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창간 30년-디지털 아카이브]
2009년 5월 15일 한겨레신문 21면
<한겨레>가 창간 스무 돌을 맞았다. 사람으로 치면 성인이 된 셈이다. 1987년 ‘6월 항쟁의 아들’로 탄생한 한겨레는 그동안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지향해 왔다. 한겨레가 여기까지 오는 데는, 때로는 질책을 때로는 격려를 아끼지 않은 주주·독자들과 국민의 성원이 있었다. 사회 각계 독자들로부터 ‘성년 한겨레’에 대한 바람을 들어봤다.
■ 경영다져 생활걱정 덜길
곽신도 (창간독자, 경기 고양시 중산동)
<한겨레> 창간 때 40대 후반이던 나는 이제 일흔을 바로 코앞에 둔 지금까지 20년을 한결같이 한겨레를 나의 반려자로 삼아 쭉 함께 해 왔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럴 것이다.
그동안 나는 한겨레를 통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인식의 폭과 깊이를 전보다 넓고 깊게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나의 내면의 삶도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갱신을 하며 성장해 왔다고 느끼고 있다. 참으로 나는 한겨레에 신세를 진 것이다. 탄생 스무 돌을 맞이한 어찌 깊은 감사와 축하를 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겨레가 최근 3년 동안 적지만 연속 흑자를 본 소중한 경영의 불씨를 계속 살려 나가기를 기원한다. 경영진에게 간절히 주문하고 싶은 것은 내부 종사원들이 좀더 품위에 걸맞은 충분한 급여를 받아 생활 걱정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이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시대를 더욱 올곧은 정론으로 독자와 우리 사회의 의식을 일깨우는 몫을 해 주기를 기대한다.
지금까지 고비 고비마다 우리의 길을 밝혀 준 한겨레가 이제 스무 돌의 성년식을 맞았으니 그 노고에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낸다.
■ ‘성년 언론’으로서 책임 막중
변선영(대학생, 이화여대학보 편집장)
얼마 전 1988년 5월15일치 <한겨레> 창간호를 읽어 볼 기회가 있었다. 당시 “집권층이 아닌 국민 대중의 입장에서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위에서가 아니라 밑에서 볼 것이다. 기성언론과는 시각을 달리할 것이다”라는 발행인의 창간사에서 한겨레의 기본정신을 읽을 수 있었다. 김수환 추기경, 김지하 시인뿐 아니라 리영희 선생, 이오덕 선생 등 당대 비판적 지식인들이 기고한 글 역시 상당한 읽을거리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상 깊게 본 것은 막노동 노동자, 연탄가게 사장·농민·택시운전사 등 우리 주변에서 가깝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보내 온 창간 축사 메시지들이었다. 소외된 계층, 억압받던 사람들을 대변해 온 한겨레의 성격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년의 시간이 흘렀다.
한겨레의 창간 20돌 기념일은 사람으로 비유하면 이제 ‘성년의 날’을 맞이했다는 의미가 있다. 성년이 된다는 것은 무엇보다 자신의 모든 결정뿐 아니라 언행과 행동에 좀더 책임감을 가진다는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앞으로도 한겨레가 민주주의 신문, 언론개혁에 앞장선 신문, 책임감 있는 언론으로 독자들의 사랑과 신뢰를 받길 기원한다.
■ 아이들 장래 비춰 줄 등대로
이상승(회사원, 한국타이어 문화교육팀장)
거대한 정치적 이념도 우리네 소소한 생활을 행복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뚝뚝 매듭지어진 결과물이 하루하루 모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매듭들이 만들어지는 공간의 중심에 <한겨레>가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어디쯤에 와 있는지, 그리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반성하고, 함께 행복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길에 대해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진지하게 얘기할 수 있는 공동의 터전 말이다.
국제정치와 경제의 흐름이 개인들의 일상생활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해 보다 쉽고 간결하게 해설하고 안내하면서, 내 곁에서 친구처럼 안부를 묻고, 생활의 조언을 해주고, 더욱 치열해지는 경쟁의 틀 속에서 공동의 가치관을 형성하게 해주는 역할을 기대한다. 그것이야말로 뉴스의 범람과 가십성 기사의 홍수 속에서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하는 참언론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앞으로 우리 아이가 살아갈 20년은 지나온 20년보다 훨씬 행복하고 밝은 사회가 될 것을 믿는다. 나와 세계가 소통하는 중심에서, 소통의 연결통로가 될 <한겨레>가 우리 아이들의 장래에 뚜렷한 등대의 역할을 맡아 줄 것을 당부한다.
