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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침묵할 때, 그들의 외침이 세상을 깨웠습니다

등록 2008-05-14 18:06수정 2008-05-15 09:14

한겨레 20년을 빛낸 필진들
한겨레 20년을 빛낸 필진들
[한겨레 창간 20돌] 세상을 바꾼 20년
■ 한겨레 20년을 빛낸 필진들

한겨레 20년은 그 자체가 한국사회 담론의 이정표를 세운 역사였다. ‘사상의 자유’를 천명한 송건호 초대사장의 창간사는 금지당한 말길을 트는 선언이었다. “어떠한 사상이나 이념과도 까닭없이 가까이 하거나 멀리하지 않은” 한겨레는 시대의 지성을 보듬는 ‘담론의 용광로’였다. 아첨의 말, 거짓의 말에 맞서 한국사회의 모순을 헤집었던 진실의 말은 한겨레를 통해 세상으로 퍼져나갔다. 꿈쩍않던 세상의 옹벽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정론의 창’ 논단의 시대
거짓에 맞서 진실을 말하다

이영희· 조영래· 신영복 (왼쪽부터)
이영희· 조영래· 신영복 (왼쪽부터)

“한겨레논단은 거의 빠뜨리지 않고 읽는다.” 창간 첫돌 여론조사에서 독자의 70%가 논단을 열독한다고 답할 정도로 독자들은 칼럼에 열광했다. 거짓에 길들여진 시간을 바로잡는 직필은 한겨레에서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매주 목·일요일자 1면 상단에 파격편집된 ‘한겨레논단’은 쟁쟁한 논객들의 필봉이 빛나는 ‘정론의 창’이었다. 그것은 원고지 8장짜리 칼럼 이상이었다.

“벅찬 희열로 한쪽으론 눈물이 쏟아지고 한쪽으론 웃음이 터져나왔다”고 창간 당시를 회고한 리영희 선생(한겨레 고문)은 우리 시대의 대표지성이자 대표논객이었다. 그에게 국민이 만들어준 새 신문의 감격은 절필했던 펜을 다시 잡게 했다. “먼저 사상적 평형을 회복하자”(88년 5월15일치 15면)로 뿜어져 나온 빛나는 지성은 시대를 밝히는 등불로 번져나갔다. 좌우를 뛰어넘는 성찰이 농축된 88년 12월15일치 ‘새는 ‘좌’ ‘우’의 날개로 난다’는 20년이 지나 논술 단골 지문으로 널리 ‘소비되고’ 있다. 2002년 사법연수원생 설문에서 가장 존경하는 법조인 1위로 꼽힌 조영래 변호사도 ‘논단’을 통해 음습한 그늘에 내동댕이쳐졌던 인권의 족쇄를 풀었다. 독재정권의 악법인 사회안전법에 포박된 재일동포 서준식씨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88년 5월26일치 ‘처분대상일 수 없는 인간’이란 글은 다음해 악법 폐지를 이끌어내는 기폭제가 됐다. 20년 긴 복역을 끝내고 89년 석방된 신영복 교수의 ‘감옥밖에서의 사색’도 한겨레 지면을 통해 세상사람들의 가슴에 가닿았다. 이름없는 풀에서 존재의 승리를 포착하고(90년 3월8일) 죽순의 마디에서 저항의 흔적을 담담히 읽어내는(90년 4월6일) 삶의 깊이는 논리를 뛰어넘는 울림으로 감성을 적셨다.

논단을 둘러싼 일화도 불합리한 시대의 초상을 보여준다. 89년 북한 취재계획 관련, 리영희 선생이 구속되는 바람에 93년까지 그의 글을 만나볼 수 없었다. 창간 전부터 언론인으로 이미 명성이 높았던 최일남 논설위원이 그 빈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5공역으로 가는 6공열차”(90년 3월25일)라며 비유와 풍자가 흐르는 질박한 문장으로 세태를 고발했다. 백낙청 교수도 남북작가회의 예비회담에 참여하려다 판문점에서 연행돼 89년 3월30일치 논단을 ‘펑크내기도’ 했다.


