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식사업가 백종원의 지난 17일 인터넷 생방송을 스마트폰에서 갈무리한 모습이다. 화면에 백씨의 모습과 시청자들의 실시간 채팅 글이 함께 보인다. <마이리틀텔레비전>은 인터넷 방송과 시청자 채팅을 녹화해 편집한 후 티브이로 내보낸다.
요즘은 카메라와 컴퓨터·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방송’을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인터넷 방송’입니다. 게임 중계, 요리, 먹방(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등의 다양한 주제로 동영상을 내보내면서 이를 보는 시청자들과 실시간으로 채팅을 하는 방송 형식입니다. 국내 대표적인 인터넷 방송 플랫폼인 <아프리카티브이>는 하루 이용자가 최대 350만명이나 됩니다. 트위터도 최근 스마트폰으로 원하는 장면을 생중계할 수 있는 동영상 서비스 ‘페리스코프’를 내놨습니다. 손바닥 안에서 사람들이 직접 콘텐츠를 만들고, 공유하고, 소통하는 세상. 텔레비전 방송사로선 충분히 두려워할 만한 세상입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등장한 <문화방송>(MBC)의 예능 프로그램 <마이리틀텔레비전>(이하 마리텔. 토요일 밤 11시15분)은 여러모로 흥미롭습니다. 텔레비전을 위협하는 인터넷, 모바일, 1인 방송 등의 요소를 아예 텔레비전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적과의 동침’을 시도했기 때문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출연자 5명에게 3시간 동안 1인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게 하고, 시청자들을 많이 끌어모으기 위해 경쟁하는 과정을 담습니다. 이들의 인터넷 방송 상황을 찍어서 편집한 뒤 토요일 티브이방송으로 내보냅니다. 구수한 입담이 섞인 요리 방송으로 부동의 1위를 차지한 요식사업가 백종원, ‘몸짱’ 스포츠 코치인 예정화, 인터넷 방송의 ‘조상’인 개그맨 김구라 등이 출연해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방송 3주 만에 8.2%(지난 9일분)를 기록한 시청률 성적도 좋지만, 토요일 본방송 때뿐 아니라 인터넷 생방송이 있을 때 각종 인터넷 게시판이나 실시간 검색어에 집중적으로 거론되는 등 강력한 ‘화제성’이 돋보입니다. 인터넷 생방송은 시간 예고 없이 하는데도 최대 16만명이 접속을 한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의 매력은 실시간 채팅 등 출연자와 시청자 사이의 밀접한 소통에 있습니다. 기존의 방송에선 볼 수 없었던, 인터넷 1인 방송의 형식을 끌어온 성과죠. 시청자들은 요리에 설탕을 넣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백종원에게 ‘슈가 보이’(설탕소년)라는 별명을 붙이고 틈만 나면 이를 상기시키며 백종원을 놀립니다. 걸그룹 에이오에이(AOA)의 초아가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면 “제발 소통 좀 하라”고 닦달을 합니다. 방송이 조금이라도 지루해지면 “노잼”(재미없다)이라고 훈수를 둡니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콘텐츠의 보고입니다. 채팅창에 올라온 글이 프로그램 자막으로 쓰이며, 방송중에 백종원의 요리를 시청자를 대신해 맛보는 ‘기미작가’(기미상궁에서 유래), 예정화의 호된 트레이닝에 쩔쩔매는 피디의 반응조차도 합성사진이 되어 인터넷을 떠돕니다.
그런데 이미 인터넷 방송을 봤던 시청자들은 일주일 뒤에야 나오는 본방송을 볼까요? 1인 방송의 재미를 알게 되어 지상파 텔레비전을 이전보다 뜸하게 찾게 되진 않을까요? 오히려 ‘적’에게 이로운 일을 벌인 건 아닐까요? <마리텔>을 연출하는 박진경 문화방송 피디는 “오히려 티브이의 힘이 여전히 크다고 느꼈다”고 말합니다. 혁신과 진화를 게을리해선 안 되겠지만, <마리텔>을 만들면서 뉴미디어가 여전히 따라올 수 없는 올드미디어의 역량도 새삼 확인하고 있다는 겁니다. 제작진은 출연자들이 각각 진행한 인터넷 방송들을 압축하고 가공해, ‘지상파 예능’인 본방송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합니다. 관심을 끌 만한 출연자를 섭외하고 이들이 진행할 1인 방송의 내용을 함께 기획하는 등 ‘전체 그림’을 그리는 것도 지상파 방송사가 그동안 갈고닦아온 고유의 역량입니다. 여기에서 인터넷 1인 방송과는 또다른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매력이 나타납니다.
미디어 격변기에 오갈 곳 몰라 하는 올드미디어들에게, <마리텔>은 마치 “네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뭔지 생각해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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