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진 섭정 속셈’에 골병드는 MBC
문화방송 본부장 공석 장기화
“한달 이상 본부장 공석, 이런 일은 처음 본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방문진 이사들은) 그러잖아도 힘든 엠비시가 스스로 자멸하길 바라고 온 트로이목마 같다.”(경영본부 소속 직원) <문화방송>(MBC)의 보도·편성·티브이제작 등 핵심 본부장 4명이 한달반가량 비어 있다. 엠비시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가 지난달 10일 본부장 4명을 해임한 뒤 후임 인선이 이후 세 차례나 무산됐다. 사업계획·보도전략 차질…후유증 갈수록 커질 듯
엄사장 심리적으로 압박 ‘자진사퇴 노림수’ 의혹도 대행 체제로 유지되지만 중장기 사업계획과 보도전략은 차질을 빚고 있다. 3~4개월 앞을 보고 일을 하는 티브이제작본부의 경우 후속 드라마 논의가 뚝 끊겼다. 보도국은 남아공 월드컵 준비와 연간 핵심의제 수립을 제쳐둔 상태다. 드라마국의 ㅊ 부국장은 “장기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못해 매우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광고국의 ㄱ 부장은 “본부장 주도로 움직이는 광고전략이 잘 안 돌아가고 있다”며 “경영 공백의 후유증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태가 여기까지 이른 데는 문화방송을 직할통치하려는 방문진의 의도가 직접적인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지난 11일 예정되었던 이사회의 전격적인 취소는 이를 잘 보여준다. 김우룡 이사장은 10일 밤 엄기영 사장이 보도본부장으로 추천한 ㄱ씨에게 사실상 사퇴를 권유한 뒤 엄 사장에게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ㅎ씨 카드를 내밀었다. 이에 앞서 9일 엄 사장과 최종 합의한 보도·티브이제작·편성본부장 인선안을 뒤집고 새 보도본부장 인선안을 제시한 것이다. 김 이사장은 18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ㄱ씨가 본부장 할 생각이 없다고 해서 그렇게 됐다”고 밝혔다. 김 이사장의 이런 ‘변심’에는 외부의 힘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엠비시 내부에서는 보고 있다. 보도국 ㅅ 기자는 “외부에서 미는 힘이 없다면, 이사장이 직접 후보에게 전화를 해서 뒤집고 다음날 열릴 임시주총을 없던 일로 해버릴 수 있냐”며 제3의 힘에 의혹의 시선을 보냈다. 김 이사장의 입장 돌변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달 15일 이사회에서도 전날 엄 사장과 합의한 인선안을 무시한 채 전혀 다른 인선안을 제시했다. 지난달 21일 이사회에서도 여당 이사들이 합세해 개별 후보를 놓고 표결을 강행해, 과반수 표를 얻은 김재형 현 기획조정실 부실장만 새 경영본부장으로 내정됐다. 정상모 방문진 이사는 “근본문제는 방문진의 섭정에서 비롯됐다”며 “여당 이사끼리 엄 사장한테 조건을 내거는 밀실음모식 진행을 용납할 수 없다. 20일 이사회에서 경위를 따져 물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여당 쪽 이사들이 엄 사장의 인선안 수용 조건으로 △‘피디수첩’에 비판적인 시민단체의 참여를 보장한 ‘피디수첩’ 진상규명위 구성 △2월 주총까지 단체협약 개정을 내건 데 대해서도, “방문진이 권력청부성 요구를 버젓이 하고 있다”는 노조 등의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방문진이 인선안을 계속 무산시킨 데는 엄 사장을 심리적으로 압박해 스스로 물러나게 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이사장은 “그런 의도는 없고, 가능하면 엠비시를 개선할 수 있는 후보가 누구냐, 방문진의 의견을 모으려고 하는데 조율이 안 됐다”고 말했다. 경영 공백은 다음달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김 이사장은 “(경영진 인선을 위해 2월 말로 예정된) 주총 시기를 당길지 정상적으로 할지 의견조율 중”이라고 했다. 임기가 내년 2월까지인 엄 사장도 바꾸느냐는 질문에는 “코멘트가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이근행 노조위원장은 “방문진이 경영진을 반볼모로 잡고 2월 주총에서 판을 바꾸려 한다면 총파업을 포함해 모든 걸 걸고 싸우겠다”고 말했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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