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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미디어전망대] 구본홍 사장이 정작 지켜야 할 것

등록 2008-10-28 20:37

성한표 언론인, 전 <한겨레> 논설주간
성한표 언론인, 전 <한겨레> 논설주간
미디어전망대
구본홍 <와이티엔> 신임 사장이 노조의 거부로 출근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가 100일을 훌쩍 넘겼다. 와이티엔 사태에 대해 구 사장의 상황을 잘 아는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대체로 지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사장 역할을 하겠다고 더 이상 버티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하여 이제 와서 사퇴하기는 더 어려울 것이라는 뜻이다.

설사 구 사장이 사퇴하고 싶어도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청와대가 사퇴를 막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선’에서 버티지 못하고 이탈한 것으로 찍혀 이명박 정권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지 않으려면 청와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추측의 밑바닥에는 평소 행동으로 보아 그가 이 정도의 수모를 당하면서까지 ‘자리’에 연연해 할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대선 당시 후보의 언론 특보였다가 대선 후 방송사 사장으로 선임된 언론인은 이전에도 있었다. 대선 때 노무현 후보의 언론 고문을 지내고 대선 후 2003년 3월 <한국방송> 사장으로 선임된 <경향신문> 서동구 전 편집국장이 그렇다. 이때에도 내부에서 ‘낙하산’ 논란이 일어났다. 그러자 서 사장은 일주일 남짓 만에 사장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이와 같은 서 사장의 ‘신속한’ 대응에 대해 너무 성급한 ‘항복’이라면서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조금만 더 버티면 기정사실화 될 것이고, 그 뒤 3년 동안 훌륭한 업적을 남겨 재평가를 받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는 자진사퇴를 통해 두 가지 일을 해냈다. 하나는 대선 캠프에서 일한 사람이 대선 후 공영방송 사장이 될 수는 없다는 전례를 만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언론인으로서의 명예를 지킨 일이다.

5년 전 케이비에스에서 서 전 사장이 직면했던 것과 꼭 같은 상황을 구본홍 사장이 와이티엔에서 직면하고 있다. 그런데 구 사장은 버티기를 선택함으로써 서 전 사장과는 다른 대응을 보였다. 그것은 노조원들의 사장 출근저지투쟁, 단식투쟁, 손팻말시위, 공정방송 리본 달기, 사장실 앞 농성, 회사 쪽의 노조원 고소, 노조원 징계라는 악순환을 불러왔다.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90년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서기원 전 케이비에스 사장은 강수에 강수를 거듭하면서 노조원들의 저항을 징계와 사법처리를 통해 ‘유혈’진압하고 사장직을 굳힐 수 있었다. 구본홍 사장은 5년 전에 조기 사퇴의 결단을 내렸던 서동구 전 사장이 아니라 18년 전 서기원 사장이 걸었던 길을 걸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18년 전과 지금은 조건이 확연히 다르다. 당시는 직선제 개헌으로 군사정권을 종식시키긴 했지만, 민주주의가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 우리사회의 민주화는 이미 되돌리기 어려울 만큼 진전되었고 와이티엔 사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18년 전의 케이비에스 사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구 사장이 자신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해야할 때가 되었다. 그가 끝까지 붙들어야 할 것은 언론인으로서의 자존심이다. 지금은 당장의 좌절이 커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역시 언론인일 수밖에 없고, 언론인의 삶을 지탱해 주는 바탕은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구 사장의 결단을 기대한다.


성한표 언론인, 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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