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학계, 자진사퇴론 확산
“외압발언 보도안한건 직무유기”
“외압발언 보도안한건 직무유기”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의 언론 관련 발언이 공개되면서, 언론계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다수의 언론학자들은 “자진사퇴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고, 언론단체는 이 후보자에 대한 형사고발에 나설 참이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위원장 전병금 목사)는 11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이 후보자를 방송법 위반 혐의로 형사고발하기로 결정했다. 언론위는 이 후보자의 방송사에 대한 외압 행사가 방송법의 방송편성 간섭 금지 조항(제4조 2항)을 위반한 것으로 봤으며, 오는 13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할 계획이다. 언론위원회 관계자는 “녹취록에는 이 후보자가 프로그램의 특정 패널을 빼라고 하고 이것이 실제 반영됐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는 명백한 제작 자율성 침해로 방송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방송법은 이 조항을 위반할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14개 언론단체도 이날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이 후보자의 총리 인준을 거부해 달라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들은 서한에서 “교수도 시켜주고 총장도 시켜줄 수 있다는 총리 후보자의 녹취록 발언이 결코 과장된 얘기가 아님을 현업 언론인들은 피부로 느끼고 있다”며 “이 후보자가 인준을 받는다면 부작용과 폐해는 훨씬 더 심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은 “그가 실제 총리가 된다면 권력으로 언론 장악에 나설 것이고,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 말했다.
다수의 언론학자들도 이 후보자의 발언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이 후보자 발언은 언론 자유 보장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정면으로 거스른다”며 “헌법적 가치마저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총리가 된다면 국정운영이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남재일 경북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이번 녹취록 파동은 권력의 지능적 언론통제와 기자들의 직업윤리 의식의 결핍이 낳은 합작품이다. 이 정도면 이 후보자가 총리가 될 자격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후보자의 발언을 알고도 보도하지 않았던 언론사들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일보> 등 언론사 네 곳은 지난달 27일 이 후보자의 문제 발언을 직접 들었음에도 보도하지 않았다. 한국일보는 10일 1면 사고를 통해 “본보 기자가 취재 내용이 담긴 파일을 통째로 상대방 정당(새정치민주연합)에 제공한 점은 취재윤리에 크게 어긋나는 행동이었다”고 사과했다. 민언련은 이날 ‘이완구 보도 기피 한국일보의 각성을 촉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어 “해당 기자로부터 보고받고도 보도하지 않아, 언론의 책임과 국민의 알 권리를 내팽개쳤다”고 비판했다. 김성해 대구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총리 후보자가 청문회를 앞두고 기자를 불러 만난 자리에서 언론 외압성 발언을 했음에도, 이를 보도하지 않은 것은 해당 언론사의 중대한 실수이거나 직무 유기”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일보 편집국 고위 간부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총리 후보자가 격앙된 상태에서 한 즉흥적이고 과시성 발언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정국 기자, 조현 종교전문기자 jg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