■ 서민에 위로·희망 줄 벗 기대
정현주(주부, 서울 양천구 신정동)
평범한 샐러리맨인 남편과 초등 6학년 딸아이를 둔 주부다. <한겨레> 창간을 가슴 벅찬 감동으로 맞이하였던 때가 대학생 때였다. 그때부터 쭉 <한겨레>는 늘 가까이에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전해주는 벗으로 함께해 왔다.
<한겨레>는 이 사회의 소외된 계층을 위해 일하고 있는 참다운 진보세력을 적극적으로 보여주고 그들의 목소리를 많이 실어주기 바란다. 특히 한-미 에프티에이나 쇠고기 수입 등으로 가장 고통받는 농민들의 처지를 생각해줬으면 한다. 거친 시위 모습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처한 현실과 고통을 잘 살펴주었으면 좋겠다. 건강한 농업은 국민에게 안전한 밥상을 보장해줄 뿐 아니라 환경을 살리는 데 가장 중요한 부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다 보니 항상 관심 있게 보는 면은 아이들 교육에 관한 내용이다. 요즘 아이들이 성적 경쟁과 학원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며 많은 우려를 하면서도 혹 내 아이만 처지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다. <한겨레>에서 종종 소개해주는 대안교육의 장들과 그들의 교육 모습은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한겨레>가 서민들에게 위로가 되고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는 벗으로 영원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고정관념 벗고 다양성 필요
송희영(조선일보 논설실장)
20년 독자로서 세 가지만 부탁드리고 싶다. 우선 편집의 다양성이다. 사설이나 칼럼, 기사 등의 제목만 보고서 ‘역시 한겨레답다’라는 생각이 들면 더 그 기사에 눈길이 가지 않는다. ‘야, 이런 기사도 실렸구나!’ 라는 반가움을 자주 느끼고 싶지도 않지만, 가끔은 즐기고 싶다.
두번째는 경영이나 조직내 ‘분위기상의 보도지침’이 지면 제작에 압박을 주는 체제에서 더욱 탈피해야 한다. ‘특정 단체의 기사는 반드시 실어야 한다’ 든지, ‘거기서 말한 정보는 언제나 무시해도 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면 벌써 기사 방향도 정해졌다는 얘기다. 이런 보이지 않는 지침이 특히 경영의 이해와 관련 됐을 때는 가장 치명적인 결과를 빚을수 있다.
세번째 부탁은 다른 견해를 가진 인재의 확보다. 이는 단지 기자나 논설위원처럼 조직 안에서 일하는 사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외부 필자나 기획취재 때의 조언자 또는 전문가들을 선정할 때도 마찬가지다. 좀더 다채로운 얼굴이 나오면 독자 반응도 달라질 것이다.
솔직히 이런 부탁은 따지고 보면 한겨레뿐만 아니라, 한국의 많은 언론이 안고 있는 공통된 고민이다. 다만 누가 좀더 노력하느냐에 따라 독자의 반응이 달라질 뿐이다.
■ 깊이있는 보도·분석 내놓을 때
정관용(시사평론가)
창간 스무 돌 성년을 축하한다. 창간 주주의 한 사람으로 사랑하는 만큼 주문도 많다.
첫째 깊이다. <한겨레> 창간으로 상징되는 민주화 20년, 이제 우리 언론은 각자 나름의 색깔을 자유롭게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지난 정부에서 정권과 일부 언론이 선명한 대립각을 세우면서 각자의 위치 선정은 좀더 분명해졌다. 하지만 그 결과 그저 다른 색깔만 드러내면 그만인 ‘서로 싸우기만 하는 수준’의 언론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돌아봐야 한다. 이젠 각자 자신의 위치와 색깔에서 좀더깊이 있는 보도와 분석을 내놓아야 할 때다.
