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영방송은 아직도 ‘땡전 뉴스’의 유산을 깨끗이 떨쳐내지 못한 듯하다. 대통령 보도가 저널리즘 원칙을 위배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우선, 대통령 관련 뉴스는 청와대의 일방적 발표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공영 방송사들은 이달 초 박근혜 대통령의 중동 순방 과정에서 ‘청와대 발표 옮기기’에 충실했던 것 같다. 각국 정상회담들과 맺은 양해각서(MOU)에 근거한 “42조원 수주 기대”, “1800조 규모 먹거리 시장 교두보 마련” 등의 내용을 육성으로 보도하고 자막으로 큼지막하게 썼다. 그러나 양해각서는 대부분 해당 분야와 관련해 서로 잘해보자는 친선적 표현이다. 양해각서의 뜻을 잘 모르는 시청자에게 이것저것 합친 수치를 강조하는 것은 과장이고, 나아가 선전이다. 방송사들은 지난 이명박 정부 시절 ‘자원 외교’의 단순 홍보 창구가 됐던 바 있다.
둘째, 대통령 기사에는 주어가 없거나 피동형인 문장이 많다. “~라는 평가입니다”, “주목할 성과로 꼽힙니다”, “기대됩니다” 등의 표현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것들은 기자의 주관적 생각을 객관적인 사실인 양 표현하는 수사적 전략이다. 언론인 김지영은 저서 <피동형 기자들>에서 “피동형과 익명 표현은 객관보도에 치명적”이라며 이것들이 독재시절 공포·억압 정치 상황에서 시작했다고 증언한다. 고 송용회 교수는 이러한 객관화 전략이 정파성을 감추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무리하게 객관화하려다 보니 “8백억 원 규모 우리 정유사 투자 방안과, 지능형 전력망 에너지 자립마을 등 에너지 관련 신산업 기술도 수출하기로 했습니다”와 같은 비문을 쓰기도 한다.
셋째, 대통령의 말로만 만든 리포트가 많다. 지난 20일 “대통령이 청년실업가들을 만났다”는 내용의 <한국방송>(KBS) 보도는 박 대통령의 훈화 내용만으로 기사를 구성해 앵커 발언 포함 전체 9개 문장 중 8개의 주어가 대통령이었다. ‘땡전 뉴스’ 시절에는 주어 반복이 어색한지 “전 대통령은 또”, “전 대통령은 아울러서”, “전 대통령은 이와 함께” 식의 문법에도 맞지 않는 접속 부사를 나열하기도 했다. 이화여대 이재경 교수가 한미 양국의 신문을 비교해보았더니 한국 기사는 대통령 개인의 언행과 파편적인 사실 하나하나를 중심으로 구성하는 방식이었다. 반면, 미국 기사는 야당 인사와 일반 전문가들을 포함해 견제와 균형, 의견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경향이 컸다.
끝으로, 대통령의 마음을 헤아려 짐작하는 ‘감정이입형’ 표현들도 종종 나타난다. 최근 들어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아이돌 그룹 못지않은 인기”, “감춰뒀던 중국어 실력” 등의 용비어천가식 표현은 다소 줄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마음을 읽어내 기자의 입으로 표현하는 것은 여전하다. 지난 17일 여야 영수회담 보도에서 문화방송은 “박 대통령은 국회를 존중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집권 3년차 국정수행을 위한 의지를 보였습니다”라고 하였다. 기자는 대통령의 ‘국회를 존중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는 메시지’와 ‘국정 수행을 위한 의지’를 헤아렸다.
이런 문제들은 대부분 중요도가 떨어지는 것을 무리하게 보도하려다 보니 일어난다. 단신으로 하면 될 것을 리포트로 강조하려다 보니 일방적 발표를 나열하고, 주어가 없거나 피동형 문장을 사용하며, 받아쓰기를 하고, 감정이입형 보도를 하게 되는 것이다. 청와대 출입 기자들은 최고 권부 출입의 자부심에 맞는 저널리즘 원칙을 회복하길 바란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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