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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전망대] 쌍용차문제 정치적 이용세력은 ‘언론’

등록 2009-08-11 18:26수정 2009-08-11 18:58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노사협상이 타결되어 쌍용차가 회생의 몸부림이라도 칠 수 있게 된 것은 큰 다행이다. 그러나 쌍용차 사태는 정부, 언론과 이해관계자들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얼마나 무관심하고 이기적인가를 드러냈다. 전형적인 사례가 지난 8일치 <조선일보> 사설이다. 사설은 ‘노동자 아내들’이 쌍용차 정문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 중이던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에게 무릎 꿇고 빌며, “쌍용차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외부세력 때문에 쌍용차가 다 죽게 생겼다”고 호소했다고 전했다.

사설은 막연히 ‘쌍용차 노동자들의 아내’라고만 표기했다. 하지만 정리해고 대상이 되어 농성중인 노동자들과 정리해고를 면하고 ‘출근’하는 노동자들 중, 어느 쪽 아내들인지를 밝혀야 했다. 외부세력 때문에 노사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주장은 언론이 으레 써먹는 ‘책임전가’다. 문제를 국회에서 제기하면 의정활동이고, 국회 밖으로 들고 나오면 정치적인 이용이라고 매도하는 것도 오래된 수법이다.

이 사설은 ‘노동자 아내들’이 강 의원 앞에서 무릎을 꿇게 된 배경에 대해 남편들이 석 달째 월급을 받아보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들이 석 달 월급은 고사하고 해고될 운명에 처해 있는 농성 노동자 아내들의 처지는 얼마나 생각하는지를 사설은 밝혀주지 않았다. 결국 각자가 이기적인 본성을 거리낌 없이, 그리고 거칠게 드러내는 것이 언론에 의해 미화되는 우리 사회의 강퍅한 실상을 드러냈을 뿐이다.

반면에 지난 10일치 <한겨레>에 실린 글을 통해 에세이스트 김현진씨는 생수를 공급받지 못하는 농성장의 상황을 체험하려고 스스로 물을 끊어보았다고 밝혔다. 그는 “24시간을 넘기자 도저히 더 버틸 수가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쌍용차 공장 안팎에서 벌어지는 이 모든 상황이 바로 ‘지옥’이라고 표현했다.

조선일보 사설과 에세이스트의 글은 같은 사실이라도 이를 전달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얼마나 다른 이야기가 되는지를 웅변한다. 한 노동자는 “열심히 일한 사람들을 회사에서 뚜렷한 기준 없이 잘랐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회사 쪽의 단수조치 이후 나중엔 물이 없어 에어컨 냉각수를 끓여 먹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널리 알려진 것은 농성을 푼 뒤이다. 회사와 출근 노동자들, 협력회사와 채권단, 그리고 정부의 압박 작전은 ‘조중동’이라는 복합명사로 불리고 있는 신문들의 침묵과 사실 왜곡의 도움으로 결국 농성 노동자들을 굴복시키는 데 성공했다.

언론이 다른 태도를 취했다면, 사태가 이런 모습으로 결론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언론의 치열한 자기반성이 시작되어야 한다. 언론은 농성 노동자들과 경찰 진압대의 공방을 ‘전쟁터’에 비유했다. 종군기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터를 누비며, 전사도 불사한다. 이번 사태를 취재하면서 기자들은 어떤 위험을 무릅썼는가 묻고 싶다. 농성 현장에 들어가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 기자들은 몇 명이나 되었는가?

농성장인 도장 공장 안에서 취재하던 기자 5명이 경찰에 연행되었다고 한다. 이들 5명은 모두 노동·언론 관련 전문지 기자들이고, 종합일간지나 방송 기자들은 한 명도 없었다. 무엇이 농성장으로 향하는 자신의 발목을 잡았는지, 농성 노동자들을 향한 자신의 팔이 오그라들게 했는지를 기자들은 자문해보기 바란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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