둘째 관점의 틀에 갇히지 않는 비판의식이다. 언론의 생명은 비판의식에 있다. 그런데 자신과 같은 편이라는 이유로 비판의식이 무뎌지는 경우를 종종 본다. 반대로 다른 편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비판, 그래서 매도가 돼 버리는 경우도 없지 않다. 어느 편인가를 따지기 이전에 누구에게든 엄정한 시시비비를 가리는 비판의식을 기대한다.
셋째 다양성이다. 누구나 관심 갖는 이슈를 따라가는 언론이 아니라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영역에서 다양한 문제제기를 통해 사회의 의제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보여 달라. 성인은 책임이 무겁다. 성인이 된 한겨레가 그 책임들을 다하리라 믿는다.
■ 신뢰도 1위 놓치지 말았으면
손석희(성신여대 교수)
<한겨레>의 20주년을 축하한다. 돌이켜보면 20년 전 그때는 그렇게 조금씩 우리 사회에 새로운 장들이 열릴 때였나 보다. 물론 집약적으로 분출됐던 시민사회의 민주화 에너지를 그 동력으로 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언론에 있어서 <한겨레>의 출현은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한때 유행했던 광고 문구를 빌려 표현하자면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혼자 노라고 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때로는 저 같은 사람들에게는 ‘말의 근거이자 바탕’이 돼주기도 했다.
요즘도 가끔씩 나오는 언론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겨레>가 신뢰도에서 늘 첫 자리를 차지한다. 그 신뢰도가 구독률과 곧바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 항상 의아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아마도 정보의 질 못지않게 양이 중시되는 현상도 한몫을 하나 보다. 이렇게 말하면서 좀 미안하기도 하다. 한겨레가 당장 정보의 양을 대폭 늘릴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결국 한겨레가 나아갈 방향은 양에 있지 않다는 것도 아니까 크게 걱정은 하지 않는다. 예전에 ‘한겨레는 사실이 아닌 진실을 추구한다’고 광고했을 때부터 알아봤다. 다시 한번 축하한다.
■ 만평으로 더 속시원하게
호란(가수)
한참 세상이 떠들썩하다. 사건도 많고 걱정도 많다. 사회나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도 일부러 공부를 해가며 열띤 토론을 벌이고, 사상이니 이념이니 하는 단어들과는 가장 거리가 멀 듯한 고사리손 소녀들까지도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이고 있는 요즈음이다.
믿을 수 없는 정보가 넘쳐나고, 과연 내가 보고 듣는 것이 진실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때, 역설적이게도 공정한 보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강하게 느껴진다.
넓지도 않은 땅덩어리인데 이 작은 세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제대로 알기가 어렵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의도였는지,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는 치우침 없이 가장 진실한 정보만을 알고 싶다.
그 와중에도 <한겨레>는 언제나 중립적인 정보만을 전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이런 가장 기본적인 신문의 역할도 제대로 수행하는 매체를 찾기 힘든 요즈음, <한겨레>가 있다는 것은 큰 위로가 된다.
짧고도 긴 20년이었겠지만, 앞으로도 믿을 수 있는 신문으로서 도도하게 시대를 기록해 나가주시기 바란다. 속 시원한 만평도 늘 기대하고 있겠다.
■ 땀의 가치·열정 뭉친 골 기대
차범근(프로축구 수원삼성 감독)
동대문시장에서 산 싸구려 스웨터와 운동화 차림으로 아무도 기다리지 않던 독일로 혼자 날아가 테스트를 통해 분데스리가 무대를 밟았다. 나를 뽑은 프랑크푸르트 구단조차 “한국에서도 축구를 하느냐”고 물을 만큼 이방인이었던 내가 독일에서 힘을 내며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우리 국민들의 뜨거운 응원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겨레>도 국민들의 응원으로 탄생한 국민주 신문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겨레가 20년을 그래 온 것처럼 앞으로도 국민들의 변함없는 사랑과 응원을 바탕으로 항상 올바르고 정확한 기사를 통해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저는 선수들에게 운동장에서 열정을 100% 다 쏟아내고 몰입하라고 얘기한다. 그래야 관중들이 감동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넣은 골만이 땀의 가치를 대변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줄 수 있다. 한겨레 지면에서도 그런 땀의 가치와 열정이 응축된 골들이 계속 터지기를 바란다. 또한 우리 축구의 뿌리라 할 수 있는 프로축구에도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기를 축구인의 한사람으로서 부탁드린다. 한겨레 신문의 20돌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 늘 보통사람 편에 서 있길
김민영(참여연대 사무처장)
대선, 총선을 지나며 몸과 마음이 움츠려졌던 것이 사실이다. 지난 20년 우리가 해 왔던 민주개혁, 사회개혁,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이 헛된 것이었나 고민도 됐다.
