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표 언론인, 전 <한겨레> 논설주간
이명박 정부가 출범 2년 만에 방송을 ‘장악’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와이티엔>, <한국방송>에 이어 <문화방송>의 사장까지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인사로 채운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사장이 바뀌면서 두 방송 뉴스의 정부비판이 크게 위축되었다는 사례를 드는 사람들도 있다. 이와 같은 관측에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런 말들을 들으면서 한 가지 의문이 일어난다. 한국에서 방송의 독립, 언론의 자유라는 것이 정권의 뜻에 따라 하루아침에 허물어질 만큼 토대가 허약했던가 하는 의문이다. 사장 한 사람만 바꾸면 방송 전체가 손안에 들어올 만큼 언론사의 구조가 취약한가 하는 물음이다. 이만큼의 독립과 자유를 얻기까지 지난 40년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쌓였던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지난 2년 동안 방송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방송사 노조와 언론단체를 중심으로 진행된 투쟁은 이 대통령의 측근을 사장으로 내려 보내는 ‘낙하산 인사’의 거부에 집중했다. 이 싸움은 대체로 칼자루를 정부가 쥐는 싸움으로 귀결되었다. 더욱이 ‘낙하산 사장’이 일단 자리를 잡으면 투쟁도 잦아드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현행법은 정부와 집권당이 한국방송, 문화방송 사장을 선임하는 이사회를 장악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한국방송과, 문화방송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는 정부기구인 방송통신위가 구성한다. 실제로 여야 성향의 이사 비율이 한국방송은 7 대 4, 문화방송은 6 대 3이다. 이런 구조의 이사회와 정부를 상대로 펼치는 ‘낙하산 사장’ 거부 투쟁이 얼마나 무력한지는 그동안의 경험이 말해주고 있다. 낙하산 사장을 원천적으로 막는 방법은 법을 고쳐 정권이 방송사의 사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없애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한나라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현재로는 하나마나한 소리다. 정당이나 집권자의 성향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언론을 장악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스스로 포기하지 않으려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이것은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했던 참여정부 시절에도 불가능했던 일이다. 법규의 손질을 주창하는 목소리는 더 강해져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이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낙하산 사장’을 막지 못했으니 탄식만 하고 다음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가? 그렇지 않다. 이제부터는 바깥보다는 방송사 내부 언론인들의 몫이 크다. 사장이나 보도·제작국 책임자보다는 외부의 압력에 덜 휘둘리는 평기자·피디 각자가 ‘선언’을 넘어 일상의 업무를 통해 독립·자유 언론을 실천하는 것이 지름길이다. 사장의 강력한 통제력은 주로 인사권에서 온다. 인사권이 위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방송사 내에서도 양지와 음지가 있기 때문이다. 언론인들이 음지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순간 사장의 인사권은 이미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지금까지 방송사에서 일하는 언론인들은 독립·자유 언론을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많은 희생도 감수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전 몇 년 동안은 ‘광야’ 생활을 체험하지 않고 편안한 세월을 보내지는 않았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경영진과, 더 나아가 정부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지 않았던 그 기간 동안 무기력해진 점은 없는가를 돌이켜보기 바란다.
성한표 언론인, 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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