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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범 얼굴공개 논란…알권리 빙자해 ‘증오사회’ 부추기나

등록 2012-09-04 20:04수정 2012-09-05 11:31

<조선일보>가 “반인륜 범죄”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한다는 방침에 따라 피의자들 모습을 실은 지면. 시계방향으로 최근 전남 나주 어린이 성폭행사건의 고아무개씨, 지난 4월 경기도 수원 20대 여성 납치·살해사건의 오원춘씨, 2010년 3월 부산 여중생 성폭행·살해사건의 김길태씨.
<조선일보>가 “반인륜 범죄”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한다는 방침에 따라 피의자들 모습을 실은 지면. 시계방향으로 최근 전남 나주 어린이 성폭행사건의 고아무개씨, 지난 4월 경기도 수원 20대 여성 납치·살해사건의 오원춘씨, 2010년 3월 부산 여중생 성폭행·살해사건의 김길태씨.
조선, ‘나주 성폭행범’ 얼굴 오보
선정적 범죄상업주의 논쟁 가열
유영철때 시작·강호순때 본격화
기준 불명확해 자의적 해석 우려
<조선일보>가 지난 1일 무고한 시민 사진을 ‘나주 어린이 성폭행범’ 얼굴이라며 1면에 공개하는 오보를 낸 것을 계기로 무분별한 ‘흉악범 얼굴 공개’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얼굴 공개를 비롯해 선정적 범죄 보도 경쟁에 몰입하는 언론의 태도를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응징 논리로 무분별한 얼굴 공개
흉악범 얼굴 공개 논란은 2004년 연쇄살인범 유영철씨 사건을 계기로 시작됐다. 22명이 희생된 희대의 사건에 ‘살인마의 인권을 보호할 가치가 있느냐’는 여론이 일었다. 이후 2009년 연쇄살인범 강호순씨 사건을 맞아 “국민의 알 권리와 공익”(조선일보) 또는 “흉악범 인권보다는 사회적 안전망이 우선”(중앙일보)이라는 이유로 얼굴 공개가 본격화했다. 다른 신문들과 방송 3사도 뒤를 따랐다.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도 얼굴 공개 여부를 각 언론사 판단에 맡겼다. 무죄 추정 원칙, 여론 재판, 가해자 주변인 인권 등의 문제는 뒤로 밀렸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법적 근거도 마련됐다. 2010년 4월 개정된 ‘특정강력범죄 처벌에 대한 특례법’은 △범행 수단이 잔인하며 피해가 중대하고 △충분한 증거가 있으며 △국민의 알 권리 보장과 범죄 예방 등 공공 이익을 위해 필요하면 수사기관이 피의자 이름과 얼굴을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경찰 관계자는 “규정이 모호해 자의적 해석의 우려가 많다”며 “현장에서는 피의자가 강력히 거부하면 공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 4월 수원 20대 여성 납치·살해사건 피의자 얼굴을 공개했지만, 지난달 역시 수원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 살해사건 피의자 얼굴은 공개하지 않았다.

언론도 기준을 명확히 정하지 못하고 있다. 나주 사건 피의자 고아무개씨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한국방송>(KBS)의 이선재 보도국장은 “명확한 기준이 없어 사건별로 판단하고 있다”며 “다른 방송 상황도 비슷해 앞으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도 흉악범 얼굴 공개는 법에 따라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시각도 있다. 김창룡 인제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인권을 강조하는 미국, 캐나다 등에서도 사회적 합의를 거쳐 흉악범 얼굴을 공개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에서도 수사기관이 1차적으로 얼굴을 공개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수사기관의 공개 여부와 상관없이 자체적으로 수집한 신원 정보를 경쟁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한겨레>는 2010년 1월 마련한 ‘범죄 수사 및 재판 취재 보도 시행세칙’을 통해 “고위공직자나 사회 저명인사가 아닐 경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본인 의사에 반해 실명·초상 등 신원은 공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한겨레는 이에 따라 수사 과정에서 강호순·김길태·조두순씨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다.

■ ‘알 권리’ 빙자한 상업주의
언론의 선정적 보도는 ‘알 권리’와 ‘범죄 예방’이라는 스스로의 논리마저 무색하게 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번 사건 피해 어린이 집의 상세한 약도와 사진을 공개하고, 피의자 고씨가 이복누나의 몸을 만지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피해자 일기장을 단독 입수했다며 내용을 공개했다. 언론은 경찰이 통제하지 않는 틈을 타 피해자 집 내부 모습을 보여줬다. <동아일보>는 위성사진까지 이용해 피해자 집과 범행 장소를 알렸다. 알 권리를 빙자해 ‘2차 피해’를 입힌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공포감과 증오심을 지나치게 증폭시키거나 극단적 해법을 제시하는 것도 ‘범죄 상업주의’의 혐의를 거두기 어렵다. 동아일보는 4일 다른 사건들까지 거론하며 ‘사형 집행 논란’이 부활하고 있다고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일부 언론은 ‘물리적 거세’를 언급하고 있다.

권인숙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는 “언론에 노출되는 대부분의 성폭력 사건은 일반적 사건이 아니어서 알 권리와 선정성 사이에서 줄타기 보도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과도한 보도는 사회 불안을 조장해 불심검문과 보호감호 부활 등 부당한 사회 통제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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