그러나 우리가 걸어 온 고비마다 늘 그랬던 것처럼, 그곳에는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들이 있었다. 또다시 광장으로 나와 아름답게 피어나는 촛불을 보며 마음을 고쳐먹는다. 광장에 나온 촛불은 잊혀진 것만 같았던 국민주권의 대명제를 끄집어내고는 참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묻고 있다. 보통사람들이 살 만한 사회의 모습은 어떠하며 정부의 책임과 소임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오랫동안 우리가 붙잡고 씨름해 왔던 질문이지만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바뀌었으며 세상도 변했다. 시대가 달라졌으니 그 답 역시 변해야 한다. 새로운 20년을 시작하는 한겨레신문이 꼭 붙잡고 가야 할 화두도 결국은 광장에서 터져나오는 바로 그 질문이 될 것이다. 늘 그렇듯 역사를 바꿔가는 힘은 저 위가 아닌 아래, 머릿속이 아닌 바로 이땅의 현실에 있다. 관성에 찌들지 말고, 쉽게 좌절하지 말고, 적당히 타협하지 말고 보통사람의 편에 서서 우직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 될 것이다. 많이 늦었지만 끝난 것은 아니다. 다시 시작해 보자.
■ 비정규직 큰 절 받는 신문 되라
조문돈(민교협 상임의장)
<한겨레> 스무돌. 잔치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한겨레>가 출범하며 세상을 향해 큰절을 했듯이, 국민들이 <한겨레>가 열어 놓은 진보 세상을 환호하며 <한겨레>에 큰절을 하는 모습. 우리가 20년 전 꿈꾸었던 오늘의 모습은 그쯤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은 너무 다르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검은 돈이 만들어져 세상을 어지럽혔지만, 삼성재벌 총수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청와대도, 국회도, 검찰도, 사법부도, 언론도 삼성재벌의 손바닥 위에서 재주를 부리고 있다.
우리는 자본의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삼성특검이 삼성에 면죄부를 준 것,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노동기본권을 외치는 노동자들로 감옥은 넘쳐나고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랜드-뉴코아는 300일, KTX는 800일, 기륭전자는 1000일.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인가? 자본가에게는 천국, 노동자에게는 지옥.
모두를 위한 신문이 되려고 하지 말라. 자본의 전단지는 지천으로 널려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큰절을 받는 신문이 되라.
■ 기업 성장에도 격려 부탁
이승철(전경련 전무)
참언론을 표방하고 시대정신을 앞장서 개척해 온 <한겨레>의 창간 20돌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세계 역사상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최초의 국민주 신문으로 창간된 한겨레는 지난 20년 동안 우리 국민들의 소중한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정론지로서의 소임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그 덕분에 무엇보다도 최근에는 국내 전문가 집단으로부터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매체’로 선정되는 등 양적으로나 질적인 측면에서 커다란 성장을 이루었다.
그리고 민주·민족·통일의 3대 창간정신을 바탕으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을 대변하는 데 그 누구보다도 많은 기여를 해 왔다.
이제 새로운 도약의 20년을 준비하는 한겨레가 앞으로도 우리 사회를 깨끗하게 정화시키는 산소 같은 신문으로 거듭나고, 국민들에게 항상 사랑받는 한국의 대표 신문으로 꾸준히 발전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또한 앞으로 우리 기업들이 국민들로부터 더욱 사랑을 받으며 알차게 성장할 수 있도록 더욱 많은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격려해 주시길 부탁한다.
