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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언론인 해직, 1975년이나 지금이나 소름돋게 유사하다”

등록 2014-10-23 22:04

동아투위의 김종철 위원장(오른쪽), 문영희 전 위원장(가운데)이 19일 오후 옛 동아일보 사옥인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 앞에서 노종면 전 <와이티엔>(YTN)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동아투위의 김종철 위원장(오른쪽), 문영희 전 위원장(가운데)이 19일 오후 옛 동아일보 사옥인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 앞에서 노종면 전 <와이티엔>(YTN)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40년전 해직기자·6년전 해직기자 만남

1975년 해직 김종철·문영희
2008년 해직 노종면
40년전 일 되새기려 모였는데
2014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저기에 국제극장이 있었어, 저기엔 자이언트 다방이….”

그들은 잠시 추억에 젖어들었다. 등 뒤에서 5층 건물, 일민미술관이 무심한 듯 이들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꼭 40년 전인 1974년 10월24일이었다. 저 건물 안에서 목놓아 ‘자유언론’을 외쳤고, 그 뒤 저 건물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19일 오후,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옛 동아일보 사옥) 앞에 ‘해직기자’ 세 사람이 모였다. 두 사람은 해직 40년째고, 나머지는 이제 ‘겨우’ 해직 6년째다. 40년 전 일을 되새겨보려 모였는데, 말을 주고 받는 사이에 40년 전과 지금은 별반 다르지 않음이 드러났다. 역사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일까.

1974년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의 기자, 프로듀서 200여 명은 박정희 정권의 언론검열에 맞서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고, 이듬해 134명이 거리로 내몰렸다. 이들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를 결성해 싸웠다. 최근까지 19명의 동아투위 회원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세월이 흘러,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에서도 기자·피디들도 거리로 쫓겨났다. 지금도 16명이 회사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인 노종면 전 <와이티엔>(YTN) 기자가 김종철, 문영희 ‘기자’(동아투위 전·현 위원장)를 만났다.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
“지금의 언론탄압은
낙하산·족벌언론·종편으로 이뤄져”

문영희 동아투위 전 위원장
“언론, 기자정신·공동체 무너져
새벽은 서서히 온다, 겁내지 마라”

노종면 전 YTN 기자
“기자들 자정노력에 돌연 대량해직
YTN 경우도 동아와 마찬가지”

■ 해직도 언론인의 길을 막지 못해 노 기자가 먼저 두 선배한테 위로의 말씀을 전했다. 40년의 세월이 까마득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리라. 문 전 위원장이 곧장 받았다. “새삼스러울 게 없어요. 이런 험악한 세상에 태어난 것이 불운했을 뿐이지.”

30대의 나이에 해직을 당한 두 선배는 희망을 품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죽기 전까진 복직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979년 박정희가가 죽고도 군사독재가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40년이 됐다”면서 허허 웃었다.

이번엔 노 기자가 받았다. “저도 처음 해고를 당할 때는 길어야 1년 정도겠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덧 6년이 됐습니다. 요즘에서야 선배들 심정이 좀 이해가 된다”고 했다.

이들은 해직이란 “기자가 펜과 마이크를 뺏겨 무장해제 되는 것”이라고 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크지만, 기자로서 쓰고 싶은 기사를 쓸 수 없는 무력감이 가장 컸다고 했다. “술이 늘었다. 아이가 둘 있었는데 생활비를 못 대주니 아내와 싸우는 일도 늘었다”(문), “어머님이 시장 좌판에서 장사를 하셔야 했다”(김)는 등 생활고는 추억담으로 남았다. 김 위원장은 “40년의 세월 동안 고생했다고 세상이 말하지만,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한겨레> 편집부국장과 <연합뉴스> 사장 등을 역임했다. 문 전 위원장도 한겨레 상임이사직를 맡은 바 있다.

해직은 또하나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노 기자는 현재 미디어협동조합 <국민티브이>의 뉴스프로그램 <뉴스케이>을 진행하고 있다.

