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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 ‘청년 한겨레’가 갈 길

등록 2013-05-07 20:33

성한표 언론인
성한표 언론인
미디어 전망대
<한겨레> 창간호가 나온 지 벌써 25년이 된다. 25년 전 한겨레는 ‘또 하나의 신문’이 아닌, 새 시대를 여는 ‘새 신문’을 표방하며 태어났다. 신문과 출판 전반의 활판인쇄 시대를 마감하는 컴퓨터 조판, 한글 가로쓰기 편집은 당시 아마추어리즘으로 폄하되었지만, 이제 신문 제작의 대세가 되었다. 기자들의 ‘촌지’ 받기가 출입처 단위로 공식화·제도화되어 있던 당시 한겨레 기자들이 시작한 ‘촌지 안 받기’가 차차 젊은 기자들을 중심으로 언론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군사정전위원회가 판문점에서 열려 논쟁이 벌어지면, 신문들이 으레 ‘북괴가 생떼를 썼다’고 보도하던 시절 한겨레는 ‘북한이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다른 신문들이 아무런 호칭 없이 그냥 ‘김일성’이라고 지칭했지만, 한겨레는 ‘김일성 주석’이라고 그들의 공식 호칭을 붙였다. 당시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지만, 이제 모든 신문이 그렇게 한다. 한 신문이 언론계의 흐름을 이 정도로 바꾼 일은 전무후무한 일일 것이다.

한겨레 기자들은 청와대까지 연루된 권력층의 비리를 포함하여 사실로 확인된 것은 반드시 보도한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이 때문에 정부가 대기업에 압력을 넣어 한겨레에 광고를 주지 못하게 막은 적도 있고, 기사에 대한 보복으로 대기업 스스로 광고를 끊어버린 적도 여러 차례 있었다. 이럴 때 한겨레가 버텨낸 것은 열성 주주 독자들의 격려와 언론계 최악의 저임금으로 버텨낸 한겨레 구성원들, 그리고 의식 있는 초기 지국장들이 사재를 털어 지켜낸 신문 배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편집권이 발행인에게 있느냐, 편집인에게 있느냐 하는 언론계의 오래된 논쟁거리가 한겨레에서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겨레에서 실질적인 편집권은 기자 각자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단 기자가 기사를 쓰고, 그 기사의 뉴스 가치가 인정될 경우 이 기사를 지면에서 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창간 당시의 편집국 분위기는 활력이 넘쳤고, 한마디로 ‘삼엄’하다고 할 정도로 긴장감이 있었다.

한겨레도 이제 25살의 청년으로 자랐다. 근육도 적당히 붙었고, 웬만한 시련은 이겨낼 만큼 내공도 쌓였다. 한겨레는 ‘민주화’라는 시대적 사명을 온몸으로 감당하면서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렸다. 우리 사회는 이제 ‘경제민주화’라는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앞에 놓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한겨레가 다른 신문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확실한 주제이지만, 차별화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모든 신문이 강조해 마지않기 때문에 차별화의 길은 경제민주화라는 구호성의 추상적 주장에 생명력을 불어넣음으로써 열린다. 그것은 결국 광고를 앞세운 대기업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가능하다. 하지만 한겨레는 이제 우유 한 통이면 하루를 버틸 수 있었던 아기 때와는 달리 조직도 꽤 커졌다.

더욱이 한겨레가 자연스럽게 대변할 수 있었던 범민주화세력이 개혁과 진보, 혹은 자유주의와 좌파로 본격적으로 분화되기 시작했다. 앞으로 한겨레는 양쪽으로부터 비난과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 한겨레는 이런 상황에 위축되거나 좌고우면하지 말고 뚫고 나가야 한다. 한겨레 구성원들이 창간 당시의 기개로 25년 뒤의 ‘장년 한겨레’를 향한 대장정에 다시 나서야 할 때다.

성한표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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