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전망대
우리 사회에서 아동·청소년 보호라는 명분만큼 강력한 지지를 받는 사안은 없을 것이다. 미래 세대를 위한 국가와 사회의 보호 의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청소년 관련 법안은 매년 규제 강도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강력한 사회적 열망과 대의명분이 규제의 합리성을 저해하는 아이러니도 낳고 있다.
특히 인터넷은 청소년 보호 정책의 중심에 있다. 문제는 규제의 명분이 아니라 그 비합리성에 있다. 합리성이란 목적과 수단의 정합성을 의미한다.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 16살 미만 청소년의 온라인게임 이용을 금지하는 ‘청소년 인터넷게임 건전 이용제도’(강제적 게임 셧다운제)는 비합리적 규제의 대표적 사례다. 게임 중독 예방이 명분이지만, 중독의 원인이나 올바른 처방과는 괴리된 도구다. 셧다운 시간대는 청소년들이 온라인게임을 가장 많이 하는 시간대를 비켜나 있다. 본인 인증 회피 방식 역시 다양하다.
신의진 의원이 발의한 ‘중독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이하 게임중독법)은 게임을 마약, 알코올, 도박과 함께 중독 유발 물질로 규정하고 정부가 관리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게임은 물론 인터넷 중독도 국제적인 표준질병사인분류에 포함돼 있지 않고 과학적으로도 정당성을 얻고 있지 못하다. 게임에 대한 다수 연구들은 긍정·부정적 면을 모두 발견해냈다. 동기를 유발하고 공간 기술이나 인지 기술을 향상시키며, 사회적 협업성을 증진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게임 효과의 양면성을 무시하고 과다 사용의 문제점을 과잉 일반화하는 법안이 아닐 수 없다.
청소년보호법은 법체계의 복잡성만큼이나 개선점이 많다. 콘돔은 청소년에게 꼭 필요한 정보다. 그러나 포털사이트에서 ‘콘돔’을 검색하면 성인 인증을 받게 안내한다. 19살 미만에게는 뉴스처럼 제한적인 검색 결과만 보여준다. 중학교부터 청소년 성교육은 기술가정 교과서에 담겨 있지만, 정작 인터넷 검색에서는 이 정보의 접근이 제한되고 있다. 이유는 청소년보호법상의 청소년 유해 물건으로 고시된 물건들에 일부 기능성 콘돔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청소년 유해 물건을 판매하는 인터넷 사이트는 청소년유해매체물이라고 하는데, 포털이 검색 결과로 이런 내용을 안내하면 법률 위반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합리적 규제가 양산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는 의원들의 입법 선정주의를 들 수 있다. 행정기관에 의한 행정입법은 부처간 조율과 법제처 심사 등 복잡한 사전 조율이 필요하지만, 의원입법은 국회의원의 발의만으로 가능하다. 법안 발의는 국회의원의 권리이자 책무이기에 존중되고 장려돼야 한다. 그러나 대중의 극단적 지지에 기반하거나 소수의 이해관계자에게 영향을 받아 급조되고 비전문적으로 작성된 의원입법안들이 많다.
둘째는 국가 후견주의 문화다. 모든 사안을 행정적 수단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그것이다. 가정이나 사회가 해결할 문제까지 국가 제도를 통해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은 시민사회의 자율 영역을 좁히는 결과를 낳는다.
셋째는 규제의 경로 의존성이다. 한번 강화된 규제는 그 경로에 기반해 가지를 뻗고 강화되는 경향성을 갖는다. 새 제도에 배정된 예산과 인력이 있는 한 그 제도를 없애기는 매우 어렵다.
미래 세대를 걱정하는 마음은 모두가 비슷하다. 그러나 국가의 힘을 빌리는 것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제도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수단과 목적이 정합하는 합리성이 충족되는지를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황용석 건국대언론홍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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