉴저널리즘’을 표방한 주간지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관심 사안을 심층적으로 보도하는 탐사취재 기법으로 객관성의 외피를 쓴 다른 언론의 편파 보도를 압도했다. <한겨레 21>은 외환위기 사태를 일찍이 경고하고,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학살을 특종 보도하는 한편, 90년대 중반부터 이주노동자·새터민·소수자의 인권문제를 선도적으로 제기했다. 두 주간지는 젊은 진보, 새로운 진보를 표방하며 동종업계 최고의 매체로 자리잡았다. 한겨레의 심층 탐사보도에 대해 정치권력은 광고 수주 방해로 대응하기도 했다. 안기부는 김영삼 정부 말기인 96년, 한겨레에 광고를 싣지 말라며 대기업, 공기업 등에 압력을 넣었다. ■ 민주주의와 인권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2000년대 이후, 한겨레는 민주주의의 지평을 새롭게 확장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치적 민주주의를 넘어 사회적·경제적 민주주의에도 주목하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보도가 대표적이다. 1년여에 걸친 한-미 협상 기간 내내 이 협정이 우리 국민의 삶에 끼칠 영향을 심층 보도했다. 한겨레의 보도는 노무현 정부의 정당성을 의심하게 하는 중요한 변곡점이 됐다.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갈 길에 대해 국민 모두 고민하도록 도왔다. 진보 또는 민주 세력의 갈길을 찾으면서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아우르는 각종 대형 기획도 내놓았다. 평화·생태·여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여 이를 사회 의제로 부각했다. 이주노동자, 양심적 병역 거부자 등에 대한 일관된 보도로 여론을 선도했다. 2007년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을 특종으로 보도하고, 이를 빌미삼은 광고탄압에도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정치 권력보다 더 강력하게 군림하는 경제 권력에 대한 비판을 벼리면서, 국민 개개인의 삶의 문제에 더욱 천착하고 있다. 가장 신뢰받는 언론, 가장 공정한 언론,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 등을 꼽을 때, 한겨레는 창간 이후 대부분의 조사에서 1위를 지켰다. 이제 새로운 과업이 한겨레 앞에 놓여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 체제는 군부독재, 정경유착, 재벌독점의 시대와는 다르다. 민주세력의 적자를 자처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보수세력에게 정권을 넘겨 준 것은 이 문제에 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는 한겨레가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가난하여 핍박받는 자, 힘없어 억압받는 자, 시대를 깊이 멀리 보려는 자, 그들 모두 한겨레를 통해 진실을 발견하고 삶의 좌표를 정했다. 그들이 민주주의를 이루고 확장했다. 한겨레는 그들과 함께 또다른 20년을 걸어갈 것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 성역없는 보도로 군사정권에 맞서다 창간과 동시에 한겨레는 분단의 금기를 넘고 권력의 비리를 파헤치며 재벌의 치부를 드러냈다. 한국 언론 가운데 처음으로 북한, 김일성 주석 등의 용어를 쓰면서 북한 체제를 정당하고도 냉정하게 다뤘다. 논설과 칼럼, 기획기사 등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알렸다. 권력기관의 전횡도 고발했다. 고문 기술자의 실체를 폭로하고,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하고, 당국의 선거 개입을 폭로했다. 정경유착의 실상도 보도했다.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 실태를 특종 보도했다. 이를 눈감아준 감사원의 뒤에 재벌의 압력이 있었음도 알렸다.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한 기자 사회에도 ‘화살’을 겨눴다. 거액의 촌지를 집단적으로 받은 기자단의 폐해를 폭로했다. 일찍이 이런 고발보도를 보지 못했던 권력자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진 기자에게 촌지나 향응을 베푸는 것으로 충분했다. 취재기자가 뻣뻣하게 굴어도 편집 간부를 대접하면 보도를 막을 수 있었다. 편집 간부가 완강하면 사주를 꼬드겨 문제를 해결했다. 이제 그런 방식으로 무마할 수 없는 기자들이 나타났다. 독자들 역시 권력기관의 만행을 있는 그대로 폭로하는 기사를 난생 처음으로 보았다. 한겨레가 아니면 절대로 보도할 수 없는 한겨레만의 영역이 생겼다. 비교의 대상이 없었다. 짧게는 75년 이후 20여년, 길게는 해방 이후 반세기 동안 힘있는 자들의 부당한 행태를 사실 그대로 보도하는 언론사가 없었다. 한겨레의 탄생과 함께 권언 유착의 시대가 끝났다. 한겨레로 말미암아 민주주의 진전의 길이 열렸다. 