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눈치보기’ 항의 받으며 자괴감
피디협 “사장 사과 없으면 퇴진운동”
피디협 “사장 사과 없으면 퇴진운동”
“지금 케이비에스는 폭발 직전이다. 뭔가 툭 건드리면 뻥 터질 태세다.”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분위기를 제대로 전하지 않았다’는 시민들의 비판에서 촉발된 <한국방송> 피디·기자들의 본부장 불신임 투표 사태가 ‘이병순 사장 체제’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로 확산되고 있다. 올 초 대규모 징계 사태 후 숨죽이고 있던, 이 사장을 향한 비판여론이 불신임 투표를 계기로 분출하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한국방송의 한 기자는 “이 사장 취임 후 정권 눈치 보기 차원의 보복 인사와 징계 및 조직·프로그램 개편을 겪은 뒤 얻은 건 취재 현장에서 맞닥뜨린 시청자들의 거센 항의뿐이었다”며 “쌓이고 쌓인 불만들이 서거 방송 건으로 터져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피디협회도 8일 낸 성명에서 피디들의 압도적 편성·티브이(TV)·라디오 본부장 불신임을 “이병순 사장 10개월에 대한 냉정한 평가”라고 규정했다.
한국방송 구성원들이 느끼는 위기감의 ‘체감온도’는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한 기자는 “지난해 정연주 사장 강제 퇴임 후 발생한 대부분의 논란은 사내에서 시작됐지만 이번 사태는 외부에서 비롯된 것으로, 케이비에스가 국민으로부터 배척받고 있다는 매우 위험한 증거”라며 “과거 5년간 신뢰도 1위였던 케이비에스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한 피디도 “지금 ‘돌 맞고 있는 케이비에스’는 전두환 정권 시절 중계차 끌고 나가면 시민들로부터 돌 맞던 때 이후 최악이란 자괴감이 일선 피디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고 토로했다.
반면 사쪽은 “일부의 평가일 뿐”이라고 말한다. 강선규 홍보팀장은 “케이비에스는 공영방송으로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우리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평가도 시각에 따라 엇갈린다”며 “피디협회·기자협회의 본부장 불신임 투표는 경영권 침해 행위로 엄정하게 조처할 것이란 기존 방침 외에 더 말할 게 없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는 곧 닥칠 언론법 대치 정국과 9월 이사진 교체 및 11월 이 사장 연임 여부 결정 국면과도 미묘하게 얽혀 있다. 사내 일각에선 비판여론을 조직화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보도본부의 한 기자는 “우선 본부 내 상명하달식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시작으로 언론법 정국 등 대응 방안을 고민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피디협회도 ‘서거 보도 사태’에 대한 이 사장의 시청자 사과와 책임자 문책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사장 퇴진운동 불사’를 공언하고 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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