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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통합방송법땐 삿대질 밤샘토론…지금 여당 왜 그런 절차 생략하나”

등록 2009-02-27 08:22수정 2009-02-27 10:20

강대인(계명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강대인(계명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언론법 졸속처리 안된다 ① 생략된 여론수렴 과정
99년 방송개혁위 부위원장 맡았던 강대인 교수
“한 정파가 밀여붙여 추진한 언론관련법은 통과돼도 법의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합니다.”

 1999년 제정된 통합방송법의 산파 역할을 한 ‘사회적 합의기구’ 방송개혁위원회(방개위) 실행위원장이자 부위원장을 맡았던 강대인 전 건국대 교수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한나라당의 조급증’을 비판했다.

 “방개위 때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했지요. 충돌하는 부분은 밤새워 토론했습니다. 고성과 삿대질이 오가며 만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 수긍을 합니다. 한나라당은 왜 그런 절차를 생략합니까.”

강 전 교수는 방개위의 성과로 방송의 정치적 독립 제도화를 들었다. 방송정책 권한을 방송위로 이관하고, 방송위를 민간위원이 참여하는 ‘합의제 행정기구’로 정립함으로써 정권의 ‘방송장악용 법’이라는 의혹에 종지부를 찍었다.

“방개위 때는 모든 채널을 열어놓았습니다. 여야 정치인뿐 아니라 방송사 노조와 경영진, 시민사회단체, 언론학계 등이 다 논의구조에 들어왔습니다. 한나라당은 참여를 거부했지만 실행위원장인 내가 직접 나서 한나라당 문화체육관광위(문광위) 간사였던 이경재 의원과 끈질기게 조정하고 의견교환을 했습니다. 결국 99년 말 한나라당의 동의로 법이 통과됐습니다.”

강 전 교수는 방송장악 논란과 조중동에 방송을 나눠주려 한다는 의구심을 떨치려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막상 정권을 잡자 공보처 폐지 약속에 미온적이었습니다. 방송 독립성 확보라는 여론이 비등하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직접 나서 정부에서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 강대인 교수 일문일답

-한나라당 언론법 입법 절차 문제점은?

 =현재 통합방송법이 제정된지 10년이 됐다. 그동안 미디어환경의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미디어법 제·개정을 논의하는 것은 당연하다. 민주당도 이 점은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회법과 달리 미디어법은 단순히 시장 변화에 대한 요구만으로 제·개정이 이뤄져선 안 된다. 여론지배력과 문화적 영향력을 고려할 때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합의와 시민사회의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1989년 노태우 정권 당시 방송제도연구회(방제연)나 1998년 김대중 정권 당시 방송개혁위원회(방개위)는 방송제도 개선을 위해 이해충돌 당사자의 충분한 논의를 이끌어냈다. 한나라당의 입법에는 그런 과정이 배제돼 있고, 형식적 절차마저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은 잘못이다.

 -한나라당은 입법 강행 이유는?

 =한나라당은 정권이 권력을 장악한 초기에 미디어법을 매듭 지어야 한다는 강박이 강한 것 같다. 그럴수록 사회적 동의를 위한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야 한다. 1998년 방개위 때는 지상파 방송사 경영진과 노조, 시민사회단체뿐 아니라, 위성방송, 유선방송 등 플랫폼별 사업자가 다 모여서 의견을 조정했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끝까지 방개위에 정당 대표로 들어오길 거부했다. 그러나 입안 과정에서 비공식적으로 한나라당과 지속적으로 정보를 공유했다. 실행위원장인 나는 한나라 문광위 미디어 담당의원이던 이경재 의원과 끈질기게 조율하고 의견교환을 했다. 99년 말 의원입법으로 법이 통과할 때 한나라당에서도 동의를 했다. 이번에는 왜 이런 과정을 뛰어넘고 가려는지 이해 안 된다.

 -1998년 12월 방개위가 발족한 배경은?

 =방개위는 방송제도와 법의 제·개정을 추진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기구로 구성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 공약으로 공보처 폐지를 약속했다. 1980년대 특히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거치며 방송의 공정성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됐다. 방송제도를 개선해서 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을 담보하고 공정성을 추구하자는 학계와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방송의 권력 종속에 대한 반발은 1980년대 중반 한국방송 수신료 거부운동으로 정점을 이뤘다. 공보처를 폐지해야 방송의 공익성이 담보된다는 여론을 ‘국민의 정부’가 수용해 ‘방송개혁 커뮤니티를 구성하자’ 이렇게 된 거다. 그런데 국민회의(민주당 전신)가 막상 집권하자 생각이 달라졌다. 정부·여당에서 두갈래 목소리가 나오게 됐다. 공보처 폐지보다 정부가 방송에 대한 규제권한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의견과 대통령의 공보처 폐지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이 몇개월간 엎치락뒤치락했다. 그러다 12월초 방개위 구성때 대통령이 선언했다. 정부에서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을테니 순수한 논의구조의 틀에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라고 했다. 강원용 목사도 방개위원장을 맡는 조건으로 정권의 입김과 무관한 독립기구 구성을 제시했다. 이 분이 팔순이 넘었을 때라 실행위원장으로 언론학자 중 나를 지목을 해서 맡게 됐다. 석달간 정치적 입김이나 압력이 전혀 없이 순수하게 논의를 했다. 한나라당도 인정할 것이다.

 -방개위 가장 큰 성과는?

