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5.10. 종로구 가회동. 한홍구 서해성의 직설 -역사학자 한홍구와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서해성이 매주 대담을 벌인다. 2000년 이후 한국사회의 10년을 비판적으로 돌아보고 현재의 시사문제를 이야기할 예정이다.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한홍구-서해성의 직설’
작심하고 내뱉는다. 권위주의 체제가 남긴 성역과 금기를 넘어 진보의 영역에까지 다가선다. 빙빙 돌며 말하지 않는다. 거침없는 직설화법을 택했다. ‘한홍구와 서해성의 직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갈 새로운 대담 코너의 이름이다.
한홍구(51·오른쪽 사진) 교수는 새삼스런 소개가 필요 없는 역사학자이자 평화 인권운동 진영의 대표 선수다. <대한민국사 1, 2, 3, 4> <특강> <지금 이 순간의 역사> 등 대중적인 현대사 책을 썼고, 평화박물관 상임이사,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공동집행위원장 등을 맡아 왕성한 대외활동을 해치우고 있다. 최근엔 ‘수구세력 기피 3관왕’이라는 타이틀을 얻어 화제가 됐다. 서해성(48·왼쪽) 작가는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으로 통한다. 분야를 넘나드는 박학다식과 아이디어로 문화기획자의 역량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2004년 <문화방송>의 ‘느낌표!-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와 ‘기적의 도서관 건립사업’은 대표작으로 꼽힌다. 1989년 <실천문학>에 실린 단편소설 ‘살아오는 새벽’을 통해 문단에 데뷔했으며, 현재 한신대와 성공회대의 외래교수로 활동중이다.
여기서 궁금증 한 가지. 왜 하필 이 두 사람인가. 이들이 한국의 지식인 사회에서, 속된 말로 ‘탁월한 구라’를 지녔음은,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이 안다. 2006년 2월 우연히 참가한 실크로드 여행길에서 만나 친해졌다. 이후 틈만 나면 밤을 지새우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술도 안 마시고 놀았다. 대화에 취하니까 술이 필요 없었다”고 할 정도다. 두 사람은 2009년 ‘남산 역사신탁 운동’과 ‘용산 참사 망루전’을 함께 기획했다. 최근엔 서울 종로구 재동에 공동 사무실을 차렸다. 두 사람은 드디어 <한겨레> 독자들 앞에까지 같이 서게 되었다.
‘직설’이 향하는 시공간은 21세기 이후, 즉 지난 10년간의 한국 사회다. 한 교수는 말한다. “보수세력이 잃어버린 10년을 말하지만 그 10년은 우리가 잃어버린 10년이기도 하다. 그동안 무엇을 잃어버렸나,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가. 말이 사라진 시대에 우리는 말을 해야 한다.” 사안에 따라선 게스트를 초대해 인터뷰를 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들의 참여도 유도한다.
원칙은 두 가지다. 첫째, 구어체로 한다. 둘째, 우아 떨지 않는다. “입말로 다른 사람에게 옮길 수 있도록 쉽고 간명하게 말하겠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하면 뭐하나. 대중이 알아듣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서해성) “거룩하고 비장하게 떠들어봤자 목만 뻐근하다. 그동안 우아 떨다 망하지 않았나.”(한홍구) 직설, 그 첫번째 화두는 창간 22돌을 맞은 <한겨레>다. “한겨레, 너는 누구냐!”
글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