또 한축의 내부논객
어둠에 맞서 정의를 말하다
임재경· 김종철· 정운영 (왼쪽부터)
임재경· 김종철· 정운영 (왼쪽부터)

‘한겨레논단’ 못지않게 내부 필자도 쟁쟁했다. 89년 1월28일, 초대필진 임재경 논설주간, 신홍범·김종철·박호성 논설위원으로 시작된 ‘아침햇발’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또 한 축의 논객의 요람이다. 노동문제를 날카롭게 파헤친 김금수 전 논설위원, 호방한 문체가 돋보인 임재경 전 논설주간, 동아일보 편집국장 자리를 내던지고 “자본과의 싸움”에 나선 김중배 전 사장, 정치문제를 명쾌하게 일도양단한 김근 전 논설주간, 지역차별문제를 정면으로 파고든 김종철 전 논설위원 등이 독자들의 아침밥상을 푸짐하게 차렸다.

“<한겨레신문>은 여러모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모양이다. 낙종과 직무유기의 관계는 덮어두더라도 보도지침 덕분에 베개를 높이 베고 아침잠을 즐기던 분들이 눈을 뜨자마자 부리나케 조간신문을 찾게 되지 않았는가.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월요일 아침에 나오지 않는 <한겨레신문>을 무척 아쉬워하는 사람이 더 많다.” 임재경 전 주간이 91년 8월10일 지령 1천호를 맞아 쓴 글에서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 약했던 한겨레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경제전망대’에서 ‘전망대’로 다시 ‘정운영 에세이’로 문패를 바꿔가며 창간 때부터 10여년 동안 쉼없이 경제담론을 생산한 정운영 전 논설위원의 칼럼은 팽팽한 장력이 돋보이는 글로 인기를 끌었다. 윤기 흐르는 문장과 삐딱한 눈으로 중심부를 헤집어내는 내공은 칼럼의 전범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르크스 경제학을 기반으로 한 “인간의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는 지론은 한치의 빈틈없는 사유로 녹아들었다. 글의 결은 기운 흔적이 전혀 없을 정도로 정치했다.

담론의 다양화·전문화
억압에 맞서 약자를 말하다
조한혜정· 정희진· 셀리그 해리슨 (왼쪽부터)
조한혜정· 정희진· 셀리그 해리슨 (왼쪽부터)

95년 2월 끝나는 ‘논단’이 격정과 분노를 쏟아내며 거대한 세상과 호흡하는 장이었다면 뒤이은 대표칼럼 ‘시평’은 복잡하게 쪼개져 가는 세상을 세밀하게 파고드는 공간이었다. 시평은 경제·국제·남북관계 같은 거대주제뿐 아니라 생활·여성·문화·문명·환경·과학 등 세부 분야도 고루 아울렀다.

94년 9월1일부터 2005년 5월14일까지 게재한 ‘시평’에는 당대의 숱한 지성이 족적을 남겼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조한혜정(연세대 교수·인류학), 이나미(신경정신과 전문의), 박혜란(여성학자), 조은(동국대 교수·사회학)씨 등 여성필자의 대거 등장이다. 남녀평등은 구호일 뿐 대기업 원서조차 남학생한테만 돌리던 시절, 그들은 한겨레를 매개삼아 양성평등사회를 견인했다. 조한혜정(연세대 교수·인류학), 이나미(신경정신과 전문의), 박혜란(여성학자), 조은(동국대 교수·사회학)씨 등 여성필자의 대거 등장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남녀평등은 구호일 뿐 대기업 원서조차 남학생한테만 돌리던 시절, 그들은 한겨레를 매개삼아 양성평등사회를 이끌었다. 키 1m60 이상, 몸무게 50㎏ 이하 용모단정 사회, 군 가산점, 가정폭력, 핏줄주의 등 숨어있던 문제들이 차례로 불려나와 쟁점이 됐다. 2003년 등장한 젊은 여성학자 정희진씨는 발군의 필력을 발휘하며 논의의 수준을 한단계 올렸다. ‘스와핑을 위하여’ ‘나이듦과 늙음’ ‘여성정치인은 여성을 대표한다?’ 등 쓰는 칼럼마다 우리 안의 차별성을 깨뜨리는 ‘망치’가 되었다.

94년부터는 외국 필자들도 균형잡힌 바깥시선으로 ‘정론 한겨레’를 탄탄히 떠받쳤다. 일본의 양심적 지성 와다 하루키(도쿄대 명예교수)와 통신사 <에이피> 기자 출신인 셀리그 해리슨(미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은 동북아 정세와 남·북·미·일 관계를 깊이 있게 분석하는 탁견으로 아전인수식의 외신보도에 오염된 국내인식을 바로잡아갔다.

