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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은 밥먹듯, 월급은 띄엄띄엄…“욕만 나와” “너도 그래?”

등록 2012-10-21 21:06

(※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새로운 주체 ‘나·들
대숲에 모인 ‘나·들’의 속닥임

시작은 ‘답답함’이었다. 무언가를 하자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지난달 중순 ‘출판사 옆 대나무숲’을 시작으로 우후죽순처럼 터져나온 트위터상의 ‘○○ 옆 대나무숲’ 계정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대나무숲을 처음 만든 출판사 직원 권로운(가명·32)씨는 “미국 예술가 프랭크 워런이 벌였던 ‘비밀엽서’ 프로젝트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다. 워런은 자신의 주소를 남긴 엽서를 공공장소에 뿌렸고 50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충격적 폭로부터 우스꽝스런 일상까지 다양한 비밀을 담아 그에게 보냈다. 권씨는 대나무숲이 그런 역할을 해주길 바랐다. 서로 기대거나 부대끼지 않고 상명하달식 명령도 먹히지 않는, 철저한 개별자들의 수평적 네트워크가 그가 생각하는 대나무숲의 모습이다.

<한겨레>는 지난 8일부터 13일까지 5인의 대나무숲 개설자와 애용자를 만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언론 매체, 대통령 선거와 ‘나들’에 대한 이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 ‘을’들의 하소연 “그냥 욕이 나온다” 학교에서 무대디자인 일을 배우며 실제 일도 병행하는 차혜련(가명·22)씨는 “이쪽 업계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심리적 해소를 하기 위해” 공연장 옆 대나무숲을 띄웠다고 했다. 결과는 기대보다 만족스러웠다. 하늘 아래 하소연할 곳 하나 없는 이들이 140자의 가상공간을 스스럼없이 “유일한 낙”이라 부르게 됐다. 특히 누가 봐도 그럴 만하다 싶은, 처우가 열악한 업계의 반응이 뜨거웠다. 개인적 시간을 낼 수 없을 만큼 일이 많거나 항상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임금이 터무니없이 적은 곳일수록 그랬다.

출판사 대나무숲의 권씨는 “신입 때는 최저임금도 안 지켜지는 곳이 많다. 6년차 편집자가 한 달에 하루이틀 쉬고 주말까지 나와도 150만원 정도 받는 게 이 바닥”이라고 토로했다. 촬영장 옆 대나무숲 애용자인 박미란(가명·34)씨는 “영화 현장은 오래 일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처음에는 구조적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점차 화가 나더라”며 “영화 한 편 참여하면 다른 일을 못하는데도 독립영화 연출부는 안 받는 경우가 많고, 상업영화 연출부는 한 달에 100만원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촬영 현장에 있으면 그냥 욕이 나온다. 날씨 하나에도 스케줄이 막 바뀔 만큼 영화 일 자체가 불확실하고 만년 대기 상태다 다른 직장 같으면 이 모든 게 스트레스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출판사 옆 대숲’을 시작으로
‘공연장 옆’ ‘촬영장 옆’…
SNS 대숲엔 ‘을’들의 넋두리 무성
불합리한 현실 나누며
정치사회 담론 만들어
“낮은 목소리 귀기울이고
상식적인 사회 됐으면”

■ “기성매체 ‘허당’… 흥미로만 접근” 대나무숲 계정을 만들고 애용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를 비롯, 새로운 매체에 비교적 초기에 적응한데다 신문과 방송 같은 기성 매체보다 새로운 매체를 더 신뢰한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부터 피시(PC)통신을 이용해 온라인 기반의 소통 방식에 익숙해 있고(출판사 옆 권로운), ‘알에스에스(RSS)피들러’ 같은 애플리케이션으로 자기만의 매체를 만들어 뉴스를 보거나(대학교 옆 서민규), 프로그램을 이용해 자동으로 트위터에 글을 올리는 ‘트윗봇’으로 취미생활을 할 정도(공연장 옆 차혜련)다. 이들은 대부분 한국에 이용자가 많지 않던 3~4년 전 트위터를 시작했다.

