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길을 찾아서]
연재 시작하는 언론인 성유보
(필명 이룰태림)
연재 시작하는 언론인 성유보
(필명 이룰태림)
“내 나이 어느덧 칠순에 들어서고 보니 우리 세대의 평생이 ‘격동기 한국 현대사 자체’라는 생각이 든다.”
새해 1월부터 새로 연재하는 회고록 ‘길을 찾아서’의 15번째 주인공인 언론인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사진) 희망래일 이사장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1943년 일제 말기에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일본식 이름으로 불리다 2살 때 해방을 맞았고, 5살 때 비로소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으며, 7살에 6·25전쟁을 겪고, 고교 2학년 때 4월혁명을, 대학 1학년 때 5·16 군사쿠데타를, 대학 4학년 때 한-일 굴욕회담 반대 데모에 뛰어들었다.”
그의 삶이 굴곡진 우리 현대사의 수레바퀴에 본격적으로 끌려든 것은 1974년 이른바 ‘자유언론실천선언’ 때부터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친 68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언론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그해 10월24일 박정희 유신독재의 영구집권을 위한 언론 탄압에 맞서다 이듬해 75년 2월17일 기자·프로듀서·아나운서 등 112명의 동료들과 함께 해직언론인의 이름을 얻었다. “그때부터 ‘서대문 국립대학’(서대문형무소)에서 신세도 두어번 졌지 아마?”
72년 유신정권이 언론 통폐합과 함께 ‘긴급조치’로 언론 통제를 강화해 나가자 기자들은 노조를 결성해 언론자유 수호 투쟁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74년 10월23일치 ‘서울대 농대생 300명 데모’ 기사를 문제삼아 중앙정보부는 <동아일보>의 송건호 편집국장을 비롯한 간부들을 연행했고, 이에 24일 <동아일보> <동아방송> 그리고 기자 전원이 편집국에 모여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했다. 그 파장이 커지자 정권은 그해 12월 한국 신문 사상 전례가 없는 ‘광고 탄압’을 가했지만 기자들은 독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꿋꿋이 두달 넘게 버텼던 것이다. 결국 이 투쟁을 지지하며 농성하던 <조선일보> 기자 70명까지 200명에 가까운 언론인이 거리로 내쫓겼다.
이후 84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초대 사무국장과 86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사무처장 등을 맡아 민주화운동 일선에 섰던 그는 88년 5월 국민주로 태어난 새 신문 <한겨레> 창간에 참여했다.
유신 맞서 자유언론 실천선언
해직뒤 민주화 운동 뛰어들어
“격동의 현대사 거친 우리 세대 삶
다음 세대가 가꾸고 발전시키길” “그나마 지난 세월에서 영광스러웠던 것은 잠깐이나마 <한겨레> 초대 편집국장을 지냈다는 사실이다. 지금껏 ‘길을 찾아서’ 연재를 애독해왔다. 하지만 지난가을 정작 회고록 집필 요청을 받았을 때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과연 지난 세월 어떤 길을 찾아 헤맸던가’ 하고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또 ‘찾아가고자 했던 길 위에서 내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던가’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오락가락하던 그의 마음을 잡아준 계기는 원풍모방 해고노동자 박순희씨와의 만남이었다. 박씨는 “원풍 노조 식구들이 ‘못다 이룬 꿈도 아름답다’며 서로를 위로하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길로 <원풍모방 노동운동사>(삶창·2010)를 구해 읽어 보았다. 책 말미의 기념좌담에서 82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570명의 노조원이 해고당했을 때 위원장이었던 정선순씨의 이야기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단순히 회고하자는 것이 아니고 그 바탕에 소중한 것, 반성할 것을 찾아보고 성찰적 계승을 하자는 의미이겠지요. 오늘 좌담을 통해 못다 이룬 꿈도 그 꿈은 참 아름다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또한 그 꿈은 여전히 우리들의 핏줄을 타고 뿌리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언론인으로서 지난 50년 삶을 되돌아보았다. 91년 논설위원을 끝으로 <한겨레>를 떠난 이후 최근까지 한번도 언론민주화와 진보운동의 현장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92년 <사회평론> 재창간위원장과 93년 사회평론사 대표, 95년 개혁신당 부대표, 98년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 2000년 선거보도감시연대회의 대표, 국가보안법폐지 국민연대 공동대표 등을 맡아 때로는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고 운동의 맨 앞줄을 지켰다. 2000년대 들어서는 방송통신위원회 남북방송통신교류추진위원회 위원장, 방송평가위원회 위원장, 케이블티브이윤리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한시도 쉬지 않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렇다. 60년 ‘4월혁명’이 나에게 안겨준 것은 ‘언론자유와 민주의 꿈’이었다. 