■ 언론탄압의 ‘평행이론’ 두 선배로부터 해직 과정을 들으면서, 노 기자는 “소름이 돋는다”고 말했다. 1975년과 2008년이라는 시간의 터울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이 놀랍도록 유사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 동아일보에선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요원들이 편집국에 상주하면서 기사를 검열하는 등 언론 탄압이 노골화되자 기자들이 스스로 자유언론실천특위를 조직해 싸움을 시작했다. 처음엔 부장·차장들과 평기자 사이의 갈등이 심했지만, 곧 화해 국면이 조성됐다. 신문이 정상화할 조짐이 보이자, 박 정권의 압력은 더욱 거세졌고 결국 대량 해직에 이르렀다.

노 기자는 “와이티엔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2008년 구본홍 사장의 취임 뒤 와이티엔 노조는 ‘공정방송점검단’을 만들어 보도 대응에 나섰다. “저희도 초반엔 사내의 선배 기자들과 갈등이 있었으나 나중엔 화해 국면으로 접어들었어요.” 문제는 그 이후다. “보도가 정상화 될 조짐이 보이자, 여권 내부에서도 구 사장이 무능하다는 비판이 나왔어요. 그러더니 돌연 대량 해직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기자의 자정 노력에서 시작해 대량 해직까지 이어진 일련의 과정이 시차를 두고 반복된 셈이다.

노 언론인들은 후배 기자의 설명에 곧바로 유신시대 언론탄압을 떠올렸다. 예전엔 정보기관을 동원해 노골적인 언론탄압을 벌였지만, 지금은 지능적인 언론탄압이 자행하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김 위원장은 “지금의 언론탄압은 공영방송의 낙하산 인사와 족벌 언론체제, 종합편성채널(종편)로 이뤄진다”고 말했다. 낙하산 사장은 정권의 충견으로 노조 탄압에 나서고, 족벌 체제는 기자를 사주에 충성하는 직장인으로 전락시킨다는 것이다. 보수층의 결집을 위해 “종편이라는 괴물을 만들었다”고 했다.

■ 기자정신 회복이 진짜 해법 … 조선·동아 대해부 책 출간 선배 기자들은 과거 자신들처럼 모든 것을 바치는 투쟁을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대신 ‘기자정신’을 살릴 수 있는 작은 공동체의 복원이 해법의 출발일 수 있다고 했다.

문 전 위원장은 “기자는 의심을 해야한다. 의심하지 않는 기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받아쓰기 일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세월호 참사로 촉발된 ‘기레기’(기자+쓰레기) 논란을 예로 들었다. “언론환경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주가 있는 언론기업과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하는 공영방송 체제는 똑 같아요. 기자가 기백이 있어야 합니다.”

김 위원장도 같은 생각이다. “동아일보 시절엔 밤 새고 토론하고 아침에 회사로 들어가 데스크하고 싸웠다. 그런 정신이 자유언론선언으로 이어졌다. 진보언론이 연대를 해야한다”고 했다.

동아투위는 선언 40주년을 맞아 또 하나의 중요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100년사를 정리한 책을 펴낼 준비를 마쳤다. 원고지 2만장 분량으로 총 10권이다. 함세웅 신부가 재정적인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요즘 언론을 공부하는 대학생들이 조선, 동아의 보도행태가 어땠는지 모른다. 이들의 실체를 알리려 한다”고 말했다. 동아투위는 24일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여는 40주년 기념식에서 책 출판기념회도 같이 할 계획이다.

두 시간 이상 이어진 대화가 마무리될 무렵, 선후배 해직기자들은 희망을 얘기했다.

“기자들이 투사가 될 필요는 없지만 공정언론을 위해 싸워야 한다. 언론자유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김종철)

“밤이 너무 길었다. 새벽은 서서히 다가온다. 겁내지 말아라.”(문영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조중동은 마이너 언론사다. 젊은 기자들이 새로운 소통도구를 잘 활용하면 상황은 희망적이다.”(노종면)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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