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벌어진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38·미국)와 매니 파퀴아오(36·필리핀)의 세계 타이틀전. AP 연합뉴스
지난 3일 전세계 권투팬들의 주목을 끌며 치러진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38·미국)와 매니 파퀴아오(37·필리핀)의 타이틀전은 시들어가는 권투의 인기를 부활시킬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경기 후 권투를 다시는 안보겠다는 비난을 받고 말았다. 은퇴를 앞둔 두 유명 복서들의 상품성을 극대화시켜 기대를 키웠지만, 정작 볼거리는 빈약했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보도에서 그 수치가 언급된 것처럼, 이번 대결은 세계 스포츠마케팅의 정점을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3일치 기사에서 이 경기를 미국의 미식축구 결승전인 슈퍼볼, 세계 3대 경마대회의 하나인 켄터키 더비, 그리고 로마의 네로 황제가 굶주린 사자 앞으로 기독교인을 내몬 경기만큼이나 세기의 상업적 이벤트라고 비꼬았다.
이 경기를 기획한 주인공들은 유료 텔레비전 방송서비스인 피피브이(PPV=Pay Per View)를 제공하는 거대 케이블네트워크 사업자인 쇼타임과 에이치비오(HBO), 복서인 메이웨더, 권투 프로덕션들, 이번 대회의 주요 스폰서인 멕시코 테카데 맥주 등이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은 에이치비오와 같은 피피브이 사업자들이었을 것이다. ‘피피브이’란 특정 프로그램을 시청하기 위해 사전에 요금을 지불한 가입자에게만 실시간 방송을 송출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미국에서는 쇼타임과 에이치비오에 의해 제공되는 피피브이로만 이 경기를 볼 수 있었다. 시청자들은 회사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약 100달러를 지불했으며, 사전 시장예측 조사에서 대략 300만명이 피피브이를 이용할 것으로 예측된 바 있다.
권투와 피피브이의 인연은 깊다. 미국에서는 1951년부터 피피브이가 실험되어 오다가, 1970년대부터 본격적인 서비스가 구현되었다. 권투는 1975년 9월 무하마드 알리와 조 프레지어의 대결을 에이치비오가 처음으로 피피브이로 서비스한 이후 주요 경기를 이 방식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후 권투와 에이치비오의 피피브이서비스는 분리될 수 없는 중요한 동반자가 되었다.
경기는 30분 늦게 시작됐다. 국가를 부르기 위해 나온 가수들이 30여분을 링 위에서 이유도 모르고 대기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생방송을 탔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가입자들이 몰린 탓인지 일부 지역에서 피피브이서비스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자 쇼타임과 에치비오 쪽에서 경기진행을 지연시킨 것이다. 피피브이 수익을 위한 미디어이벤트의 속살이 여실없이 드러났다.
미국 언론들은 이런 지연 사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듯 했다. 그러나 <비비시>(BBC)나 <가디언> 등 영국 언론들은 비중있게 기사화했다. 공영방송 제도가 오랫동안 발달해온 영국에서는 영화에 대한 위성 피피브이서비스는 발달해 있지만, 윔블던 테니스 대회와 같이 국민적 관심이 큰 스포츠 경기의 피피브이는 사실상 금지돼 있다. 가난한 사람도 볼 수 있도록 방송의 보편적 서비스 기능를 중요하게 고려하기 때문이다.
경기가 끝나고 상업적 이벤트에 속아 지불한 100달러가 너무 아깝다는 미국 시청자의 자학적 메시지가 에스엔에스(SNS)에 넘쳐나자 <워싱턴포스트>와 <야후 스포츠>는 3일치 기사에서 유명인들의 에스엔에스 메시지를 모아 기사를 작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난한 시청자들이 볼 권리를 박탈당한 문제를 지적하는 언론은 없었다. 이 경기로 4400억원 이상의 수익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 수치가 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높은 접근 장벽처럼 보이는 것은 왜일까?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