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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콘텐츠 재가공 ‘큐레이션’, 진화일까 퇴행일까

등록 2015-06-01 20:45수정 2015-10-23 14:42

미국의 <버즈피드>는 목록형 기사(리스티클) 등 다양한 형식을 활용한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로 인기를 얻었다.
미국의 <버즈피드>는 목록형 기사(리스티클) 등 다양한 형식을 활용한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로 인기를 얻었다.
한국판 버즈피드 ‘피키캐스트’
말랑뉴스 재편집해 인기 급성장
기성 매체도 ‘짜깁기 저널’에 편승
상업적 성공에도 저작권 소홀
양질 콘텐츠 생산 기피 풍조 우려
현재 전세계 뉴스 시장의 최강자는 <뉴욕 타임스> 같은 신문사나 <시엔엔> 같은 방송사가 아니다. <구글 뉴스>도 아니다. 인터넷 미디어 업체 <버즈피드>다. 2006년 미국에서 설립된 버즈피드는 지난해 1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전세계 1위(방문자 수 기준) 뉴스 사이트로서의 자리를 굳혔다. 국내도 버즈피드의 길을 쫓고 있는 업체가 있다. 2012년 설립된 피키캐스트는 ‘우주의 얕은 지식’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주로 인터넷에 떠도는 생활정보 등의 연성 콘텐츠를 엮어 모바일에서 보기 쉽게 편집을 한 뒤 이용자들에게 제공한다. ‘이혼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 톱 11’ ‘진한 메이크업을 한번에 지우고 싶다면’ ‘더이상의 솔로는 없다. 남자친구를 키워보자’ 같은 콘텐츠들(1일 현재 모바일 첫화면)이다. 10~20대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올해초 기준으로 월간 방문자 640만명을 넘겼다.

■ 피키의 성공비결은 큐레이션

성공 비결은 무엇보다 ‘큐레이션’에 있다. 기존 정보들을 적절하게 다시 가공해, ‘당신이 알아야 할 10가지’와 같은 목록형 기사(리스티클), 퀴즈, 카드뉴스 등 모바일에 최적화된 다양한 형식으로 제공해 독자·이용자들을 끌어모으는 것이다. 기성 언론매체들이 전통적인 콘텐츠 제작에 몰두하는 동안 디지털에서 태어난 이들 업체는 말랑한 큐레이션 서비스로 미디어 시장을 장악해나갔다.

국내서도 버즈피드와 비슷한 사업모델을 표방한 <피키캐스트>가 최근 급부상하고 있다.
국내서도 버즈피드와 비슷한 사업모델을 표방한 <피키캐스트>가 최근 급부상하고 있다.
이런 흐름의 배경으로는 갈수록 뉴스가 과잉 공급되는 디지털 환경을 짚을 수 있다. 송해엽(한국과학기술원 박사과정)씨와 정재민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김영주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센터장은 최근 한국언론학회 학술대회에서 ‘뉴스 과잉이 뉴스 소비에 미치는 영향’이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온라인·디지털 플랫폼에서 ‘뉴스 과잉’ 현상이 ‘뉴스 회피’를 부르고, 이에 따라 뉴스를 계속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큐레이션 서비스를 찾는다”고 분석했다.

기성 매체들도 이런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리스티클, 카드뉴스 등 큐레이션 서비스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전처럼 콘텐츠를 던져놓고 읽어주길 바라는 식의 공급자 중심 서비스로는 디지털 환경에 적응할 수 없으며, 적극적으로 독자·이용자들의 입맛에 맞게 콘텐츠를 재가공하는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반면 버즈피드 같은 매체는 되레 회사 안에 뉴스룸을 만들고 자체 콘텐츠를 제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송해엽씨는 “큐레이션 서비스의 대두는 미디어의 중점이 ‘콘텐츠 생산’에서 ‘콘텐츠 선택·편집·배포’로 넘어가는 흐름 위에 있는 현상”이라며 “앞으로 기성 매체들은 선택·편집·배포에, 신생 매체들은 생산에 초점을 맞추며, 각자 부족했던 부분을 보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콘텐츠 짜깁기·저널리즘 퇴행” 논란 커져

큐레이션 업체들이 상업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미디어업계와 학계 안에서는 큐레이션 행위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들이 타인의 저작물을 짜깁기하는 방식으로 상업적 이익을 거두면서도 콘텐츠 제작자에 대한 보상 지급 등에는 무관심하다는 점, 1차적인 콘텐츠 생산·제작이 홀대받아 심층보도·탐사보도 등 좋은 뉴스 콘텐츠가 만들지기 어려워진다는 점 등이 주요 문제점으로 제기된다.

지난달 28일 열린 문화연대 주최 ‘피키캐스트와 뉴스 큐레이션’ 포럼에서는 국내에서 급성장한 큐레이션 업체 피키캐스트를 두고 다양한 의견들이 제기됐다. 인터넷 매체 <슬로우뉴스>의 민노씨 편집장은 토론에서 “피키캐스트는 전세계 콘텐츠를 자신의 것으로 끌어오는 방식으로 창작자의 ‘인격권’을 말살하고 있다. 최소한의 룰은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키캐스트는 기존 기사를 출처 없이 그대로 게재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반면 오병일 정보공유연대 대표는 “이용자들이 주도적으로 음악을 공유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드려다 저작권 문제에 부딪혀 좌절된 ‘소리바다’, ‘냅스터’ 등 음원시장의 사례처럼, 기존의 저작권 개념을 강조하면 이용자 중심의 새 문화가 만들어질 가능성을 죽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흥미 위주의 연성 콘텐츠를 주로 다루는 피키캐스트 같은 서비스가 저널리즘의 질적 저하를 가져온다는 우려에도 여러 의견이 나왔다. 한 참석자는 “공론장이 무너진 상황에서 피키캐스트를 주로 즐기는 10~30대 세대는 휘발적인 일상문화에만 빠져들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강정수 디지털사회연구소 대표는 “피키캐스트 같은 연성콘텐츠를 다루는 매체는 인류 역사 어느 때나 있었으며, 저널리즘과 경쟁하는 매체가 아니다. 기술 발전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됐는데도 정작 어젠다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기존 미디어가 더 문제”라고 진단했다.

발제를 맡은 이광석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는 “피키캐스트가 ‘디지털 공유지’에 있는 콘텐츠를 퍼나르는 방식으로 사적 이윤을 만들어내고 있는 만큼, 원저자 출처 명기, (콘텐츠 생산자에 대한) 물질적·비물질적 보상체계 마련, 뉴스 아카이브 제공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이윤을 사회로 되돌리는 데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피키캐스트는 저작권 문제와 관련해 “최대한 원저작자를 파악해 명시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경우에도 원저작자가 문제제기를 해오면 즉각 반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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