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요즘 중장년층 지인들을 만나면 종합편성채널(종편)을 즐겨보시는 부모님 이야기를 하곤 한다. 어떤 분들은 하루 종일 특정 종편 채널만 틀어놓고 있다고 한다. 노인들이 잘 가는 대중목욕탕에도 종편 채널 뉴스가 기본이다. 나의 어머니도 무수히 반복 방영되는 <웰컴 투 시월드>(채널에이)와 <유자식 상팔자>(제이티비시) 재방송을 습관적으로 시청하시는 눈치다. 케이블에서 재방송되는 <1박2일>, <왕가네 식구들>과 같은 지상파 오락 및 드라마도 있지만 “이것들 모두를 다 보자면 한정이 없기 때문에 절제한다”고 말하신다. 한국 사람들의 1일 텔레비전 시청량이 평균 3시간 정도이지만 60대 이상은 6시간에 이른다. 기동성이 약한 노인들에게 텔레비전이나마 볼거리가 있으니 다행스럽다.
그러나 드라마와 오락 프로그램만을 많이 보는 것은 정신 건강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연구 결과들이 많다. 예를 들어, 한국개발연구원 정영호 박사의 연구를 보면, 평균치를 넘어선 정도의 시청은 삶의 만족도나 행복감을 떨어뜨린다. 이것은 얻는 것 없이 시간을 허비한 데 대한 죄책감 때문일 수도 있고, 텔레비전이 보여주는 물질주의적 가치관에 물들어 파생된 현실 불만족 때문이기도 하다. 일찍이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은 미국 사람들이 개인화 미디어인 텔레비전을 많이 보면서 다른 이들과의 유대, 곧 사회자본이 감소하고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뉴스와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장르를 섞어 시청한다면 이러한 부정적 현상이 완화될 수 있지만 보도와 시사 프로그램 시청이 마냥 좋은 것만도 아니다. 잘못하면 안 보느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미국 페어레이디킨슨대가 조사한 바로, 보수적인 <폭스뉴스> 채널을 보는 사람들의 정치 지식은 뉴스를 아예 보지 않는 사람들보다 못하다. 이집트 시민항쟁으로 무바라크 대통령이 하야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의 비율은 뉴스를 전혀 보지 않는 사람들이 폭스뉴스를 보는 사람들에 비해 18%포인트나 높았다. 편향적인 뉴스를 보는 것은 도움이 되기는커녕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신문이나 종편 채널 등 하나의 경로만을 이용해 뉴스를 접하는 것도 좋지 않다. 양정애와 이현우 두 연구자가 한국에서 조사한 바로, 텔레비전·케이블티브이·라디오·신문·인터넷·모바일 등 다양한 미디어를 이용할 때 정치 지식이 더 커진다. 심지어 하나의 미디어로 오랜 시간 뉴스를 접하는 것보다 짧은 시간이라도 여러 미디어를 섞어서 뉴스를 접하는 것이 정치 지식 향상에 도움이 된다. 실증 연구를 해보아야 하겠지만, 단일 신문이나 채널을 통한 장시간의 뉴스 소비는 잘못된 신념적 사고만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미디어와 채널이 더 늘어나면 이러한 문제점이 절로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선택의 폭이 늘어나도 실제로 개인이 접하는 경로는 쉽게 바뀌지 않으며 그 폭도 제한된다. 100여개 채널이 나오는 케이블티브이에 가입한 사람도 돌려 보는 채널은 몇 되지 않는다. 이것을 ‘채널 레퍼토리’라고 부르는데, 아는 노래가 많아도 노래방에 가서 부르는 것은 단 몇 곡에 불과한 것에 비유한 말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도 특정 집단 내의 관계망만 늘릴 뿐 다른 관계망과의 단절을 가져올 수 있다. 사람들 개개인이 각자 선호하는 미디어와 채널에 몰입하면서 사회는 파편화·양극화돼 가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 편식은 결코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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