■ 중소기업에 더 귀 기울여달라
한미숙((주)헤리트 사장)
최근 신문들을 보면 미디어 경쟁이 심해지고 상업화되면서 기사를 광고와 연결시키는 경향이 강해졌다. 언론이 기업·정부와 친밀성을 넘어서 서로를 일종의 사업 파트너로 삼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독자로서 또 기업인으로서 신문에 실린 경제기사들을 신뢰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한겨레>는 창간 때부터 국민주 신문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언론의 역할과 사명에 대한 인식이 뚜렷한 것 같다. 한겨레 사람들을 만나보면 기업문화가 남다르고,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뭉친 사람들이라는 게 느껴진다.
모든 언론사들이 ‘A’라고 말할 때 ‘B’라는 시각을 보여주는 신문은 한겨레뿐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대부분의 언론기사를 인터넷으로 읽지만, 한겨레만큼은 지면을 펼쳐놓고 찬찬히 읽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살 성년이 된 한겨레에 축하 인사를 건네면서, 동시에 ‘민원’도 넣고 싶다. 중소기업 섹션을 따로 만들고, 중소기업들의 얘기를 지면에 더 많이 담아 달라는 것이다. 대기업과 재벌 위주의 경제구조에서, 중소기업도 한겨레가 지켜줘야 할 ‘마이너리티’(소수자)이기 때문이다.
■ 노동자에게 희망의 횃불이
이석행(민주노총 위원장)
‘대출받아 주주로 참여하던 벅찬 기억을 떠올리며’
80만 조합원과 1500만 노동자를 대표해 <한겨레> 창간 20돌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1980년대 초 노동운동을 시작하고 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을 지나오며 가장 절실했던 것은 민중들의 억울한 사연이 신문에 한 줄이라도 실리는 것이었다. 한겨레는 그러한 민중의 열망이 빚어낸 민주화 운동의 성과였다. 한겨레 창간에 참여한 6만여 주주는 단지 신문이 아닌 시대의 희망을 원했고, 나 역시 설레는 마음으로 마을금고 대출을 받아 주주로 참여하던 기억과 한겨레 제호가 선명한 신문을 처음 받아보며 가슴 벅찼던 기억이 또렷하다.
20년, 수많은 시련과 역경을 견뎌 온 청년 한겨레! 이제 당당한 민주언론, 진보언론으로 우뚝 선 만큼 기대도 높다.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에게 보내는 한겨레신문의 따뜻한 시선을 알기에 노동자에게 한겨레는 더욱 소중하다. 노동자에게 한겨레는 시대를 향한 창이었고 민중들에게 한겨레는 진보를 향한 연대였다. 한겨레 20년 역사는 민주화 투쟁의 역사와 다르지 않다. 앞으로도 한겨레가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에 내몰린 노동자 민중을 충실하게 대변할 것을 믿는다. 민주노총 또한 한겨레와 함께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갈 것이다.
■ 북 주민들 인권 외면말아야
홍진표(자유주의연대 사무총장)
20년 전 민주화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탄생한 <한겨레>는 민주주의의 확대를 일관되게 추구해왔으며, 이는 시민권의 확장을 생명으로 삼는 자유언론의 본능과 부합되었다. 다만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특정 이해집단의 기득권이 보호되고, 민간의 자율을 옥죄는 정부의 개입 확대가 옹호되는 현상들도 나타났다. 어떠한 특권도 제한해나간다는 민주주의의 원리와 배치되는 이런 결과들은 도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의 빈곤을 뜻할 수 있다.
한겨레가 추구하는 또 하나의 가치는 그 제호가 말해 주듯이 민족주의이며 민족통일 우선주의로 표현된다. 이는 화해와 포용의 이름으로 북한 정권에 대한 무제한의 관용으로 나타나기도 했는데, 폭압과 빈곤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의 인권 외면이라는 어두운 그늘을 남겼다.
정치적 관심이 무척 높고 이상주의를 선호하는 한겨레의 독자층은 우리 사회 진보의 기반으로 인정된다. 어제의 진보적 논리가 오늘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빠른 시대 변화 속에서 정보의 가치는 더욱 중요해졌다.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한 축인 진보가 시대착오에 빠지는 않도록 세상의 변화를 친절하게 읽어주는 한겨레의 역할은 점점 더 막중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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