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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미디어 전망대] ‘국정원 NLL주장’ 대변한 KBS ‘발표저널리즘’

등록 2013-07-11 19:53수정 2013-07-11 20:50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언제부턴가 현 공영방송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일부 인사들은 학계의 논의를 빌려와 “공정성은 보기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주장하곤 한다. 누군가 불공정 문제를 제기할라치면 “그것은 한편에 있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일방적 시각일 뿐”이라며 논의 전개를 애초에 차단한다. ‘후안무치’이자 ‘견강부회’이다. 학자들이 주로 이야기하는 상대성은 언론이 객관성이라는 명분으로 진실을 왜곡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일 뿐이다. “어차피 공정성은 상대적이니 합법적인 권한을 쥔 사람에게 맡길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궤변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객관을 빙자한 불공정’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번 북방한계선(NLL) 보도이다.

국가정보원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전문과 발췌본을 여당 의원들에게 전달한 지난달 24일, <한국방송>(KBS) ‘뉴스9’은 “엔엘엘 바꿔야”라는 그래픽 제목을 달고 시작했다. 앵커의 첫 일성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엔엘엘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것이었다. 해당 리포트도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엔엘엘 발언에 공감하는 내용을 주로 하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그가 엔엘엘을 포기하려고 하였다는 인상을 강하게 갖게 하였다. 그런데 이 보도의 근거 자료는 대화록 전문이 아니라 ‘발췌본’이었다.

이어진 두번째 뉴스는 “임기 내내 북한 옹호”라는 그래픽 제목을 달았다. 이 리포트도 노 전 대통령의 수많은 말들 가운데 국정원이 발췌한 내용들을 옮긴 것이다. “확인됐습니다”라는 표현 등 리포트 구성은 노 전 대통령이 ‘북한 옹호자’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에스비에스>(SBS)가 바로 다음 날(25일) 발췌본이 원문과 다르다는 사실을 보도했지만 한국방송은 그다음 날에 가서야 이 사실을 10번째 꼭지로 다뤘다. 그것도 기자 스스로가 ‘오해의 소지’나 ‘혼동했을 가능성’ 등의 표현을 쓰며 발췌본을 대변하였다.

한국방송 쪽은 ‘사실’만을 보도했다고 강변할 것이다. “국정원이 그렇게 밝혔다”는 ‘사실’을 보도했을 뿐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이해 당사자가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자료가 있고 그것에 의해 피해를 보는 쪽이 있을 때 피해를 보는 사람 및 제3의 인물도 동의할 경우에 그 자료는 신빙성을 갖는다. 이것이 ‘3각 취재 원칙’이다. 원본 확인도 없이 이를 사실로 보도하는 것은 불공정성은 차치하고 명백한 진실 왜곡이며 책임 방기이다. 의제 설정 연구는 ‘점화’(priming)라는 개념으로 미디어가 특정 이슈에 주목하고 다른 이슈는 외면함으로써 특정 정치 집단에 대한 공중의 태도를 바꿀 수 있음을 주목한다. 발췌본으로 점화된 이슈의 방향과 틀은 원문이 공개된 뒤에도 바꾸기 어렵다. 맥락에는 눈감고 ‘여야 공방’으로 틀 짓는 ‘객관적’ 보도 태도로는 진실 규명은 무망하다.

국가기관의 말을 신뢰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국가기관이 제공하는 선택적 정보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저널리즘의 기본이다. 더구나 국정원은 대선개입 의혹 이슈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해 당사자가 아닌가. 김옥조 한림대 객원교수의 분석대로, 발표를 그대로 옮기는 ‘발표저널리즘’의 가장 큰 문제는 “의제 설정의 주도권을 발표자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의제의 방향과 시기의 주도권을 취재원에게 넘겨버리는 것은 언론의 기능이 아니라 선전 도구의 기능이다. 다른 방송과 ‘확연하게 구별됨’을 의무로 하는 공영방송이 이런 식으로 구별되는 것에 관련 연구자로서 자괴감을 느낀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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