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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견’ 목줄 쥔 기업·정부에 흔들리는 저널리즘

등록 2015-08-24 20:45수정 2015-08-27 11:43


디지털 시대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지 못한 언론사들이 생존을 위해 광고 수익에 더욱 매달리게 되면서 대기업, 정부 등 주요 광고주들에 종속되는 모습이 뚜렷해지고 있다. 언론의 주요한 비판 대상인 기업과 정부가 언론의 ‘밥줄’을 쥐게 되면서, 언론 본연의 권력 감시·비판 기능이 약화되고 있다. 저널리즘의 핵심 원칙이었던 기사와 광고 사이의 ‘방화벽’도 흔들리고 있다.

24일 한국신문윤리위원회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06~2013년 ‘사회·경제적 세력으로부터의 독립’과 ‘보도자료의 검증(영리 이용 금지)’이라는 심의 기준을 위반한 사례는 2006년 107건에서 2012년 457건, 2013년 770건으로 급증했다. 위원회는 매달 회원사(47개)의 기사와 광고 콘텐츠를 심의하는 자율기구다. 여러 심의 기준 가운데 위 두 기준은 광고주, 종교단체와 같은 외부 세력의 영향에 따라 기사를 쓰지 않았는지 판단하는 잣대가 된다. 위반 사례를 보면, 특정 기업과 상품의 장점만 소개하는 등 기업 홍보 기사들이 대부분이다.

공짜 뉴스로 구독료 수익 위축
거대 광고주에 수익의존 심화
홍보기사 ‘협찬’ 형식 집행 늘어
기사와 광고 방화벽 허물어져
정책비판·자본견제 제역할 못해

지난 3월 공개된 종합편성채널(종편) <엠비엔>(MBN) 광고대행사 엠비엔미디어랩의 영업일지에는 방송이 협찬·광고를 받고 협찬주·광고주 입맛대로 프로그램을 제작 또는 편성해준 정황이 담겨 있었다. 예능뿐 아니라 시사프로그램에서도 협찬 대가로 협찬주에게 유리한 내용을 내보낸 정황이 드러났다.

이런 ‘홍보성 기사’ 급증의 원인 중 하나는 갈수록 취약해지고 있는 언론사들의 재정 상황이다. 신문 구독자가 줄어들면서 ‘구독료+광고수입’이라는 두 축으로 지탱하던 수익구조가 흔들리게 된 것이다. 방송사들 역시 시청률 저하로 광고 수입이 줄고 있다. 대체 수익모델은 아직 창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독자들이 온라인 뉴스에는 돈을 내지 않고, 온라인 광고시장은 아직 규모가 작고 그나마 포털, 유튜브 등 플랫폼사업자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한금융투자가 지난 3월 집계한 ‘국내 총 광고비 조사결과’를 보면, 티브이·라디오·신문·잡지 등 ‘4대 매체’의 광고비는 2010년 4조3490억원에서 2014년 3조8170억원으로 감소했다. 열독률 저하 추이에 견줘서는 감소폭이 작은 편이다. 이는 전통 언론사들이 광고 매출의 감소를 막기 위해 편법까지 동원한 다양한 방식으로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다, 대기업 등 광고주들은 ‘언론사와의 관계 유지’ 등을 이유로 언론사 광고 예산을 크게 줄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광고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언론사의 기본가치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우선 광고 집행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옛날처럼 신문광고란이나 방송프로그램 사이 광고를 싣기보다는 ‘협찬’과 같이 언론사를 간접적으로 후원하는 방식을 쓴다. 한 대기업 홍보 담당자는 “작은 인터넷 매체들이 의도적으로 기업의 흠집을 잡는 기사를 쓰고 이를 내려주는 조건으로 광고비를 따내는 ‘유사 언론’ 행위를 한다면, 주류 언론들은 ‘별지특집’과 같은 콘텐츠 제작이나 자신들이 주최하는 포럼·콘퍼런스 등을 근거로 협찬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정부 부처도 정책 홍보를 위해 과거에는 주로 캠페인 광고를 집행했지만, 최근엔 민간대행사에 ‘홍보 용역’을 맡겨 언론 보도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는 방식의 홍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단순히 ‘홍보성 기사’만 문제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나와야 할 기사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최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건으로 삼성과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 사이의 대립이 불거졌을 때, 대다수 국내 언론들은 ‘삼성 대 투기자본’이라는 구도에 입각해 엘리엇을 비판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이 사태의 본질적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삼성의 지배구조와 경영권 승계 작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언론 보도는 거의 없었다.

이충재 <한국일보> 논설위원의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석사논문 ‘종합일간지 편집국장의 편집권에 대한 인식 연구’(2015년)에는 10명의 현직(2014년 기준) 중앙일간지 편집국장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가 담겨 있다. 인터뷰 대상자들은 편집권을 침해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광고자본의 압력’을 꼽았다. 이 논문은 “주된 광고주인 대기업들은 자사에 불리한 기사가 게재됐을 경우 내용과 제목의 수정, 때론 삭제 등을 요구해오고, 편집국장은 어떤 식으로든 반영해줘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껴 기사 제목을 고쳐주거나 단수를 조정하거나 기업 해명을 충분히 넣어주는 식으로 성의 표시를 하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또 “(국내 최대 광고주인) 삼성의 경우, 거의 모든 인터뷰 대상자들이 삼성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했고, 기자들과의 갈등도 상당 부분이 삼성 기사와 관련돼 있었다”고 말했다.

언론이 정치·자본권력에 취약하다는 비판은 이전부터 있어왔다. 하지만 변화된 디지털 환경에서 언론사들이 일부 거대 광고주에 더 의존하게 되면서 문제가 한층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신문사들 매출 가운데 광고·협찬이 차지하는 비중은 70% 가까이 이르고 그중에서도 일부 재벌기업들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논문에서 한 편집국장은 “신문사가 경영에 어려움이 없다면 떳떳할 텐데 그렇지 못하니까 기업들이 치고 들어오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광고를 기사처럼 만드는 움직임도 있다. ‘네이티브 광고’가 대표적인데, 기사와 유사한 형식으로 작성돼 얼핏 기사처럼 보이는 광고다. 일반적으로 광고주가 의뢰해 언론사가 만든다. 네이티브 광고는 언론사들이 디지털 영역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 돌파구라는 기대도 있지만, 기사와 광고 사이의 방화벽을 허문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황용석 건국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는 “광고와 구독료 두 축으로 뒷받침됐던 미디어 시스템이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어 광고 중심으로 가면서 균형성이 깨지고 있다. 이에 따라 광고인지 뉴스인지 구분할 수 없는 콘텐츠들이 넘쳐나는 등 ‘시장에 의해 움직이는’(마켓 드리븐) 저널리즘이 고개를 들고 있는데, 이는 결국 공공 이슈에 대한 비판, 권력에 대한 견제 등을 실종시키는 악영향을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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