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진, 보도·편성·제작 이사선임 강행
“친정부방송 만들기 수순 밟나” 우려
“친정부방송 만들기 수순 밟나” 우려
엄기영 <문화방송>(MBC) 사장이 8일 사퇴 의사를 밝히고 회사를 떠났다. 방송문화진흥회 여당 쪽 이사들이 엄 사장의 의사를 무시한 채 자신들의 뜻대로 임원 인사를 강행하면서다. 이명박 정권이 <한국방송>(KBS)에 이어 문화방송 장악을 위한 본격 수순에 들어갔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관련기사 3면
방문진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임시이사회를 열어 황희만 울산문화방송 사장과 윤혁 부국장, 안광한 편성국장을 보궐 이사로 선임했다. 엄 사장은 이사회 직후 기자들을 만나 “오늘 방문진 존재의 의미에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며 “(방문진이) 도대체 뭘 바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문화방송 사장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은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상법상 임원 사표는 반려하지 않는 한 즉각 효력이 발생한다”며 엄 사장 사퇴를 기정사실화했다. 엄 사장은 이날 이사회에 참석해 권재홍·안광한·안우정씨를 각각 보도·편성·제작본부장에 추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 이사장은 이사회 직전 “엄 사장이 제시한 ‘뉴엠비시 플랜’을 추진할 수 있는 상징적 인물이 선임돼야 한다”고 인선 기준을 설명했다. 김 이사장과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은 낮 12시 주주총회를 열어 이사회 결정을 승인했다.
김 이사장은 이날 오전 7시30분으로 예정된 이사회가 노조 반발로 진행이 어려워지자, 같은 호텔 신관 건물로 장소를 옮겨 이사회를 진행했다. 야당 이사들은 이사회에 불참했다.
이날 선임된 이사들에게 보직은 주어지지 않았다. 문화방송 이사 선임권은 방문진에 있으나, 업무 부여 권한은 대표이사에게 있다. 엄 사장의 사퇴로 한동안 보궐 이사들의 무보직 상태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여당 이사들의 본부장 선임 강행은 엄 사장의 사퇴를 예상하고 추진됐다는 해석이 많다. 지난해 12월10일 엄 사장을 재신임한 지 불과 두달 만에 이뤄진, 사실상의 ‘엄 사장 자진사퇴 유도’란 얘기다. 정상모 야당 쪽 이사는 “엠비시마저 친정부 방송을 만들기 위해 정치세력이 개입됐다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며 “정권과 여당 이사들은 앞으로 벌어질 엠비시 경영 혼선과 파국적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영호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도 “종합편성채널을 미끼로 한 조중동 중심의 신문시장이 친여 논조로 재편됐고 방송도 케이비에스가 장악된 마당에 엠비시 보도·프로그램마저 장악하려는 것”이라며 “완전한 방송 장악이 정권 운명을 보장하는 가장 안전한 길이라고 생각한 듯하다”고 풀이했다.
문화방송 노조는 이날 본사 로비에 농성장을 차리고 총력투쟁에 돌입했다. 노조는 성명을 내어 “낙하산 사장을 저지하기 위한 총파업 찬반투표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공영방송 엠비시 사수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이날 선임된 이사들의 출근저지 및 퇴진 투쟁에 들어갔다. 11~12일과 설 연휴 직후인 16~18일엔 총파업 부재자투표 및 본투표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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