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미디어

[블로그] 밴쿠버 동계올림픽 최악의 보도 2제

등록 2010-03-08 15:15

시간이 지나가면서 국민을 열광시켰던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의 열기도 점차 식어가고 있다. 자연스런 현상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식는' 한국 사람 특유의 '냄비 근성'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해서 씁쓸한 감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제도언론의 도를 넘는 과장과 허풍과 달리, 젊은 선수들의 쿨함, 의연함이 돋보였고, 일반 국민도 예전처럼 언론 보도에 크게 부화뇌동하지 않고 차분하게 경기를 즐기는 여유를 보였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신문, 방송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매스 미디어는 이번 기회에 자신들이 이제 사회 흐름을 선도하기는커녕 뒤따라가지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겸허하고 받아들이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국제 스포츠 경기가 있을 때마다 한국의 전통적인 매스 미디어는 인간승리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금메달 지상주의, 1등주의를 예찬하고, 선수 개인의 분투와 노력보다는 국가와 민을 앞세우고, 근거도 없이 상대 선수를 폄하거나 비판하는 선정적 보도를 쏟아내며 독자들을 한방향으로 몰고 가는 경향을 보여왔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런 보도가 인터넷의 활성화 뿐 아니라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과거처럼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가 기세를 떨치고 있지만 아직 매스 미디어의 힘이 완전히 무력화된 것은 아니다. 워낙 매스 미디어의 힘과 전파력이 아직도 강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까진 매스 미디어가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정보에 영향을 침식될 수밖에 없다. 과거와 달리, 거짓이나 과장된 정보가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탄로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전통적인 매스 미디어와 소셜 미디어의 길항작용 속에서 매스 미디어의 힘이 점차 약해지겠지만, 매스 미디어의 힘은 상당 기간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매스 미디어가 자신의 힘만 믿고 무책임한 보도, 허위 정보를 남발한다면 급속한 시간 안에 그 영향력을 잃게 된다는 사실도 틀림없을 것이다.

이번 밴쿠버 겨울 올림픽 보도에세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매스 미디어가 날린 최악의 보도 두 개를 꼽으라면, 나는 단연 안톤 오노의 `한국 선수 실격 바랐다'는 기사와 아사다 마오의 '분하다'는 기사를 올려놓고 싶다.


먼저 아사다 마오의 '분하다'는 기사는 해석이 잘못됐다. 거의 반대로 됐다. 한국 언론들은 아사다가 여자 피겨에서 김연아에 이어 은메달을 딴 뒤 <엔에치케이>와 인터뷰에서 '구야시이'라는 일본말을 쓴 것을 '분하다'라고 번역해, 마치 아사다가 김연아한테 진 것에 불만을 표시하는 것처럼 보도했다. 이런 내용의 기사가 거의 모든 한국 언론, 그 중에서도 선정적 보도가 심한 인터넷언론에 크게 취급됐다. "마치 경기에 완패한 주제에 무슨 불만이 있느냐고 비야냥거리는 투로." 하지만 일본어에 대한 상식을 조금이라도 갖춘 사람이라면 '구야시이'라는 말이 남탓을 할 때 쓰는 것이 아니라 자책을 할 때 쓴다는 것쯤은 쉽게 알 것이다. 그저 직역으로 '분하다'라고 번역해 놓고, 아사다가 마치 판정 결과에 불만이 있는 것처럼 뜻을 왜곡한 것이다. 이를 처음 번역한 기자가 말 뜻을 잘못 알어 그렇게 번역한 것이라면 실력이 부족한 것이고, 알고도 일부러 그렇게 번역했다면 사악한 것이다. 오히려 아사다는 김연아의 실력을 인정했고, 자신도 최선을 다했지만 부족했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일관되게 보냈다. 일본 사람들이 이런 보도를 보고 우리 언론의 수준을 어떻게 진단할까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할 지경이다.

두번째는 안톤 오노가 1000미터 쇼트 트랙에서 한국 선수 2명이 부딪히면서 어부지리로 2위를 한 뒤 했다는 목을 자르는 제스처를 하고, "한국 선수의 실격을 바랬다"는 말을 했다는 보도의 문제이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 <동아일보> 기자가 오노를 인터뷰해 내보낸 기사(3월2일자)를 보면, 오노에 대한 기사가 얼마나 황당했으며 최소한의 확인도 없이 썼음을 알 수 있다. 이 기사는 "그(오노)는 “목을 긋는 동작은 다른 뜻이 있었던 게 아니다. 코치에게 선수 한 명이 실격을 당했냐고 물으면서 그런 동작을 했던 것이다. 한국선수를 가리킨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실격을 바란다고 말한 적조차 없다. ‘이호석이 성시백과 몸싸움이 있었는데 그 선수가 실격인 것 같으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했을 뿐이다. 왜 언론에 내가 실격을 바랐다고 나갔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고 전하고 있다. 다만 동아일보가 이 인터뷰를 24일 해 놓고 왜 한참 지나서 내보냈는지는 잘 모르겠다.

실제 외신이나 외국신문, 외국 텔레비전 뉴스를 봐도 오노가 이런 말을 한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 오노는 어느 인터뷰나 일관되게 쇼트트랙은 몸싸움이 일어나는 격렬한 경기이고, 나는 쇼트트랙 경기를 즐긴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는데 이런 인터뷰는 우리의 언론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결론적으로 한국 언론이 당사자에 대해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지도 않고 추측 또는 일부 내용을 침소봉대해 썼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정수 선수는 대회 전엔 "쇼트트랙 선수 중 오노를 가장 닮고 싶다"고 말했다가 이 대회에서 '실격'운운 발언이 보도된 뒤엔 "오노는 시상대에 오를 자격이 없다"고 비난했는데, 이것이 오보의 결과라면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한 일인가?

동계올림픽 열기가 식은 지 한참 만에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잘못된 보도를 확실하게 적시함으로써, 앞으로는 이런 엉터리 보도가 나오는 것을 막았으면 하는 바램 때문이다. 또한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무책임한 보도, 엉터리 보도의 남발을 막지 못한 데 대한 자성이기도 하다.

독자들도 앞으론 언론이 보도하는 것을 쉽게 믿고 흥분하거나 즉자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외신도 챙겨보고, 인터넷을 서핑하며 상대 선수의 인터뷰도 꼼꼼히 챙겨보면서 `비판적인 매스 미디어 읽기'를 생활화했으면 한다. 독자들의 감시가 철저하면 철저할수록 스포츠 경기 때마다 기승을 부리는 황색언론이 발붙일 틈은 크게 좁아질 것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미디어'인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기도 하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겨레 블로그 내가 만드는 미디어 세상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