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비엔>(MBN)과 <티브이(TV)조선>의 협찬 요청 공문. 엠비엔 공문은 명의가 ‘보도국장’으로 돼 있고, 티브이조선 공문은 ‘영향력 있는 시이오(CEO)’ 선정 결과를 알리면서 협찬 요청 내용을 함께 담고 있다. 최민희 의원실 제공
지난 3월 방송 프로그램 편성 개입 정황이 담긴 영업일지가 공개돼 불법 광고영업 의혹이 일었던 종합편성채널 <엠비엔>(MBN)의 광고대행사인 엠비엔미디어렙에 과징금 2억4000만원이 부과됐다.
16일 방송통신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정당한 사유 없이 엠비엔의 방송 프로그램 편성에 영향을 미친 엠비엔미디어렙이 미디어렙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2억4000만원을 부과하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또 방통위는 실질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고, 시정명령 이행 뒤 이행 결과를 방통위에 보고하도록 했으며, 시정명령을 받은 내용을 엠비엔미디어렙의 홈페이지에 5일 이상 게시하도록 했다.
과징금 부과 기준은 중대성 약(2억원), 중대성 보통(3억원), 중대성 강(4억원)으로 나뉜다. 방통위 관계자는 “과징금 2억4000만원은 방송사에 부과된 액수 가운데 상당히 높은 쪽에 속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방통위가 전년도 재방송 비율을 지키지 못한 종편 4개사에 내린 과징금은 1개사당 3750만원이었다.
방통위 조사 결과, 엠비엔미디어렙의 실무책임자는 엠비엔이 주관하는 제작회의에 정기적으로 참여해 광고·협찬과 관련한 진행상황을 논의했다. 방통위는 “(이런 행위가) 엠비엔의 프로그램 기획·제작·편성에 포괄적으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광고·협찬 판매 활성화라는 미디어렙사 본연의 역할과 업무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엠비엔미디어렙이 재방송 편성에 적극 개입했다는 의혹도 사실로 드러났다. 조사 결과 2014년 12월 <다큐엠> ‘백수오’ 편의 경우 엠비엔미디어렙이 건강보조식품기업 내츄럴엔도텍과 재방송 포함 3회분의 협찬 계약을 체결한 뒤 재방송 편성 시간을 변경했다. 또 <천기누설>의 경우 한국인삼공사와 3회분의 협찬 계약을 체결한 뒤 협찬 계약 당시 미확정 상태였던 3회차 방송분에 대해 편성을 확정했다. 방통위는 엠비엔 프로그램 재방송 편성에 엠비엔미디어렙이 주도적인 구실을 했다고 봤다.
이에 대해 엠비엔미디어렙은 “방통위의 과징금 부과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 본사는 지난해 12월 출범 후 합법적이고 정당한 절차에 따라 영업을 해왔고, 그 과정에서 엠비엔의 편성권한을 침해하지 않았다. 앞으로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우리 입장을 소명해 가겠다”고 밝혔다.
지난 3월 공개된 엠비엔미디어렙 영업일지에는 “광고주가 <천기누설> 재방송 상품 문의. 각 광고주당 2회에 3000만원. 단 현재 편성부 재방시간 가이드에 불만 많아 편성부 별도 협의가 필요한 상황”, “<천기누설>, 재방송 상품 개선 필요. 현 <천기누설> 재방상품안은 3천만원에 2회로 별도의 편성시간대는 개런티되지 않은 상황”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날 결정으로 현재 방통위가 진행중인 <채널에이>와 <티브이조선>의 ‘불법·편법 협찬 의혹’ 관련 조사 결과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성준 방통위원장은 지난 10일 방통위 국정감사에서 이 두 방송사와 관련한 조사도 이달 안에 마무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5월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티브이조선>은 2012년 12월 한국수출입은행에 ‘2013 한국의 영향력 있는 시이오(CEO) 선정 확정 통보의 건’이란 제목의 공문을 보내 2000만원의 협찬금을 요구했다. 공공기관인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농정원)이 작성한 ‘가축질병 확산 방지 관련 방송협찬에 대한 과업 지시서’를 보면 <채널에이>가 1000만원씩 협찬금을 받는 대신 구제역 확산 방지에 관한 내용을 방송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채널에이는 지난 1월20일 아침 교양 프로그램인 <골든타임>에서 농정원이 섭외해준 수의학과 교수를 출연시켜 10분가량 앵커와 구제역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방송했다.
이정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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