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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비정규직 해고자의 눈에 비친 ‘2010년 한국언론’

등록 2010-12-29 09:40수정 2010-12-29 09:45

김미화씨도 나처럼 블랙리스트 ‘낙인’
월세 독촉받던 날은 수신료 올린다고…
내가 좋아하던 아나운서는
파업 참여했다고 퇴출됐다
방송·신문 봐도 의문투성이

비정규직 노동자다. 난(가상 인물·35살) 대기업 사내 하청공장에서 자동차 범퍼를 조립했다. 법원의 불법파견 인정 뒤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다 해고됐다. 의문이 깊을수록 삶엔 고름이 맺힌다. 방송을 보고 신문을 읽을수록 오늘의 내 삶도, 한국 사회도 더욱 의문투성이다.

4월 퇴근길 ‘해고통보’ 휴대전화 문자를 확인했을 때, 노을 진 하늘 아래 만개한 벚꽃이 찬란했다. 텔레비전 보는 시간이 갑자기 많아졌다. 웬일인지 <문화방송>(MBC)이 ‘무한도전’을 재방송했다. 노조 파업(5일~5월14일) 때문이라고 했고, 김재철 사장 취임을 막기 위한 파업이라고 했다. ‘낙하산 사장’이며, ‘큰집에서 조인트를 까였다’(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신동아> 4월호 인터뷰)는 기사도 읽었다.

5월 이근행 문화방송 노조 위원장이 해고(12일. 12월27일 파업 주도 및 피디수첩 수사방해 혐의로 서울남부지방법원 벌금 700만원 선고)됐다. 사쪽은 ‘불법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를 댔고, 그는 ‘공정방송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 때문에 일을 잃었다. 파업 막바지에 그는 음식을 끊었다. “방송이 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상식이 회복되지 않는 한 현장으로 돌아갈 수 없다”던 탁한 낯빛의 그를 신문에서 봤다. 그에게서 나의 아픔을 본다.

7월 블랙리스트는 ‘낙인’이다. 방송인 김미화씨가 “케이비에스에 출연금지 문건이 있다고 한다”며 블랙리스트 존재 여부를 밝혀 달라(6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한국방송>(KBS)은 글을 보자마자 고소(11월9일 취하)했다. 웃겨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울게 됐다. 그는 “코미디언을 슬프게 하는 사회가 서럽다”고 했다. 노조 활동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난 여전히 새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다. 살을 모조리 발라낸 물고기에겐 헤엄칠 지느러미도 남아 있지 않다.

한국방송 아나운서들이 사라졌다. 새 노조(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가 ‘공정방송 쟁취 파업’(1일 시작)을 중단(29일)하고 복귀(30일)하자마자였다. 새 노조는 “현 정부 들어 정권홍보 방송으로 변질된 한국방송을 살리겠다”고 했다. 사쪽은 ‘파업 참여’를 이유로 진행자들을 교체했다. 김윤지 ‘주말 뉴스9’ 아나운서와 ‘뉴스타임’ 이수정 기자, ‘비바케이리그’ 이재후 아나운서를 화면에서 보지 못해 안타깝다.

8월 문화방송 ‘피디수첩’의 ‘4대강 수심 6m의 비밀’(17일)이 방영되지 않았다. 전날 예고편을 본 뒤부터 방송시간을 기다렸던 터라 실망이 컸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사쪽이 방영 2시간 전에 불방시켰다고 한다. 비난 여론이 빗발친 끝에 방송은 한 주 뒤 전파를 탔다. 연출자인 최승호 피디는 지난 4월 ‘검사와 스폰서’ 편으로 특검 수사를 이끌어낸 사람이다. 올해 언론상(안종필자유언론상·송건호언론상·민주시민언론상)을 휩쓸었다고 들었다.

9월 김우룡 전 방문진 이사장이 대학교 가을학기부터 강단(한양대 언론대학원)에 복귀했다. ‘조인트’ 발언 후 이사장직을 사퇴한 뒤 강의까지 폐강했던 그였다. 발언의 진위엔 입을 다문 채, 그는 다시 학생들 앞에 섰다. “고소를 통해 명예회복하겠다”고 호언했던 김재철 사장도 끝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한 차례 연극을 본 느낌이다.


10월 방바닥에 쭈그려 앉아 말라비틀어진 밥에 숟가락을 쑤셔 넣었다. 밥상 대신 깐 신문지에서 정부의 천안함 폭파 원인 조사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언론인들의 사진을 봤다. 노종면 전 <와이티엔>(YTN) 노조위원장이 눈에 띄었다. 생방송 뉴스를 진행하던 그는 ‘낙하산 사장’ 반대투쟁을 이끌다 해직되더니, 이젠 ‘언론3단체 천안함 조사결과 언론보도 검증위원회’ 대표위원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정부가 어뢰 폭발의 증거로 제시해온 흡착물질을 분석해 종합보고서를 발표(12일)했다는 소식이었다.

11월 집주인이 월세를 독촉한 날 한국방송 이사회가 수신료 1천원 인상안을 의결(19일)했다. 해고자에겐 단돈 1천원도 적은 돈이 아니다. 김유진 ‘케이비에스 수신료 인상저지 범국민행동’(6월29일 발족) 운영위원장(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의 말이 머리에 남는다. 그는 “수신료 인상의 전제조건은 공영방송으로서 케이비에스의 정상화”라고 했다. 정권홍보에 후한 현 한국방송은 노동자와 약자에겐 인색하다.

12월 ‘추적60분’마저 불방(8일, 3주 만인 22일 방송)됐다. ‘피디수첩’에서처럼 4대강 문제를 다룬 프로그램이었다. 제작진 막내 피디(김범수)가 김인규 사장의 사퇴를 촉구(9일)했다. 비판 목소리가 사라졌다는 한국방송에서 추적60분 제작진들만큼은 ‘권력감시 탐사보도’를 지키려 분투중이다. 사쪽은 제작진 전원을 감사(24일 시작)하는 강경대응으로 맞받았다. 김용진 부산총국 기자에겐 외부 매체 기고(‘공영방송의 정권홍보 방송화’ 비판)를 문제삼아 정직 4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납득할 수 없는 징계는 불신만 키울 뿐이다.

리영희 선생이 돌아가셨다(5일). 그는 글쓰기를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라고 정의했다. 그의 글을 읽으며 세상의 의문을 해결했던 난 요즘 방송을 봐도, 신문을 읽어도 내 삶에 닥친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벌써, 선생이 그립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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