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고’는 발생한 지 1년이 지난 뒤에도 현재진행형인 ‘사건’이 되고 있다. 처음에는 여객선이 침몰하는 사고였지만 구조 과정에서 나타난 국가의 무능, 구조 실패 이후의 책임 전가, 원인 규명 회피 등으로 중대 사건이 되었다. 국가는 지난 1년 동안 유가족의 아픔을 위로해 가라앉히기는커녕 이들을 거리로 내몰아 투사로 만드는 무능의 끝을 보였다. 부끄러운 보도 행태로 ‘기레기’ 오명을 뒤집어 쓴 한국의 주류 언론도 여전히 사건의 지속에 힘을 보태는 중이다. 어느 언론은 진실 규명을 호소하는 가족들에게 “대한민국을 등지겠다는 건가?”라고 오히려 힐난하기까지 한다.
처음에 우리는 세월호 사고를 우리 사회가 재난에 대응하고 이것을 보도하는 차원에서만 생각했다. 비판과 토론이 무성했고 재난담당 정부조직이 바뀌었다. 학자들과 기자들은 ‘세월호 사고에 나타난 재난보도의 문제점’ 등의 제목으로 세미나를 열고 ‘재난보도 준칙’을 만들어 발표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드러난 것은 한국의, 그리고 한국 언론의 총체적인 문제였다.
무능한 사태 대응, 관료주의적 정보관리와 의사결정, 책임 회피와 전가 등은 세월호 사건 및 재난 사고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속보 강박이 낳은 오보, 현장의 목소리는 외면하고 정부의 홍보성 발표를 옮겨 생기는 인식 왜곡, 시청률 지상주의에 홀린 비인권적 취재 행위, 권력 비호를 위한 물타기와 프레임 전환 등의 모습도 세월호 또는 재난 보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이론 가운데 ‘신제도주의’라는 것이 있다. 이 시각은 관행과 관습이 잘 변하지 않고, 그에 따라 사회구조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분석한다. 현재의 관행과 관습으로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이 주로 의사결정자들이기 때문이다. 관행과 관습 차원의 변화는 이례적 충격이나 큰 환경변화가 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러나 이 큰 세월호 사건을 겪고도 한국 사회는 꿈쩍하지도 않는다.
한국 언론도 그 모습 그대로이다. 세월호를 그만 잊자 하고 세월호가 정치화하였다고 폄하하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권력을 쥔 쪽일 것이다. 언론에서 취재와 편집의 관행을 바꾸면 언론사 내 권력을 쥔 데스크급 이상들이 내놓을 부분이 더 클 것이다. 평기자들도 현재의 관행이 자신들에게 이득이 된다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아이들 250여명을 포함해 304명이 희생당하는 충격조차, 조금도 내놓으려 하지 않는 아귀 같은 탐욕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 바다 깊이 잠긴 세월호가 호소하는 변화의 계기마저 버린다면 우리 언론은, 그리고 우리 사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나와 나의 친구들은 어릴 때 가난하고 약한 우리나라를 지킬 사람들은 우리라고 배웠다. 어른들은 “너희들이 우리 미래의 동량”이라며 열심히 노력할 것을 독려했다. 이제 경제성장이 이뤄지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이 된 지금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너희는 왜 우리 같은 치열함이 없느냐?”라며 꾸짖는다. 아니다. 이제 우리는 큰소리칠 것이 없다. 우리는 우리의 말을 잘 들은 착한 아이들을 사악하게, 또는 무력하게 수장했다. 그리고 이들의 희생으로 마련된 너무도 미안한 기회를 버리고 있다. 이제 우리들은 실패를 인정하고 “너희들이 우리 미래의 동량”이라며 “나라를 바로 세울 사람들은 너희들밖에 없다”라고 솔직히 말해야 한다. 우리가 못할 것 같으면 아이들에게라도 할 일을 일러두는 수밖에 없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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