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철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미디어전망대
‘미국 쇠고기 반대운동’을 촉발한 <문화방송> ‘피디수첩’의 공정성을 두고 일각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정부는 언론중재위에 이 프로그램을 제소하였다. 한승수 총리도 담화문을 통해 과학이 아닌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는 엄중히 대처하겠다고 경고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박명진 위원장도 취임사에서 “방송의 편파성 시비를 극복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많은 이들은 ‘피디수첩’이 최종적 사실을 전달한 것이라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다면 무책임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피디수첩’이 과학적 결론을 이야기할 능력은 애초부터 없다. 세계적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논란 중인 광우병을 두고 방송제작진이 어떻게 모두 다 알겠는가?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지속적으로 보도해 온 <한국방송>의 이강택 피디도 한 세미나에서 “우린 기본적으로 그런 능력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언론은 전문지식 없이도 사회적으로 우려되는 문제를 공론화하는 구실을 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이 몇 해 전 방영한 바 있는 ‘황우석 신화’ 보도 또한 황교수 논문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 것이었다. 이번 방송도 ‘우려’이지 ‘과학’ 자체는 아니다.
과학적 전문성이 없다면 프로그램에 찬반 의견이나마 모두 담았어야 했다고 비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방송의 경우 정규 뉴스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균형성은 반드시 단위 프로그램 내에서만 달성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채널 전체를 통한 균형 편성으로도 가능하다. 아니면 이번처럼 정부 및 일부 신문에 맞서는 편성으로 사회적 차원의 균형성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사회적 차원에서 보면 ‘피디수첩’의 보도는 정부의 쇠고기 협상 결과 홍보에 대한 용기 있는 반론이었다. 정부와 일부 신문은 다시 반대 논리로 맞섰고 <한겨레> 등 다른 언론은 이를 또다시 반박했다. 이렇게 다양한 정보와 주장이 오가는 가운데 시민들은 협상에 문제가 있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갔던 것이다.
영국 ‘국가 소비자 평의회’(NCC)가 조사한 바로 시민들은 광우병 이슈 등에서 자신들의 위험과 이득을 저울질하는 데 매우 숙련돼 있다. 이들은 비록 의약 등 전문분야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하지만 미디어의 정보를 참조해 꽤나 정확한 판단을 내린다. 정부나 사회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평판이나 권한을 보호하는 데 얽매일 수 있지만 시민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시민들이 언론공방을 충분히 접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견해를 만들어 가는 현상은 한국 사회의 진보를 보여준다. 지난 대선기간 김근태씨가 “국민이 노망든 것 아니냐”고 한탄했다지만, 정작 우리 국민은 자신들의 역할을 잘 실천하고 있었다!
언론은 중요 사회이슈에 대해 진정성과 믿을 만한 근거를 가지고 보도에 나서야 한다. 이점에서 ‘피디수첩’은 공정했다. 보수신문들의 반박 또한 나름의 근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좌파선동’이라는 늘어진 녹음테이프를 반복해 틀어대는 것만큼은 이제 그만두었으면 한다. 논리가 아닌 낙인찍기나 조롱으로 상대를 쉽게 제압하려 나섰다간 정당한 논지마저도 오히려 불신당한다. 언론은 공정한 보도를 통해 시민의 판단을 돕는 겸손한 역할에 머물러야 하겠다. 전문인들의 ‘과학적 가치판단’과 언론인의 ‘공정한 가치판단’을 참조하여 최종의 ‘사회적 가치판단’을 내리는 것은 바로 시민이기 때문이다.
강형철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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