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공영방송 예결산 국회승인 의무화 추진
정부의 입맛·입김 따라
프로그램 좌지우지 우려
정부의 입맛·입김 따라
프로그램 좌지우지 우려
한나라당은 공영방송 예산과 결산의 국회 승인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공영방송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이 법이 통과될 경우 <한국방송>은 현재 의무 사항인 결산승인에 더해 예산 편성 단계에서 국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정치권과 언론계에서는 이런 발상은 일본의 공영방송 <엔에이치케이>(NHK) 모델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국민의 돈을 쓰는 만큼 예산도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게 이 법안의 논리이다.
하지만 이렇게 될 경우, 정부와 정치 권력의 개입 가능성을 높여 결과적으로 방송의 자율성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된다.
일본 공영방송 예결산 시스템의 제도상 문제점은 2005년 1월 <아사히신문> 특종보도로 드러났다. 엔에이치케이는 2001년 1월30일 방송된 ‘전쟁을 어떻게 재판할 것인가’라는 시리즈 프로그램 중 2회분 ‘전시 폭력을 묻는다’에서 천황 및 일본군의 증언 등 4분 가량의 방송 분량을 삭제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신문은 아베 신조 당시 관방부 장관과 나카가와 쇼이치 의원 등 우파의원들이 방송 전날 엔에이치케이 간부를 불러 “방송내용이 편향적이다. 공평하게 하라”라며 압력을 가해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프로그램 제작국장은 “국회에서 방송사 예산이 심의되는 시기에 정치권과 싸울 수 없다”고 내용 변경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지방재판소도 지난 2007년 1월 ‘전쟁과 여성폭력 일본네트워크’라는 민간단체에서 엔에이치케이의 프로그램 일부 삭제에 대해 제기한 소송 판결에서 “방송사 간부가 사전에 정치인들을 면담하고 상대의 발언을 필요 이상으로 중요하게 받아들여 별탈없는 프로그램으로 내용을 변경했다”고 엔에이치케이의 권력굴종을 질타했다.
아사노 겐이치 도지사대학 교수(미디어학)는 <한겨레>와 전화통화에서 “엔에이치케이는 1981년 2월 록히드 사건를 회고하는 특집방송을 내보내면서 보도국장이 자민당 다나카파의 압력을 받고 미키 전 총리의 인터뷰 내용을 방송 직전 잘라냈다”며 “1996년에는 종군위안부 르포가 상층부의 개입으로 방송중지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현상은 제도적으로 공영방송이 권력에 묶여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엔에이치케이에 국회대책 담당 임원이 따로 있을 정도로 국회심의는 사할이 걸린 문제”라면서 “한국에서 일본 모델을 따를 경우 권력에 불리한 정보를 방송하기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일본 방송법 37조1항을 보면 엔에이치케이는 사업연도의 수지예산, 사업계획, 자금마련계획 등을 총무상에게 제출해야 한다. 총무상은 이를 검토한 뒤 의견을 첨부할 수 있어 <엔에이치케이>는 사실상 정부의 통제가 가능한 구조다. 독립적인 방송관련 위원회가 공영방송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영국 등과 사뭇 다르다. 올해 경영위원회의 감독권한 강화 등을 뼈대로 방송법이 개정된 것도 총무상의 ‘의견’에 따른 것이다.
경영위원 12명의 선정도 정부의 입김에 의해 좌우된다. 안창현 한국방송 방송문화연구소 일본주재원(도쿄대 박사과정)은 “내각부에서 형식적으로 위원 12명을 국회에 추천하나, 실제 명단작성은 총무성에서 한다”면서 “총무성의 입김은 일본 방송정책에서 절대적”이라고 지적했다. 아베의 브레인그룹인 ‘4계의 모임’ 멤버인 고모리 시게다카 후지필름 홀딩스 사장이 지난해 엔에이치케이 경영위원장에 취임하는 등 권력의 입맛에 따라 위원들이 선임되고 있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경영위원 12명의 선정도 정부의 입김에 의해 좌우된다. 안창현 한국방송 방송문화연구소 일본주재원(도쿄대 박사과정)은 “내각부에서 형식적으로 위원 12명을 국회에 추천하나, 실제 명단작성은 총무성에서 한다”면서 “총무성의 입김은 일본 방송정책에서 절대적”이라고 지적했다. 아베의 브레인그룹인 ‘4계의 모임’ 멤버인 고모리 시게다카 후지필름 홀딩스 사장이 지난해 엔에이치케이 경영위원장에 취임하는 등 권력의 입맛에 따라 위원들이 선임되고 있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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