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석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교수
미디어 전망대
얼마 전 걸그룹 시크릿의 멤버 전효성이 방송에서 ‘민주화’ 발언을 잘못해서 곤욕을 치렀다. “우리는 개성을 존중한다. 민주화시키지 않는다”고 했는데, 여기서 민주화는 “집단 괴롭힘 또는 비추천”의 의미였다. 그는 다음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사과했지만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했다. 가수 김진표도 방송에서 헬기 추락 장면을 “운지(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비하적 표현)를 하고 만다”고 말해서 사과한 일이 있다. 최근에는 한 초등학교 교사가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에서 학생들을 ‘로린이’로 표현하고 자신의 성매매 경험담을 올려 논란을 일으켰다. ‘로린’은 아동을 성적 노리개로 삼는다는 뜻이다.
세 사건의 공통점이 있다. 세 용어 모두 일베에서 확산된 비속어라는 점이다. 두 번째는 세 사람 모두 사과하면서 “본래 뜻을 몰랐고, 인터넷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로 오해했다”고 말한 점이다. 어쩌면 이들이 그 뜻을 정말 몰랐을 수도 있다.
이 사건들의 의미는 특정 용어의 출처나 뜻보다는 왜곡된 정치사회화 방식에 있다. 정치사회화란 인간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정치 현상을 지각하고 제도나 정치에 대한 지식과 평가 능력을 성숙시켜나가는 것을 말한다. 정치사회화는 가정, 학교, 동료 집단, 정당, 정부 기구 등 다양한 매개체들을 통해 일어난다. 정치사회화를 논하는 데 신문과 방송 같은 대중매체를 빼놓을 수 없다. 오늘날 그 자리를 인터넷이 대체해 나간다.
그러나 신문이나 방송 뉴스는 멀리하고 현실 세계의 사회 활동도 배제한 가운데 일어나는 온라인 정치 참여는 부정적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인터넷 공간은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을 찾아다니는 ‘자기 선택형 소비’ 공간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선호에 기반한 정보 습득은 지식의 편식 현상을 가져올 수 있다. 온라인 공동체 참여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한 관계 맺기에는 ‘유유상종의 법칙’이 작동한다. 이질적 의견을 수용하기보다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과 결속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는 자신의 의견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다른 의견을 수용하는 호혜성은 떨어뜨린다. 또 인터넷은 탈권위적인 수평적 매개체라 세대간 수직적 소통보다는 온라인 정체성을 공유하는 ‘또래 효과’가 작동된다. 나이나 성별 같은 정체성이 사라지고 집단에 동화되는 현상은 온라인사회화의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권위에 압도당하지 않지만 ‘어른 역할’도 상실되기 때문이다.
정치 지식의 편식 현상, 유유상종의 집단화, 세대간 소통 단절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인 집단극화의 원인이다. 집단극화는 여론이 양극화되는 비정상적 의견 분포를 말하는데, 양쪽 의견을 수렴하는 중간 계층이 줄어들면서 극단간 대립이 심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집단극화는 비하·냉소·폄하·차별 등을 동원한 언어 공격과 배타적 문화를 동반한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청소년의 정치사회화다. 청소년들은 줄어드는 가족간 대화, 입시 경쟁, 뉴스에 대한 무관심 속에 개인화된 모바일 미디어로 온라인 관계에 집착하는 경향이 크다. 그들의 가장 큰 참조 집단은 온라인상 또래들이다. 또래에 의한 또래의 정치사회화의 결과가 일베 용어의 일상화와 집단극화다.
이를 극복하려면 세대간 수직적 소통을 촉진하고 대중매체가 정보의 균형을 잡아줘야 한다. 그러고 보면 일베 현상이나 청소년의 왜곡된 정치사회화도 기성세대와 대중매체의 문제로 귀착된다. 곧, 의견 편식에서 균형을 맞추는 제3의 매개체의 역할이 아쉬울 따름이다.
황용석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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