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신문, 교학사 책과 이중잣대
위안부 서술 등 문제 인정하고도
“외부 좌파 세력의 압력”으로 폄훼
상식·사실 아닌 이념 문제로 몰아
위안부 서술 등 문제 인정하고도
“외부 좌파 세력의 압력”으로 폄훼
상식·사실 아닌 이념 문제로 몰아
2001년 일본에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주도한 후소사 역사 교과서가 처음 나왔을 때, 일본의 시민단체들은 학교를 찾아다니며 유인물을 배포하는 등 채택 반대 운동을 했다. 그 결과로 침략 전쟁을 정당화한다는 비판을 받은 후소사 교과서의 채택률은 1%도 넘지 못했고, 국내 언론들은 이를 입을 모아 칭찬했다. 보수 신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앙일보>는 2001년 8월 ‘채택률 0.4%의 의미’란 제목의 사설에서 후소사 중학생용 역사 교과서 채택률이 0.4%에 불과하다면서 “일본 학부모와 시민단체의 양식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또 “일반 서점에서는 50만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됐으면서도 교과서로는 철저히 외면당한 것은 적어도 나라의 장래를 책임질 어린 세대에게는 왜곡된 역사인식을 심어줄 수 없다는 성숙한 판단이 작용한 결과라고 본다”고 했다.
후소사 교과서가 다시 논란이 된 2005년 7월,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후소사판 교과서의 채택률 급증이 우려되는 이유는 일본 정부가 ‘검인정 교과서 집필은 저자의 자유이며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는 명분 뒤에 숨어, 실질적으론 교과서 왜곡은 물론 채택까지 지휘하고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선 한·일 양국 민간단체들이 연대해서 교과서 채택이 완료되는 시점까지 각 지역 교육위원회를 대상으로 동북아 지역 전체의 미래를 위한 양식있는 선택을 호소하는 길밖에 없다”고 했다.
<동아일보>도 같은 해 9월 후소사 교과서의 저조한 채택률에 대해 “일본 양심세력의 또 한 번의 승리다. … 일본 정부의 참회를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그들에게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실증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했다.
최근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 반대 운동의 양상은 후소사 교과서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보수 신문들의 입장은 180도 바뀌었다. 교학사 교과서가 위안부 관련 서술 등에서 일부 문제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채택 철회 배경에 학생과 학부모 등 교육의 직간접적 당사자들의 반발이 크게 작용한 점을 도외시한 채 ‘외부 좌파 세력의 압력’이라고 몰아가는 것이다. 후소사 교과서 반대 운동을 한 시민단체는 ‘양심 세력’으로 평가했는데, 교학사 교과서를 반대하는 쪽은 ‘인민재판’을 하는 좌파 세력으로 묘사되고 있다.
중앙일보는 8일치 ‘2322 대 0은 비정상이자 광기일 뿐’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교학사 교과서 채택 반대 움직임에 대해 “남의 생각은 한 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집단 광기의 결과”라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4일치 ‘특정 교과서 채택했다고 인민재판 당하나’란 제목의 사설에서도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을 못하도록 방해하는 외부 압력이자 협박이다. … 이들 단체나 네티즌은 특정 교과서 채택 학교에 대한 인민재판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도 8일치 ‘‘교학사 집단 짓밟기’가 바로 역사 교육 현장의 실상이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정상적으로 국가 검정을 통과해 채택된 교과서가 외부의 부당한 압력에 채택 취소됐다면 이는 교육 자율성에 대한 중대한 침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역사 교과서들에 대해서는 ‘반(反)대한민국 사관’을 가진 교과서라고 규정했다. 동아일보는 6일치 사설에서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 ‘채택률 제로’ 운동을 조직적으로 벌이는 쪽의 속내는 대한민국 건국과 6·25에 대해 우파적 사관의 서술을 한 것을 문제 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유기홍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민주당 간사(왼쪽 셋째) 등 의원들과 ‘역사교과서 친일독재 미화왜곡 대책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8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교육부가 발표한 한국사 교과서 선정 변경 학교들에 대한 특별조사 결과 발표는 정치적 외압이라며 정부에 역사왜곡을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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