기성 매체에 대한 이들의 신뢰도는 낮다. 차씨는 “(기성 매체는) 파급력은 큰데 ‘허당’”이라며 “정치적 이슈를 연예인 스캔들로 묻는 등 전해야 할 것들을 전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교 옆 대나무숲 개설자 서민규(25)씨는 “기성 매체는 서로 편을 갈라 상대를 긁고 싸우고만 있는 인상”이라며 “아예 관심 있는 주제와 관련된 기사만 검색해 따로 보고 있다”고 답했다. 대나무숲에 대한 기성 매체의 접근 방식도 불만이다. 권씨는 “우리가 대나무숲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노사문제 같은 것인데, 기성 매체에선 대나무숲을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소재로만 활용하더라”며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데 바깥에선 흥미 위주로만 접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학생회나 노동조합 등 기성 조직틀에 참여한 경험이 없거나 적다는 공통점도 지녔다. <한겨레>가 만난 5인의 대나무숲 애용자 중 대학 학생회 활동 경험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들은 노조에 속해 있지도 않았다. 공연장의 차씨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학업과 일 때문에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면서 학생회 활동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대학생 서씨는 군대에서 다양한 계층의 동료들을 만나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지만 “학생회 활동을 하진 않을 생각”이다. 그는 “학생회 활동을 하는 애들은 ‘상종하기 힘들다’는 편견이 깔려 있을 만큼 학내에서 소수로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시간강사나 대학원생을 위한 우골탑 옆 대나무숲 개설자 김병수(가명·34)씨는 “살아온 인생이 노동문제와 거리가 멀어 참여 기회가 없었던데다 집회 분위기 자체에 적응을 못했다. 스피커 틀어놓고 구호 외치고 이런 데 못 앉아 있겠더라”고 말했다.

이들은 또 철저히 자기중심적·개인주의적 특성을 보였다. 이들은 결혼도 구속이라 여긴다. 공연장의 차씨는 “결혼이 불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이 사람이랑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도 결혼은 안 할 것 같다. 한번 선택하면 되물리는 걸 싫어하는데, 이혼할 거면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강조했다. 우골탑의 김씨도 “누군가 아무 이유 없이 내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을 싫어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 권리·의무 민감… “상식이 통했으면” 기성 조직·제도를 거부하지만 이들은 나름의 기준으로 사회문제와 정치적 이슈에 접근하고 있었다. 특히 시민의 권리·의무 개념이 구체적이었다. “사회와 격리될 만큼 일이 많다”는 공연장의 차씨도 “정치인들이 나와 내 부모의 세금을 받아먹고 있으니, 투표는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서씨는 트위터를 통해 사회적 의제를 다룬 각종 무료 강연 소식을 접하고 찾아듣는다. 그는 “김진숙, 85호 크레인, 희망버스도 그렇게 만났다”고 했다.

이들에겐 ‘광장’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다. 우골탑의 김씨는 “(희망버스를 통해) 운동의 범위가 넓어지는 과정이 흥미로웠고, 이 문제와 당장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 가는 게 신기했다”며 “집회 문화에 거부감이 있지만 그걸 상쇄할 정도로 의미가 있는 장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몇개의 인권단체와 문화단체, 진보신당 등에 적을 두고 있었다. 정당 가입이 의외라고 묻자 김씨는 “정당 가입이 투표의 의무와 같은, 민주주의 국가 국민의 의무 같은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8대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 이들은 체감할 만한 구체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우골탑의 김씨는 “20대 때는 어떤 문제도 와닿지 않았고 어떤 정당이 집권해도 내겐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투표를 잘 하지 않았다”며 “서른 살 넘어서 ‘입만 나불거려선 안 되지’라는 생각에 선거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권이 사람들의 고통과 불만에는 귀를 닫은 채 ‘투표율이 낮다’고 유권자들을 비난하는데, 투표 시간 한두 시간 연장하는 것보다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촬영장의 박씨는 “지난 대선 때는 기권을 했는데 트위터를 시작한 뒤부터 모든 선거에 꼬박꼬박 참여하고 있다”며 “아직 대선 지지 후보는 없지만 불쌍한 사람들 돕는 코스프레나 하는 후보 말고 누가 더 노동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따져봐서 찍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숲 애용자들의 또래에 대한 평가는 부정과 긍정이 교차했다. 대학생 서씨는 “크게 볼 때 우리 또래들은 신자유주의 탓에 불안을 안고 사는 병든 세대”라며 “요즘 우울증 약을 먹는 친구들도 생겨나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20대는 정말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다”며 “이러다간 우리 세대에서 정치인이 나오기나 할까”라고 물었다. 같은 20대인 공연장 차씨는 “또래들은 이전보다 나아진 부분이 분명히 있는 반면 퇴보된 부분도 있다. 50~60대보다 더 남성우월적 시각을 가진 이들도 있더라”고 했다.

우골탑 김씨가 바라는 세상은 ‘상식이 통하는 사회’다. 그는 “우리 사회에선 공부를 열심히 하면 모범생이지만, 열심히 한 공부로 문제를 제기하면 문제아가 된다. 어려운 사람에게 기부하면 인간으로서 베푸는 것이고 이들을 구제하자고 하면 좌파가 된다”며 “단지 바라는 건 상식적인 사회”라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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