마지못해 신문사 설립을 허가했던 군사 정부는 창간 직후부터 안기부를 통해 노골적인 탄압을 시도했다. 방북 취재 계획을 세웠다는 이유만으로 신문사 최고 간부를 구속 또는 연행했다. 북한을 다녀온 정치인을 인터뷰했다는 트집을 잡아 세계 언론사상 초유의 편집국 압수수색을 감행했다. 전국의 정보기관 직원들을 동원해 한겨레 독자들의 성향과 지국 상황에 대한 은밀한 뒷조사까지 펼쳤다. ■ 발굴 특종으로 권력의 치부를 파헤치다 90년대의 한국 사회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이 시기의 한겨레는 민주정부를 매섭게 감시하는 파수꾼을 자처했다. 심층보도로 거대 권력의 비리를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김영삼 정부 시기의 김현철 비리 특종, 김대중 정부 시기의 옷로비 특종이 대표적이다.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는 나란히 민주 정부를 표방했다. 일련의 개혁 조처도 취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됐다. 법치가 아닌 인치의 전횡이 시작됐다. 한겨레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최초의 특종 보도는 물론 이후 지속적인 보도로 권력의 치부를 파고들었다. 관련자를 권좌에서 끌어냈다. 한겨레가 정치권력만 상대한 것은 아니었다. 거대한 이익집단이 된 조계종 총무원의 비리를 보도하고, 정치권력과 유착해 각종 부정비리와 왜곡보도를 일삼은 언론권력을 고발했다. 재벌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정치권과 연계해 불법을 저지른 사실도 낱낱이 파헤쳤다. 한겨레의 진가는 <한겨레 21>, <씨네 21> 등 ’뉴저널리즘’을 표방한 주간지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관심 사안을 심층적으로 보도하는 탐사취재 기법으로 객관성의 외피를 쓴 다른 언론의 편파 보도를 압도했다. <한겨레 21>은 외환위기 사태를 일찍이 경고하고,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학살을 특종 보도하는 한편, 90년대 중반부터 이주노동자·새터민·소수자의 인권문제를 선도적으로 제기했다. 두 주간지는 젊은 진보, 새로운 진보를 표방하며 동종업계 최고의 매체로 자리잡았다. 한겨레의 심층 탐사보도에 대해 정치권력은 광고 수주 방해로 대응하기도 했다. 안기부는 김영삼 정부 말기인 96년, 한겨레에 광고를 싣지 말라며 대기업, 공기업 등에 압력을 넣었다. ■ 민주주의와 인권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2000년대 이후, 한겨레는 민주주의의 지평을 새롭게 확장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치적 민주주의를 넘어 사회적·경제적 민주주의에도 주목하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보도가 대표적이다. 1년여에 걸친 한-미 협상 기간 내내 이 협정이 우리 국민의 삶에 끼칠 영향을 심층 보도했다. 한겨레의 보도는 노무현 정부의 정당성을 의심하게 하는 중요한 변곡점이 됐다.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갈 길에 대해 국민 모두 고민하도록 도왔다. 진보 또는 민주 세력의 갈길을 찾으면서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아우르는 각종 대형 기획도 내놓았다. 평화·생태·여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여 이를 사회 의제로 부각했다. 이주노동자, 양심적 병역 거부자 등에 대한 일관된 보도로 여론을 선도했다. 2007년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을 특종으로 보도하고, 이를 빌미삼은 광고탄압에도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정치 권력보다 더 강력하게 군림하는 경제 권력에 대한 비판을 벼리면서, 국민 개개인의 삶의 문제에 더욱 천착하고 있다. 가장 신뢰받는 언론, 가장 공정한 언론,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 등을 꼽을 때, 한겨레는 창간 이후 대부분의 조사에서 1위를 지켰다. 이제 새로운 과업이 한겨레 앞에 놓여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 체제는 군부독재, 정경유착, 재벌독점의 시대와는 다르다. 민주세력의 적자를 자처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보수세력에게 정권을 넘겨 준 것은 이 문제에 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는 한겨레가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가난하여 핍박받는 자, 힘없어 억압받는 자, 시대를 깊이 멀리 보려는 자, 그들 모두 한겨레를 통해 진실을 발견하고 삶의 좌표를 정했다. 그들이 민주주의를 이루고 확장했다. 한겨레는 그들과 함께 또다른 20년을 걸어갈 것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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