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정부·여당 인사들의 ‘민원 해결소’인가.
<문화방송>(MBC) ‘피디수첩’ 및 ‘뉴스데스크’ ‘뉴스 후’ 등 정부 정책 비판 프로그램들에 잇따른 중징계 결정을 내려 ‘정치 심의’ 논란을 빚고 있는 방통심의위가 정부 관료와 여당 정치인들의 명예훼손 심의신청을 적극 수용해 시정요구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종걸 민주당 의원이 10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방통심의위 출범 후 명예훼손 건으로 심의신청한 여야 정치인과 관료는 모두 12명으로, 이 중 한나라당 소속 정치인과 현 정부 관료가 10명이었다. 방통심의위는 이들 여권 정치인으로부터 11건의 명예훼손 심의신청을 받아 8건(72.2%)을 시정요구 결정했고, 시정요구를 받은 해당 포털 사이트는 이들과 관련한 203개의 게시물을 삭제했다.
반면 야당 정치인 2명(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과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이 심의신청한 2건 중에선 1건이 시정요구 결정을 받았다. 일반인을 포함한 전체 민원인이 제기한 총 명예훼손 신청 6334건 중 방통심의위의 시정요구 건수는 1202건(18.9%)으로, 여권 정치인들의 심의신청 수용률보다 월등히 낮다.
명예훼손 심의신청을 한 정부·여당 인사는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주성영·홍정욱·심재철·진성호 등 한나라당 국회의원 8명, 어청수 전 경찰청장이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올해 자신의 신년사를 비판하며 다음 아고라에 올린 누리꾼들의 사퇴청원글을 명예훼손으로 심의신청해 삭제결정을 받아냈다. 여야 정치인들 중 가장 많은 글(438개)을 심의신청한 주성영 의원도 지난해 촛불시위 과정에서 자신의 발언을 비판한 누리꾼들의 게시글 20개를 삭제처분받았다.
이종걸 의원은 “정치인은 대중의 비판을 통해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야 함에도 (누리꾼들의) 정치인 비판글에 대해 일반인들과 동일한 기준으로 명예훼손 여부를 심사해 게시물들을 삭제하는 것은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심히 제약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김철환 방통심의위 권리침해 정보심의팀장은 그러나 “정치인은 공인이므로 일반인들보다 더 면밀한 심의를 거친다”며 “심의위에서 여권 정치인이란 이유로 더 많은 시정요구를 했다는 것은 인정하기 힘든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