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수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미디어산업이 매일 공급하는 많은 양의 뉴스와 대중문화에는 이윤과 권력의 욕망이 깔려 있다. 여기에 간간이 공익적인 내용이 첨가된다. 그러니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정보와 문화를 돈의 잣대로 평가하지만 돈이 양질의 정보나 대중문화를 보장한다는 증거는 없다. 최첨단의 디지털 기술이 있다고 해서 정확한 정보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다양한 문화가 생산되는 것도 아니다. 정보나 문화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흐르고, 이용될 때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 자연스러움은 미디어가 추구해야 할 덕목이다. 관련된 사례를 들어 보자. <한국방송>(KBS)은 오래전에 박경리 원작의 ‘토지’를 방송했다. 양반 지주였던 최참판 댁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대하드라마는 전국의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토지’는 부자였던 최참판 가족 이야기를 삼라만상 그리듯이 그려냈다. 시청자를 가르치고 훈계하려는 의도가 보이지 않았는데도 재미와 교훈 모두를 주었다. 반면 최근 한국방송이 주말에 방송했던 ‘명가’는 거부였던 경주 최씨 일가의 미담이나 선행을 선전했다. 부자도 얼마든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이념을 시청자에게 주입하려는 것 같아서 도통 재미도 없고, 자연스럽지도 못했다. 한국방송 ‘토지’가 당시 최고 시청률을 올렸던 것과 비교해 ‘명가’는 12~13%에 그쳤다. 자연스러운 것과 인위적인 것이 묘하게 대비된다. 필자는 차인표씨를 좋아해서 ‘명가’를 열심히 시청했지만 이름값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웠다. 지난 10년 동안 드라마, 영화, 음악 등 대중문화 분야가 세계적인 관심과 인기를 끌며 부상했던 배경에는 자유와 창의성을 보장했던 시대적 상황이 한몫을 했다. 그러나 정보와 대중문화에 권력과 법이 개입하고, 제도적 통제가 많아지면서 품질이 떨어지는 모습이 역력하다. 국민에게 중요한 정보가 뉴스에서 빠지고, 가십성 국외정보 등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방송 3사가 뉴스라고 내보내는 것은 국민들이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경우가 많다. 드라마나 오락 프로그램은 선정주의와 상업주의로 시청자를 쥐어짜고는 있다. 그렇지만 사람의 마음을 진정으로 사로잡을 만한 것은 나오지 않는다. 정보의 질, 대중문화의 수준이 떨어진 데는 많은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원칙 없는 규제나 시장 만능주의는 미디어의 질을 떨어뜨린다. 권력의 개입이나 법적 규제가 잦을수록 정보와 대중문화를 만드는 제작자의 의욕을 꺾어 결국 관제 정보, 관제문화가 양산된다. 이런 것들은 얼마 안 가 방송사나 제작자 모두 부끄러워서 감추고 싶은 과거가 된다. 문명적인 사회, 사람의 가치를 존중하는 나라에서는 자본이나 권력의 취향과 관계없이 진실하고 다양한 정보와 대중문화가 많이 나온다. 정보와 대중문화는 수용자들의 요구나 필요를 반영해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와 책임 의식으로 만든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수용자의 심판을 받기 때문이다. 이것이 시장 민주주의다. 권력이나 시장에 대한 비판을 포용하고, 전문가를 소중히 여기는 정도가 시장 민주주의를 가늠한다. 그런데 엄기영 <문화방송>(MBC) 사장을 까닭 없이 밀어낸 것을 보면서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국민의 신뢰를 받아온 전문가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씁쓸할 따름이다. 우리 사회가 여유와 포용의 자세로 시장 민주주의와 전문성을 수호하는 전통이 축적되었으면 한다. 그래야 우리도 믿고 의지할 만한 명품정보, 명품문화를 가질 것이 아닌가! 김승수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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