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꽃을 피웁니다”,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즐겁기만 합니다”, “정겹기만 합니다”, “웃음이 가득합니다”, “분위기를 만끽합니다”, “발걸음은 가볍습니다”, “동심에 빠져봅니다”, “천진난만하게 뛰노는 어린이들”…. 지난 설 연휴 기간 방송사들이 쏟아낸 스케치 뉴스들에 넘쳐났던 표현들이다. 현장을 그리듯이 표현한다고 해서 이름 지은 ‘스케치 뉴스’는 한국 방송에서 지나친 비중을 차지하면서 문제적 뉴스 ‘장르’가 되고 있다.
첫째로, 스케치 뉴스는 화면만 눈길을 끌 뿐 가치있는 내용이나 의미를 찾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이것들 때문에 정작 중요한 뉴스가 나가지 못하게 된다. 예를 들어, ‘고향에 다녀온 뒤 휴양림과 캠프장을 찾은 가족이 많았다’는 사실(에스비에스)이나 ‘안동 지역에서 제사상에 문어를 많이 올린다’는 것(문화방송)이 새로운 것들, 즉 ‘뉴스’(news)라고 선뜻 말하기 어렵다. 강원도 한 마을에서 438년째 단체 세배(도배)를 한다는 뉴스를 모두들 다뤘는데 이것은 지난해 설에도 <문화방송>에서 나갔던 것이고, 그 이전에도 방송사들이 2~3년마다 한 번씩 마치 새로운 사실을 발굴한 양 보도해 온 소재이다. 내년에는 439년째 단체 세배를 했다는 기사가 나갈 것이다.
둘째로, 상투적이거나 필요 없는 표현으로 방송의 품질을 낮춘다. 위에서 보았듯이, 무슨 꽃을 피우고, 무엇 하기만 하고, 무엇이 가득하고 등의 표현은 명절이나 휴일 스케치 뉴스에서 빠지지 않는다. 창의성도 공감성도 부족하다. 화면만 보아도 시청자가 충분히 알 수 있는데도 “짐을 들고, 버스에 오릅니다”, “휴게소는 대낮부터 벌써 만원입니다”라는 등의 사족으로 정보를 오히려 제한하기도 한다. 길을 가는 사람을 보고 “사람이 간다”라고 표현하는 능력은 세살배기도 지니고 있다.
셋째로, 주관적 관점으로 객관 보도의 원칙을 무너뜨린다. “자식들의 효심이 느껴집니다”, “설레고 들뜬 모습입니다”, “윷가락까지 춤을 춥니다” 등의 주관적 표현은 다반사이고 “먼 귀성길도 즐겁습니다” 등의 ‘전지적 작가 시점’을 취하는 것들도 많다. 주로 초년 기자들에게 작성하게 하는 스케치 뉴스는 이들이 경력 초기부터 객관적 뉴스 원칙에서 멀어지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는 듯하다. 내 말과 남의 말, 내 생각과 남의 생각을 구분하는 것이 객관성의 기초이다.
끝으로, 본질은 외면한 채 표피적인 스케치만으로 사안을 오히려 왜곡하거나, 이 보도를 원하는 쪽의 홍보 수단이 될 수 있다. ‘베트남 출신 며느리들이 설음식 차리기를 고역으로 생각하지 않고 즐겁게 한다’는 뉴스(한국방송)는 이들의 문화적응 문제를 너무 쉽게 접근하였다. ‘연휴에 강원도 스키장이 특수’라는 뉴스(문화방송)는 ‘온난화로 강원도 스키장이 위기감을 느낄 정도’라는 사실(한국방송)을 가릴 가능성이 있다. ‘최전방 병영생활이 선진화 되었다’는 뉴스(문화방송, 에스비에스)는 홍보성 색채가 강해 군 현실의 변화가 진짜로 그렇게 갑자기 변할 수 있는지 궁금하게 한다.
물론 세월호 유가족과 쌍용차 고공 농성자 등 안타까운 상황에서 설을 맞은 사람들에 대한 보도들(한국방송, 에스비에스)에서 보듯 스케치 뉴스 자체가 문제라고 하긴 어렵다. 그러나 의미 있는 현장을 제대로 보여주려는 뉴스의 목적을 잊은 채 기자를 어쭙잖은 화가로 만드는 일반적 경향을 고쳐야 한다. 자신들이 배운 바가 그것이라고 해도 후배들에게는 그렇게 가르치지 말아야 할 대표적인 한국 뉴스 관행이 스케치 뉴스라고 나는 생각한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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