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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미디어전망대] 종이 문명은 사라지지 않는다

등록 2010-03-30 19:48

김승수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승수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책과 신문은 정신문명의 총아다. 책은 산업자본주의 이전 시대부터 지식과 정보를 확산했던 주요 수단이었다면 신문은 산업자본주의를 정신문화적으로 일으킨 공로가 크다. 그러나 아쉽게도 책과 신문으로 대변되던 종이 문명이 시대의 변화에 밀려 쫓겨나고 있는 형편이다.

종이 문명은 사람을 생각하게 하고, 따뜻한 감성을 만드는 데 탁월한 기능을 했다. 사람들은 정말로 소중한 것을 알고자 할 때는 꼭 책을 찾는다. 우리들은 단 한 번도 법정 스님을 만난 적이 없어도 스님께서 쓴 책 제목만 봐도 감동하고, 내용을 읽고는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그러니 책보다 더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독자들이 스님의 사상을 두고두고 접할 수 있도록 책이 계속 출판되었으면 한다. 그런데 종이 문명은 허약한 구석도 있다. 책이 지배층의 전유물이었을 때는 대중들과 소통하지 못했다. 책은 지배의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직도 책은 독자의 필요나 수요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또 책의 반품률 내지 재고율도 높아 낭비적인 약점도 있다. 출판 대국인 미국 시장에서는 책의 반품률이 30% 정도라고 한다.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출판사들은 인쇄출판의 약점을 보완한 주문형 출판(print-on-demand, POD)에 적극적이다. 지난달 27일치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기사에 따르면, 주문형 출판은 독자가 원하는 내용을 토너나 잉크제트를 이용해서 음료수 한 잔 마실 시간에 출판하는 개념이다. 서점에서도 독자가 원하는 내용의 책을 짧은 시간에 프린터로 인쇄해서 파는 사업이 확산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주문형 출판이 미국 서적 시장의 6%가량이라고 추정했다. 이렇게 종이 문명은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싸움을 하는 중이다.

그런데 디지털 문명이 속도전으로 종이 문명을 내몰고 있다. 문제는 디지털 문명이 자원 소비형이라는 단점이 있다. 디지털 문명은 자본주의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촉진하는 소모적인 문명이다. 또 순간적이고, 감성에 호소한다. 더구나 디지털 문명은 기계와 기계의 대화이며, 자본과 자본의 교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들이 디지털 문명을 즐기려면 컴퓨터, 디지털텔레비전 등 많은 전자제품을 사야 한다. 통신비에다 소프트웨어, 콘텐츠 비용은 하루가 멀다 하고 치솟는다. 디지털 문명은 에너지 소비적이다. 엄청난 전력을 소비하지 않으면 디지털 문명은 작동을 멈춘다. 그렇다고 디지털 문명이 사람에게 자유와 풍요를 보장하지도 않는다. 인터넷 혁명이 일어나는 초기에는 천지개벽이 있는 줄 알았지만 이미 국가권력의 엄중한 통제를 받는다. 또 자본과 이념 통제의 매서운 눈초리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인터넷이나 소셜 미디어는 점차 자유가 속박당하는 현실에서도 정보 소통과 민주주의에 기여하고 있다. 이 정도의 디지털 문명이 종이 문명을 몰아내는 것은 못마땅할 뿐 아니라 성공하지도 못할 것이다.

종이 문명은 누구나 깊이 있게 누릴 수 있는 정신문명이라면 디지털 문명은 돈 없으면 소외되는 금전문명이요, 기계와 에너지 의존적인 물질문명이다. 이래도 디지털 문명만 좇을 셈인가? 2000년 역사를 일으켜 세웠던 종이 문명을 하루아침에 차버리고 이제 10년 20년밖에 안 된 디지털 문명에 모든 것을 맡기려 하는가? 새 친구 사귀려고 옛 친구를 헌신짝같이 버려도 되는가?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디지털 천국을 외쳐도 나는 종이 문명을 끝까지 지키려고 한다.

김승수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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