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심의위 인터넷 글 삭제 ‘편법 논란’,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행정처분 대신 일방적 ‘시정요구’ 결정
소명 절차·행정소송 기회 ‘원천봉쇄’
소명 절차·행정소송 기회 ‘원천봉쇄’
명예훼손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인터넷 게시글에 ‘시정요구’(삭제) 결정을 내리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시스템을 놓고 ‘편법’ 논란이 일고 있다.
환경운동가 최병성 목사가 운영하는 블로그 ‘생명편지’ 게시글 시정요구 조처가 발단이 됐다. 방통심의위가 명예훼손 신고자의 이야기만 듣고 소명 기회 부여 없이 공익적 성격의 글에 삭제 결정을 내렸고, 법이 정한 절차를 따르지 않아 게시자의 행정소송 기회마저 봉쇄해 버렸다는 것이 논란의 뼈대다.
방통심의위는 한국양회공업협회와 시멘트 회사들이 1월 말 “‘쓰레기 시멘트’ ‘발암 시멘트’ 등의 표현이 막대한 경제적·정신적 피해를 입혔다”며 명예훼손 심의를 신청한 최 목사 블로그 글 15건 가운데 4건에 대해 16일 ‘시정요구’ 결정했다.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적시’가 이유였다. 인터넷 포털 다음은 28일 오후 해당 글들을 삭제했다.
최 목사는 “방통심의위가 시멘트 업체의 이야기만 듣고 공익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누리꾼의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반면 양회협회 관계자는 “방통심의위가 인터넷 글에 대한 언론중재위 구실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돼 해결을 요청했을 뿐 ‘표현의 자유 제약’ 주장은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방통심의위 심의 시스템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충실히 따르지 않는 심의위의 법 적용 ‘관행’이 시멘트 업체의 공익적 환경 블로그 게시글 영구삭제 시도에 악용됐다”는 주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방통심의위는 지금까지 특정 인터넷 게시물이 심의규정에 위반된다고 판단할 경우 방통위에 행정처분을 요청하도록 규정한 방통위 설치법 25조(제재조치 등)를 따르는 대신, 시정요구 조처를 명시한 설치법 시행령 8조를 적용해왔다.
방통심의위가 최 목사 글뿐 아니라 지난해 광고불매운동을 벌인 누리꾼들의 게시글 60여건에 시정요구 결정을 내렸던 근거 조항인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 7은 ‘불법정보의 유통 금지’를 규정한 조문이다. 방통심의위 통신분과특별위원회 한 위원은 “망법을 충실히 따르자면 44조 7에 적시된 ‘불법정보’는 권고 수준의 시정요구를 할 사안이 아니라, 설치법 25조에 따라 방통위에 반드시 행정처분을 요청해 유통금지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설치법 25조를 적용하면 방통심의위는 제재조처 전에 게시자에게 진술 기회를 줘야 하고, 제재를 결정한 뒤엔 방통위에 제재 처분을 요청해야 한다. 이 위원은 “심의위가 설치법을 지키지 않는 ‘편법’을 저지르는 바람에 최 목사는 소명 기회를 박탈당했고, 시정요구는 행정처분이 아니어서 글 삭제에 불복해도 행정소송조차 불가능하게 됐다”고 비판했다. 통신심의소위원회 소속의 한 위원도 “위원회가 시정요구를 해버리면 게시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항변도 못하고 당하고 만다. 표현의 자유가 침해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시정요구에 반대해 ‘문제를 키우고 싶지 않은’ 사업자들은 심의위 권고를 100% 수용해왔다.
김철환 방통심의위 권리침해정보심의팀장은 그러나 “권고적 성격의 시정요구를 먼저 한 뒤 이를 따르지 않을 때 처벌이 수반되는 행정처분 절차를 밟는 것이 최소 규제의 원칙에 따른 통상적 행정절차”라며 “권고 수준의 시정요구가 있는데도 처음부터 강한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최 목사는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 게시글 심의 및 글 삭제 시스템의 문제점을 따지는 민사소송을 방통심의위와 다음을 상대로 제기할 계획이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최 목사는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 게시글 심의 및 글 삭제 시스템의 문제점을 따지는 민사소송을 방통심의위와 다음을 상대로 제기할 계획이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