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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전망대] 광고주에 맞서 사표 던진 영 언론인 / 장행훈

등록 2015-03-02 20:17수정 2015-03-02 20:17

자기 정도의 힘있는 정치인이면 언론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이완구 국무총리의 후보자 시절 망발 발언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맴돈다. 이 후보의 망발 사건은 발언 자체도 문제지만 그 엄청난 막말을 현장에서 듣고도 기사를 쓰지 않은 기자들이나, 취재기자로부터 언론 폄훼 망발을 보고 받고도 그것을 보도하지 않은 편집국 간부들의 의식과 판단 역시 비판을 받아야 한다는 소리가 컸다.

그런데 지난주 영국 런던에서는 중도 보수지의 기함으로 알려진 <데일리 텔레그라프>의 수석 논설위원이 사직한 일이 있었다. 세계적인 추문을 일으킨 영국 에이치에스비씨(HSBC) 은행의 탈세 사건을 다른 언론매체들은 연일 크게 다루고 있음에도, 자기 신문은 이를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다고 호되게 비판하는 글을 게재하고 신문사를 떠나버린 것이다. 한국 언론계에서는 듣기 어려운 결단이었다.

문제의 은행은 한국에도 지점을 두고 있는 세계적 영국계 대형은행이다. 1980년까지만 해도 고용원이 3만명이었는데 1998년에는 고용원이 13만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탈세 사건과 관련해 스위스 사법기관의 조사를 받고 있는 곳은 이 은행의 스위스 지점이다. 프랑스와 영국인 고객의 계좌가 많아 두 나라 언론은 ‘스위스 리크’(Swiss Leak)라는 이름으로 지난달 초부터 관련 기사를 연일 크게 보도하고 있다.

<비비시>(BBC)를 비롯해 <가디언>, <타임> 등 다른 신문들이 이 사건을 크게 보도하고 있는데 데일리 텔레그라프는 거의 묵살하는 수준이었던 모양이다. 당연히 언론계는 물론 일반 시민들도 이 신문이 왜 이번 사건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지 의문을 갖게 됐을 것이다. 그런데 수석 논설위원인 피터 오본은 가장 큰 원인으로 이 은행이 데일리 텔레그라프의 큰 고객이라는 사실을 꼽았다. 데일리 텔레그라프는 이 은행으로부터 2억5천만 파운드(약 4억 달러)의 빚을 지고 있다. 피터 오본은 그래서 이 은행에 불리한 기사는 잘 보도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스튜어트 걸리버 은행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신문에 대한 광고 압력과 관련해 “적대적인 언론에 광고를 내는 것은 경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신문에는 광고를 중단한다”고 솔직히 시인했다. 언론을 상대로 광고를 무기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결국 광고 압력에 굴복하느냐 않느냐는 각 언론사가 결정할 일이다. 가디언은 “은행이 가디언에도 광고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디언은 데일리 텔레그라프와 달리 광고주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았다고 했다.

피터 오본은 신문에 게재한 마지막 글에서 광고주의 압력을 받아 편집 방향을 바꾸면서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독자를 속이는 행동”이라며 자사를 맹렬히 비판했다. 가디언은 “피터 오본은 본래 독불장군의 성격을 갖고 있지만, 그의 행동은 데일리 텔레그라프에 던진 하나의 다이나마이트였다”고 평가했다. 그의 사직 선언이 영국 언론인들에게 준 정신적 충격을 이렇게 비유한 것이다.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피터 오본의 사직 선언을 읽으면서 한국 언론을 떠올렸다. 한국의 언론 상황은 영국 상황에 견줘 훨씬 더 자본의 영향력이 큰데, 한국의 언론 종사자 가운데서는 왜 저런 결단을 내리는 언론인이 없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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