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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전망대] 언론인은 말글로 심판받는다 / 장행훈

등록 2014-06-26 18:46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제 2차 대전 후 프랑스는 나치 점령하에서 적군에 부역했던 반역자들을 숙청했다. 사형을 당한 사람만 약 1만 명에 이른다. 물론 언론인도 포함돼 있다. 언론인 숙청은 다른 부역자들에 비해 수월했다. 부역의 증거가 글이나 말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주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전 <중앙일보> 주필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열기도 전에 자진 사퇴하지 않을 수 없는 수모를 겪게 된 것도 그의 말과 글 때문이었다. 그의 지지자들은 <한국방송>(KBS)이 그의 발언을 짜깁기해서 왜곡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케이비에스에서 반론권을 주겠다는데도 반론을 거부한 문 후보자다. 해명의 기회를 스스로 거부한 것이다. 왜곡보도를 말할 자격이 없다. 사실 2주 동안의 공방을 통해서 쟁점은 충분히 밝혀졌다고 본다. 국민의 70%가 그의 사퇴를 바랐다.

문 후보는 2011년 8월 온누리교회에서 행한 강연에서 “일제 식민지배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다. 한반도가 분단되고 우리가 6·25전쟁의 참화를 겪게 된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외쳤다. 이조 5백년을 허송세월한 민족을 각성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내린 채찍이었다는 것이다. “게으른 조선민족엔 공산주의가 딱 맞다”고 했다. “우리 민족의 피에는 게으름의 디엔에이(DNA)가 흐르고 있다”고도 했다. 일제는 조선민족은 게으르고 공짜를 좋아해서 일본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믿게 하려 했다. 식민사관이다. 우리가 불식해야 할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문 후보는 강연에서 이 식민사관을 되풀이해서 강조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우리민족을 철저히 비하하고 있다. 우리의 경제발전이 일본의 덕이라고 했다. 일본한테서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인륜 범죄인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해서도 일본에게 사과를 요구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 같은 주장에 대다수 국민이 분노하고 그의 사퇴를 주장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반응이다. 자업자득이다. 그는 함부로 하나님의 뜻을 내세워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남용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남용하면 벌을 면치 못하리라고 한 십계명의 제3계명을 범했다.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케이비에스가 문창극 후보의 문제의 동영상을 맨 먼저 국민에게 알리리라고는 아무도 예상 못했다. 케이비에스가 오랜 만에 큰 특종을 했다. 언론의 권력감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정부에서 불러주는 것이나 받아쓰고 전달하는 자신들의 행동을 자조(自嘲)하는 뜻에서 스스로를 ‘기레기’(기자 쓰레기)라고 부르던 케이비에스 기자들이 마침내 기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방송될 기사를 일일이 간섭하는 길환영 전 사장이 그대로 앉아 있었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에스비에스>(SBS)는 문 후보의 동영상을 확보해놓고도 보도국장이 방송을 막아 역사적인 뉴스를 놓치고 지금 후유증을 앓고 있다. 두 방송의 차이를 통해 권력이나 사주의 보도 간섭이 없어야 기자들이 언론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재확인한다.

케이비에스에 새 사장이 들어선 후에도 지금 같은 사내 언론자유가 지속될 수 있을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방송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한 바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국민이 신뢰하는 정치인이 아니다. 조선·중앙·동아가 케이비에스가 문 후보의 동영상을 보도했다며 징계를 요구하고 있는 것도 길조는 아니다. 언론이 언론의 검열을 요구하는 기이한 행동이다. 박근혜 캠프에서 일한 인물이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을 맡고 있다. 박근혜 정권이 방송을 통제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풍긴다. 이런 방통심의위는 없애는 것이 낫다.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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