스타필자의 시대로
시대를 앞서 희망을 말하다
강준만· 홍세화·  박노자 (왼쪽부터)
강준만· 홍세화· 박노자 (왼쪽부터)

2000년을 전후해서 정연주 전 논설주간과 손석춘 전 논설위원은 보수언론을 향한 ‘쓴소리 칼럼’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언론개혁 논쟁의 중심에 섰다. ‘정연주 칼럼’을 선명하게 각인시킨 건 ‘조폭언론’이란 말이었다. 2000년 10월11일 ‘한국신문의 조폭적 행태’란 글을 시작으로, 25일, 11월8일 세차례에 걸쳐 쓴 ‘조폭언론’ 시리즈는 언론개혁의 공감대를 확산시켜 국민운동을 이끌었다. 99년부터 연재한 ‘손석춘의 여론읽기’도 딱 떨어지는 논리로 보수언론이 주입하는 여론의 함정을 짚어내며 젊은층의 사랑을 받았다.

언론권력에 대한 비판하면 강준만 교수도 빼놓을 수 없다. 91년부터 약 3년간 ‘언론 ‘자기개혁’은 어디까지’ ‘언론은 정권의 도구인가’ ‘진짜 사이비언론은 누구인가’를 되물으며 수구언론과의 한판 전쟁을 벌여 지면이 시끌했다. 펜대를 맨 게릴라 전사는 97년 ‘시평’으로 2001년 ‘언론비평’으로도 재등장했다. 다시 2008년 5월, ‘강준만 칼럼’으로 돌아온다.

창간 10년을 기점으로 99년 대폭 개편된 지면에는 두 ‘이방인’ 논객의 등장이 유독 눈길을 끌었다. 한국사회에 ‘빨간신호등’을 켠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씨(한겨레 기획위원)와 ‘서울돋보기’를 들고 익숙한 일상의 낯선 판독을 시작한 러시아에서 귀화한 박노자씨(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가 그들이었다. 이후 둘다 한겨레의 십년지기 명칼럼니스트가 됐고 각종 강의 요청이 쇄도해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얻고 있다.

국외자의 시선으로 ‘한국의 티눈’을 예리하게 포착해내는 홍세화씨의 선명한 메시지와 정연한 논리 앞에 남성중심사회, 경제동물사회, 학벌중심사회는 통쾌하게 나가떨어졌다. 조선일보의 ‘최장집 교수 사상검증’에 대해 ‘나를 고소하라!’(99년 11월29일치)고 쓴 칼럼은 ‘우리도 고소하라’며 서명운동에 나선 안티조선운동을 촉발했다. 2002년 귀국과 더불어 한겨레 ‘내부자’가 된 그는 ‘왜냐면’이란 지면을 만들어 시민사회의 토론문화를 꽃피우기도 했다.

박노자 교수는 그야말로 한겨레의 ‘발굴’이었다. ‘야!한국사회’로 ‘길라잡이’로 ‘박노자 칼럼’으로 새로 깔린 멍석에서 지가를 올리는 동안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란 러시아 이름은 지워져 갔고 인기칼럼은 <당신들의 대한민국>(2001)이란 책으로 묶였다. 그의 날카로운 지성은 한국의 대학, 종교 문제, 국가주의, 인종주의 등 일상적으로 길들여진 도그마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김선주 칼럼’과 ‘정혜신 칼럼’은 읽는 맛까지 덤으로 얹어줘 두고두고 보고 싶은 칼럼이다. 칼럼이 나간 날이면 책으로 묶어내 달라는 독자의 성화가 따른다. 작은 일상에서 직조되는 맛깔스런 논리의 김선주 전 논설주간의 글에는 ‘내가’ 녹아 있다. 이데올로기를 앞세우지도 관념어를 내비치지도 않지만 마지막 문장을 읽을 즈음이면 본질에 가닿아 있는 게 그만의 마술이다. ‘1억달러 내각’ ‘자석 언론’ ‘이학수 보고서’ ‘원칙 없는 원칙’ ‘판사들의 나라’ ‘그게 다가 아니다’ 등 제목이 언제나 다섯자 안팎일 정도로 엄밀한 글쓰기를 하는 정혜신씨(정신과 전문의)는 정신분석학으로 세상일의 단면을 예리하게 분석해내는 특이한 필자다. 그 촘촘한 내용으로 채워진 콘텐츠의 차별성으로 많은 독자들을 불러모았다.

이밖에 해박한 사회과학적 지식으로 무장한 박명림(연세대)·조효제(성공회대) 교수, <88만원 세대>(2007)로 성가를 올리고 있는 우석훈(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씨, 미문의 곽병찬 논설위원, 정치를 쾌도난마하는 성한용 선임기자 등이 오늘도 시대모순을 증언하며 한겨레 담론의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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