 =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제도화했다는 것이다. 방송위를 합의제 행정기구로 제도화했다. 민간인 신분의 직원을 둔 방송 규제기구가 출범했다. 이전에는 수십년간 정부가 규제감독권을 행사했고, 상임위원은 정무직 공무원이었다. 방송위원 9명중 5명은 비상임위원의 민간인 신분이었다. 민간인 5명이 정무직 4명을 견제해 정파적 의사결정을 감시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방송위 2기에 와서 위원 구성이 약간 변질됐다. 야당몫이 하나 더 늘면서 상임위원 5명, 비상임위원 4명으로 구도가 바뀌었고, 상임위원들의 결의가 방송위의 결의로 굳어지면서 상임위원 견제 구조가 훼손되기 시작했다.

 두번째는 통합방송법 제정이 성과다. 이전에는 방송법, 종합유선방송법, 중계유선관리법, 한국방송공사법 등 네 법안에 관한 감독부처가 제각각이었다. 문화부는 종합유선방송법, 중계유선관리법은 정보통신부을 관할하는 식이었으나, 이걸 하나의 규제감독기구인 방송위로 일원화해 종합적 법체계를 만들었다. 방송법에서 가장 개혁적 조항은 시청자 주권 확보다. 방송법만큼 시청자 권익을 강조한 법은 외국에서도 찾기 힘들 정도로 선진적 법안이다. 시청자 참여프로 의무규정에 따라 지상파에 시청자평가위와 시청자평가 프로그램이 생겨났다. 열린마음으로 미디어 법과 제도를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당시 방송사노조에서도 방송장악 의도라고 의심했다.

 =방송사 노조도 실행위 논의에 쭉 참여했다. 법안 확정단계에서 이견을 보이며 노조가 1주일 전 회의에서 빠졌지만 그때는 회사 내부 문제도 있고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석달 가까이 꾸준히 참여했고 이후에도 방개위 책임자와 의사소통 채널을 유지했다.

 -방개위를 포함한 법 개정 논의는 얼만큼 시간이 걸렸나?

 =방개위 활동은 집약적으로 3개월간 했다. 이후 만들어진 법을 의원입법으로 발의한 뒤 여야간 줄다리기를 7~8개월간 한 다음 연말에 여야 합의로 통과했다.

 -의견조율은 잘 진전이 됐나?

 =10년 지나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입장차가 크게 차이나진 않았다. 에스비에스 노조가 1인지분 30%초과금지는 높다 해서 20%나 10%로 줄여 자본의 영향력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미 기존 방송법에 30%로 못박아 있는 걸 다시 줄이는 것은 법리상으로 문제가 있고 헌재로 갔을 때도 불리하다고 노조를 설득한 기억이 있다.

 -문화방송 민영화 방안도 논의됐는데?

 =엠비시 민영화 문제는 요즘 논의와 전혀 다르다. 지금은 엠비 정권이 정치적으로 엠비시 방송을 껄끄러워 하는 조건에서 논의를 하고 있고, 그때는 엠비시가 정권에 우호적이냐 비우호적이냐를 염두에 두고 논의한 게 아니었다. 미디어 환경 변화 속에서 공영방송 구조를 어떻게 가져가야 하냐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문화방송의 항구적인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하고 공영방송의 역할을 강화하자는 취지였다.

 -방개위를 포함한 법 개정 논의는 얼만큼 시간이 걸렸나?

 =방개위 활동은 집약적으로 3개월간 논의했다. 3월초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대통령에게 최종 보고하고 공식활동이 끝났다. 이후 법안 발의 뒤 여야간 줄다리기를 6~7개월간 했다.

 -입법 절차가 중요한 까닭은?

 =방송 매체와 방송의 새 매체인 아이피티브이 등 새 플랫폼이 등장하면 기술발전에 따른 법개정이 불가피하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방송을 포함한 미디어가 정치·사회·문화적 영향력이 엄청나다. 미디어의 법 개정은 이해당사자의 의견조정을 통한 합의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외국에서는 미디어 관련법 개정 때 충분히 논의과정을 거친다. 영국은 백서와 녹서를 내고, 법 개정전 4~5년의 긴 시간을 두고 논의한다. 그런 시간을 통해 이해관계가 조정된다. 우리도 2000년 이전에 그런 절차를 거쳐 법이 탄생했다. 그럼에도 법으로 작동하고 나면 이견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지금처럼 한 정파가 강력하게 졸속 추진하면 사회가 그 법을 정당하게 기능하도록 받아들일 것인가. 법을 논의하는 데 몇년 걸리지 않는다. 방개위 때도 집약적으로 논의를 했다. 이해가 충돌하는 쟁점은 밤새워 토론했고 서고 고성과 삿대질이 오가며 만들었다.

 -한나라당이 내놓은 법안은 절충 가능성은?

 =공개적으로 논의하게 될 때 접점은 찾아진다. 재벌의 방송시장 참여가 불가피하다면, 지분한도를 어디까지 둘지, 재벌의 언론사 참여는 어느 방송영역까지 열지 쟁점을 논의하다 보면 조금씩 합의점이 생긴다. 열린 마음으로 논의하면, 무조건 밀어붙이거나 무조건 반대라는 정파적 이해 벗어나 합리적 공통분모를 도출할 수 있다. 미디어 공공성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무조건 현재의 방송법 틀을 유지하자는 건 아니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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