때때로 잊은 적은 있었어도 그 꿈을 버린 적은 한번도 없었다.” 올해 자유언론실천선언 40돌을 맞는다. 하지만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비롯한 해직언론인들은 아직도 복직 투쟁을 하고 있고, 그들을 거리로 내몰았던 ‘독재자의 딸’이 또다시 대통령으로서 ‘폭압정치의 망령’을 되살리려 하고 있다. 그는 글을 쓰기로 했다. “우리 세대는 물론 온 국민이 지난 반세기 동안 찾아 나선 ‘언론자유와 민주의 꿈’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이 도정에서 우리가 겪고 느끼고 배운 것들을 남겨놓는다면 다음 세대들이 그 꿈을 더욱 가꾸고 발전시켜 나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의 이야기 ‘멈출 수 없는 언론자유의 꿈’은 그의 필명 ‘이룰태림’으로 연재된다. 필명의 내력은 연재 중에 소개할 예정이다. 글·사진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해직뒤 민주화 운동 뛰어들어
“격동의 현대사 거친 우리 세대 삶
다음 세대가 가꾸고 발전시키길” “그나마 지난 세월에서 영광스러웠던 것은 잠깐이나마 <한겨레> 초대 편집국장을 지냈다는 사실이다. 지금껏 ‘길을 찾아서’ 연재를 애독해왔다. 하지만 지난가을 정작 회고록 집필 요청을 받았을 때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과연 지난 세월 어떤 길을 찾아 헤맸던가’ 하고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또 ‘찾아가고자 했던 길 위에서 내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던가’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오락가락하던 그의 마음을 잡아준 계기는 원풍모방 해고노동자 박순희씨와의 만남이었다. 박씨는 “원풍 노조 식구들이 ‘못다 이룬 꿈도 아름답다’며 서로를 위로하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길로 <원풍모방 노동운동사>(삶창·2010)를 구해 읽어 보았다. 책 말미의 기념좌담에서 82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570명의 노조원이 해고당했을 때 위원장이었던 정선순씨의 이야기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단순히 회고하자는 것이 아니고 그 바탕에 소중한 것, 반성할 것을 찾아보고 성찰적 계승을 하자는 의미이겠지요. 오늘 좌담을 통해 못다 이룬 꿈도 그 꿈은 참 아름다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또한 그 꿈은 여전히 우리들의 핏줄을 타고 뿌리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언론인으로서 지난 50년 삶을 되돌아보았다. 91년 논설위원을 끝으로 <한겨레>를 떠난 이후 최근까지 한번도 언론민주화와 진보운동의 현장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92년 <사회평론> 재창간위원장과 93년 사회평론사 대표, 95년 개혁신당 부대표, 98년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 2000년 선거보도감시연대회의 대표, 국가보안법폐지 국민연대 공동대표 등을 맡아 때로는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고 운동의 맨 앞줄을 지켰다. 2000년대 들어서는 방송통신위원회 남북방송통신교류추진위원회 위원장, 방송평가위원회 위원장, 케이블티브이윤리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한시도 쉬지 않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렇다. 60년 ‘4월혁명’이 나에게 안겨준 것은 ‘언론자유와 민주의 꿈’이었다. 때때로 잊은 적은 있었어도 그 꿈을 버린 적은 한번도 없었다.” 올해 자유언론실천선언 40돌을 맞는다. 하지만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비롯한 해직언론인들은 아직도 복직 투쟁을 하고 있고, 그들을 거리로 내몰았던 ‘독재자의 딸’이 또다시 대통령으로서 ‘폭압정치의 망령’을 되살리려 하고 있다. 그는 글을 쓰기로 했다. “우리 세대는 물론 온 국민이 지난 반세기 동안 찾아 나선 ‘언론자유와 민주의 꿈’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이 도정에서 우리가 겪고 느끼고 배운 것들을 남겨놓는다면 다음 세대들이 그 꿈을 더욱 가꾸고 발전시켜 나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의 이야기 ‘멈출 수 없는 언론자유의 꿈’은 그의 필명 ‘이룰태림’으로 연재된다. 필명의 내력은 연재 중에 소개할 예정이다. 글·사진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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